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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시위에 레드카드' 입법에 재일한인ㆍ日시민사회 집념있었다

송고시간2016-05-2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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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시위 방지법 24일 제정…상징성 있지만 벌칙 없어 한계

2013년 부터 시작된 '혐한'(嫌韓) 시위인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에 반대하는 '도쿄대행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3년 부터 시작된 '혐한'(嫌韓) 시위인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에 반대하는 '도쿄대행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일본에서 '헤이트스피치'(특정 인종이나 민족, 국민 등에 대한 혐오시위나 발언 등)를 억제하기 위한 법률이 24일 만들어진 것은 재일 한인의 삶을 위협하는 혐한시위 근절을 향해 첫발을 뗀 일로 평가된다.

처벌규정이 없는 점 등 한계가 거론되지만 일본 사회에서 혐한시위를 용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은 일보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안이 제정되기까지는 재일동포들과 일본 시민사회의 양식 있는 인사들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어둠 속에 기생하던 독버섯에 '빛' 비춰

일본에서 혐한시위는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10년 이상 지났지만 일본 사회의 무관심과 한일 관계 악화 흐름 속에 방치된 '독버섯' 같은 존재다.

24일 아사히 신문이 인용한 일본 법무성 통계에 의하면, 2012년 4월부터 2015년 9월에 걸쳐 일본 전국에서 확인된 혐오시위와 가두 행진은 1천 152건이며 작년 한해 동안 약 250건에 달했다.

'재일(在日·재일한인)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모임'(재특회)와 같은 단체들이 주말이면 도쿄의 한인타운인 신오쿠보(新大久保) 등에서 불특정 다수의 한인을 대상으로 '죽어라'는 등의 욕설을 퍼붓는 동안 재일한인들은 '속앓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 법은 어둠속에 기생해온 혐한시위에 '빛'을 비추고 '잘못된 일'이라고 선언한데 의미가 있다.

일본군 모자를 쓴 혐한 시위 참가자가 '반일 분자를 쳐죽여라'라고 쓴 종이 피켓을 목에 걸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군 모자를 쓴 혐한 시위 참가자가 '반일 분자를 쳐죽여라'라고 쓴 종이 피켓을 목에 걸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 여야를 아우르는 정치권이 혐한시위의 문제를 인식하고, 법으로 '용인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은 상징성이 작지 않다.

법이 '용인 불가'를 선언한 이상 일본 사회에서 혐한 시위 세력이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혐오시위에 공공시설을 제공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재일한인과 일본 시민사회의 오랜 투쟁 결실

법이 나오기까지 재일 한인들과 일본 시민사회의 오랜 투쟁이 있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재일민단)은 최근 2∼3년간 헤이트스피치 근절을 최대 과제로 삼고 전국 조직망을 총동원, 지방의원과 국회 등을 상대로 법안의 필요성을 끈질기게 호소했다.

일본 시민사회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모로오카 야스코(師岡康子) 변호사 등은 법 제정을 각종 집회를 통해 호소했고, 재특회 문제를 오랜 기간 파고든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安田浩一) 씨는 저서를 통해 재일 한국인 차별 문제에 대한 일본 사회의 자각을 촉구해왔다. 재특회를 상대로 끈질긴 법정 투쟁을 벌인 전직 교사 등의 숨은 노력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 민진당(당시 민주당)과 사민당 의원 등에 의해 헤이트스피치 억제 법안이 처음 국회에 제출됐다. 결국 아베 정권의 미지근한 태도로 국회 통과는 보류됐지만 혐한시위에 대한 문제 자각은 일본 사회에서 점점 퍼져나갔다.

그런 와중에 지난 1월 오사카 시의회에서 처음으로 헤이트스피치 억제 대책을 담은 조례가 통과한 것은 중앙정계 전체를 움직이는 기폭제가 됐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5월 26∼27일·일본 이세시마)를 앞둔 아베 총리는 지난 3월 19일 국회에서 헤이트스피치에 대해 질문받자 "국민과 일본의 품격이 걸린 일"이라며 "배외주의적 행위가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G7 정상들이) 갖게 된다면 큰 일"이라며 대책 마련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달 27일 재일동포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재일민단)은 27일 혐한시위를 법으로 금지할 것을 요구하는 집회(사진)를 일본 국회에서 개최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달 27일 재일동포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재일민단)은 27일 혐한시위를 법으로 금지할 것을 요구하는 집회(사진)를 일본 국회에서 개최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결국 중·참 양원에서 공히 과반 의석을 점한 연립여당인 자민·공명당은 지난달 8일 이번 법안을 제출했다. 야당의 수정 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 법안 심의는 빠르게 진행됐고 결국 올해 정기국회 회기 중에 통과됐다.

◇상징성 크지만 벌칙없어 실효성 의문 시각도

이번 법은 처벌 규정이 없는 이른바 '이념법'에 해당한다.

때문에 상징적인 효과에 대한 기대와, 실질적인 억제 효과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병존한다.

'차별 의식을 조장할 목적으로, 공공연히 생명과 신체, 명예, 재산에 위해를 가하는 의도를 고지하는 것'과 '현저히 멸시하는 것'을 '부당한 차별적 언동'으로 정의하고 "용인하지 않음을 선언"한 것은 결국 혐한시위와 같은 행동을 사회적으로 용인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회적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분명히 낙인 찍는 효과는 혐한시위 세력이 동조자를 늘리는데 장애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법안이 중앙 정부와 지자체에 상담 체제의 정비와 교육 및 계몽 활동을 충실히 할 것을 요구한 것도 혐한 시위에 대한 문제의식 확산에 기여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법안은 헤이트스피치를 '위법'으로 규정하거나 '금지'하지 않고, 벌칙 규정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재일동포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중앙본부는 법이 참의원을 통과한 지난달 13일 담화에서 최소한의 요망사항으로 제시했던 헤이트스피치의 '금지'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데 대해 유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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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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