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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의 미학…'그래, 그런거야' 김수현이 놓은 한 수

송고시간2016-05-1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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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0대 아우르는 넓고 깊은 이야기…"내 부모, 내 가족 돌아보는 드라마"

3대 대가족 이야기에 거부감도 강해…"똑같은 이야기"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이게 무슨 엄청난 일이라고, 다시는 니 남편한테 손찌검하지 마. 우리 집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아들의 과거 연애사를 알아버린 며느리(왕지혜 분)가 분노에 차 아들(조한선)을 때리자 시어머니(김해숙)가 불같이 화를 내며 야단을 친다.

바로 다음 장면. 그 시어머니의 딸(윤소이)이 남편(김영훈)을 베개로 마구 때린다. 과거 연애사의 수위는 좀 다르지만 사위가 맞는 이유도 얼추 비슷하다.

며느리에게 아들이 맞는 꼴은 절대 못보지만, 딸이 사위를 패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는 게 어디 이 드라마 속 엄마뿐이겠나.

SBS TV 주말극 '그래, 그런거야'가 난롯가에서 할머니가 이야기를 들려주듯 조곤조곤, 그러나 뼈가 있는 역지사지의 미학을 안방극장에 펼쳐 보이고 있다.

비록 떠들썩한 관심도 없고, 시청률도 낮지만 이 드라마는 중독성이 있는 노변정담처럼 주말 밤 시청자들을 자연스럽고도 편안하게 집중하게 만든다.

데시벨이 높고 수다스러우며, 언뜻 봐서는 늘 하던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20~80대를 아우르는 넓고도 깊은 이야기를 노변정담을 가장해 풀어내는 김수현 작가의 한 수는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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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안의 모순…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그래, 그런거야'의 배경이 되는 유씨 집안에 시집온 손주 며느리 유리(왕지혜)는 외계인이나 다름없다. 부잣집 철부지 딸 출신으로 이 집안에 강렬한 문화적 충격을 안겨준 유리는 상식적이고 품위 있게 살아왔다고 자부한 유씨 집안의 모순을 하나둘 까발리기도 한다.

층층시하 어른을 잘 모시고 사는 반듯하고 뼈대 있는 집안 같지만, 시부모 봉양 문제에 둘째 며느리와 셋째 며느리가 격돌하고 덩달아 아들들까지 얼굴을 붉히는가 하면, '형님' '올케' '도련님' 등 가족 간 호칭을 분명히 하라고 가르치지만 정작 손주 며느리의 호칭은 '아가'가 아니라 '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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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권은 지난 8일 방송된 26부. 자신이 남편의 첫사랑인지 알았던 유리가 남편에게 5년간 깊게 사귄 여자가 있었고 남편이 그 여자에게 차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충격받아 울분을 토하자 교양있는 시부모가 혼내고 어르는 대목이다.

시어머니(김해숙)는 "요즘 너희들, 결혼 전 사귀었던 사람 때문에 이리 난리 칠 정도니?", 시할머니(강부자)는 "니가 어느 집 애 키워서 결혼하기 전까지는 (남자에게 과거가 있는 거) 어쩔 수 없어"라고 유리에게 설교한다.

유리가 남편이 자신을 속인 것을 문제삼자, 유씨 집안에서 가장 유순한 시아버지(홍요섭)도 "너 알기 전 옛날 일인데 지난일 가지고 사람 괴롭히는 건 지혜롭지 못한거야"라면서 "그건 니 남편 일생일대에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일이야. 아마 잊고 싶은 일, 절대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그런 거. 그런 맘 모르겠니"라고 어른다.

그런데 유씨 집안의 장녀 세희(윤소이)에게도 이들이 같은 말을 했던가. 결혼 전은 물론이고, 그 옛날 중학교 때 하룻밤 사고친 결과를, 심지어 십수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게돼 벼락맞은 사위(김영훈)의 과거도 이들이 이렇게 쿨하게 넘어갈 수 있을까.

