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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희망을 붙잡다…신작 '흰' 출간

송고시간2016-05-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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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편의 시 또는 한 편의 소설…내년 말 영국서도 선보여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강보/배내옷/소금/눈/얼음/달/쌀/파도/백목련/흰 새/하얗게 웃다/백지/흰 개/백발/수의"

소설가 한강의 신작 '흰'(난다)은 이렇게 시작한다.

최근 인간의 폭력과 어둠에 천착한 소설 '채식주의자'로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는 자리에서 "이제는 아름다움과 빛과 같이 어떻게도 파괴될 수 없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예고한 터다.

이번 신작 '흰'은 그가 처음으로 "삶의 발굴, 빛, 더럽히려야 더럽힐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세상의 흰 것들을 응시하며 쓴 작품이다.

작가가 나열한 흰 것들의 목록은 각각 한 편의 완성된 시(詩)처럼 쓰였다.

그러나 이 책을 한 편의 소설로 볼 수 있는 것은 65편의 작은 이야기가 하나의 큰 서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일반 소설들처럼 기-승-전-결의 촘촘한 구조로 이어지는 서사가 아니라 여백이 많지만,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작가가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렸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강렬한 이야기 '배내옷'이다. "내 어머니가 낳은 첫 아기는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고 했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초겨울 시골의 외딴 사택에서 혼자 아기를 출산한 어머니는 아기에게 방금 만든 배내옷을 입히고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중얼거리지만 결국 아기의 몸은 싸늘하게 식는다.

'배내옷'에서의 화자 '나'는 다른 이야기에서는 '그녀'로 지칭된다. 그녀는 "죽지 마라 제발"이라는 어머니의 중얼거림이 몸속에 부적으로 새겨져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삶과 죽음을 닮은 도시로 떠난다.

'흰 도시'는 나치에 저항해 봉기를 일으켰다가 독일군의 폭격으로 파괴돼 폐허가 된 곳을, '초'는 시민들이 총살당한 벽을 떼어다 세워놓고 흰 초를 밝혀 애도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어 '넋'에서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또렷히 드러난다.

"그녀는 자신이 두고 온 고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했고 죽은 자들이 온전히 받지 못한 애도에 대해 생각했다. 그 넋들이 이곳에서처럼 거리 한복판에서 기려질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고, 자신의 고국이 단 한 번도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그녀는 어쩌면 자신과 생명을 맞바꾼 존재일 '언니'에게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라고 작별을 고한다.

작가는 배내옷에 싸여 죽은 아기의 이야기, 그 아기의 동생인 그녀가 언니와 엇갈린 삶과 죽음을 느끼는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늘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환부에 바를 흰 연고, 거기 덮을 흰 거즈"를 떠올리며 그래도 살아가자고 위로하는 듯하다.

이 책은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데버러 스미스가 현재 번역 중이다. 내년 말 영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한강,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희망을 붙잡다…신작 '흰' 출간 - 2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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