또 세희는 남편과 단둘이 신혼을 즐기게 해놓고는, 유리는 시조부모까지 모시고 살게 하는 '뼈대있는 가풍'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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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세대, 다양한 가족의 이야기

20대 취업포기생,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30대 청상과부, 70대 노인을 사모하는 40대 과부, 둘째 조카와 나이가 같은 어린 이모, 남편 일찍 떠나보내고 외동딸을 돈으로 금이야 옥이야 키운 부자 엄마….

다양한 인물군상에 다양한 가족관계를 담고 있는 '그래, 그런거야'는 그래서 할말도 많고, 갈길도 멀다.

기본적으로 식모 살던 집 주인이자, 아들이 둘 있는 홀아비(이순재)에게 시집가 한평생 살아온 할머니(강부자)의 사연도 범상치 않고, 배다른 삼형제가 의좋게 복닥복닥 대며 60~70대가 되도록 하루가 멀다 하고 대소사를 의논하며 사는 것도 평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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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대목에서 이 드라마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여성 시청자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이런 대가족을 짊어지고 사는 며느리의 처지나 이러한 대가족의 모습이 이상향인 것처럼 그려내는 이야기가 불편하고 거북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시청률이 10%에서 변동이 없는 것도 그런 영향이 크다.

'목욕탕집 남자들'이 1996년이고, '엄마가 뿔났다'가 2008년이다. '무자식 상팔자'도 벌써 3년 전인 2013년의 이야기. 대가족 이야기로 대박을 친 김수현 작가의 필력도 이제는 한물갔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하지만 반대로, 스타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의 시청률도 5% 전후로 추락하는 시대에 여전히 '철 지난 아이템'으로 10%를 유지하는 것 역시 김수현 작가의 저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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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시대 두번째 사랑을 생각하는 많은 홀로된 이들과 핵가족·1인 가구 시대 외로움을 타는 또다른 이들, 경제난 속 기성 세대와는 다른 선택과 고민을 해야하는 3포 세대의 입장을 드라마는 고루 헤아린다.

"더 늙어 움직이지 못할 때는 내발로 양로원에 가더라도 지금은 눈치밥 먹으면서 여기서 살래"라는 조부모들이나, 이제는 자신이 죽을 나이가 된 부모들이나, 부모처럼은 안 살겠다는 청춘들이나 모두 할말이 있다.

멀쩡한 친정을 놔두고 홀시아버지와 사는 청상과부 이지선(서지혜)의 사연은 개방적으로 생각해도 영 껄끄럽고, 조카들이 어버이날 선물로 사준 에어컨이 마음에 안 든다고 불평하는 철없는 이모의 진상짓도 어이가 없지만 세상만사가 논리적으로, 경우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님을 드라마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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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나물국 같은 드라마…본연의 맛 살리게 푹 끓여야"

유리 역의 왕지혜는 "김수현 작가님이 우리 드라마는 콩나물국 같은 드라마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그는 "콩나물국처럼 특별히 간을 하지 않고 본연의 맛을 살리게 푹 끓여야한다고 말씀하셨다"면서 "매 장면이 잊고 살았던 가족과 삶의 가치를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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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희 역의 윤소이는 "내가 살면서 경험했던 순간들이 대본에 녹여있는 경우가 많아 깜짝깜짝 놀라고는 한다. 매회 내 삶에 영향을 끼치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대목들이 꼭 있어 이게 정말 평범한 작품이 아니구나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다른 세대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내 부모와 내 가족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정말 좋은 드라마다"라고 덧붙였다.

1985년생 동갑내기인 이 두 배우는 우연인지, 어린 시절 대가족 밑에서 자라난 경험도 공유하고 있다.

둘은 이구동성으로 "처음에는 내 캐릭터를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이제는 드라마 전체가 보이고 작가님이 전하는 깊은 의미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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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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