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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의 고리> ②채권단은 부실관리·회계법인은 부실감시

송고시간2016-05-27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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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고동욱 기자 = 자율협약 상태로 3년을 넘게 끌던 STX조선의 구조조정이 결국 법정관리로 귀결되면서,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잘못된 처방을 내려 시간을 끌다가 부실만 키워 그만큼 국가경제의 손실을 초래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도 모럴 해저드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기업의 재무 상황을 정확히 알려야 하는 회계법인들도 느슨한 감시로 부실을 제때 잡아내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비판받는다.

◇ 채권단, 잘못된 처방·부적절 인사로 관리능력 도마 위에

25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법정관리로 전환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STX조선의 사례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단의 관리능력 부족이 드러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STX조선은 2013년 4월 자율협약에 돌입한 이후 신규 자금지원만 4조5천억원을 지원받고 38개월간 구조조정을 이어갔으나 끝내 회생하지 못했다.

이미 유동성이 고갈된 상태에서 도움을 요청한 STX조선이 쉽게 살아날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찮았지만, 채권단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지원을 거듭했다.

지난해 진행한 정기 재실사에서 채권단은 "추가 리스크 부담 없이 회사 정상화를 추진할 수 있다"며 "2016년 하반기까지 추가 신규자금 지원 없이 정상 운영되고 2017년부터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 과정에서 미집행했던 4천억원의 자금이 지원됐다.

그러나 올해 들어 아예 수주를 한 건도 하지 못할 정도로 STX조선의 경영 부진은 더 심각해졌고, 채권단은 불과 반년도 안 돼서 자율협약을 종료하고 법정관리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시황에 대한 예측이 어렵다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지난해 말이면 대우조선해양[042660] 사태 등을 거치며 세계 조선 경기의 하강 우려가 고조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채권단의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해 재실사를 진행하기 전까지 4조원을 투입하면서도 명확한 방향을 설정하지 않은 채 유동성을 지원하며 '땜질식 처방'에 그쳐 회사가 연명하며 부실을 키웠다는 비판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STX조선 외에도 성동조선, SPP조선, 대선조선 등이 2010~2013년에 줄줄이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지만 회생은 요원한 상황이다.

채권단이 부실기업을 관리하는 과정에도 허술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자주 제기돼 왔다.

지난해 4조원 넘는 지원을 받은 대우조선의 경우 산업은행이 최대 주주가 된 이후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줄곧 산업은행 출신이 맡아 왔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산업은행 출신 인사가 재무책임자로 재직하면서도 수조원에 이르는 부실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데 대한 책임론과 함께, 은행 출신을 자회사에 '낙하산'으로 내려보내 일자리를 주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는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성동조선의 주요 임원 자리를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 등의 은행권 인사가 차지하고 있다는 '은피아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금융권에서도 보수적인 조직일 수밖에 없는 은행은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대기업의 구조조정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이 사실"이라며 "특히 정부의 뜻에 따라 '낙하산'이 수장으로 내려오는 국책은행은 더욱 그렇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럼에도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않았고, 법원 주도의 회생절차도 신뢰하기 어려운 우리나라 현실에서 국책은행 중심의 구조조정은 과도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며 "대신에 부실을 초기에 발견해 빨리 구조조정에 돌입하고, 결과에 따라 빨리 매각하거나 법정관리로 보내는 의사결정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명확한 원칙을 세우고 의사결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책은행의 지배구조도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기업 회계 분석·감시할 회계법인도 '적정의견 남발' 비판

이런 가운데 부실기업의 회계 문제를 분석·감시하는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회계법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론 역시 고개를 든다.

수조원대 분식회계 의혹이 불거진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보여줬듯이 한계 상황에 몰린 기업에 대한 외부감사인의 감시망이 느슨해진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앞서 대우조선해양은 작년 5월 새 사장이 취임하면서 이전 경영진 시절의 부실을 털어내는 '빅배스(Big Bath)'를 단행해 5조5천억원의 적자를 작년도 재무제표에 기록했다.

대우조선해양의 회계 적정성을 감시해온 안진회계법인은 최근에야 '지난해 추정 영업손실 5조5천억원 가운데 약 2조원을 2013년, 2014년 재무제표에 나눠 반영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회사 측에 정정을 요구했다.

대우조선은 이를 수용, 지난 3월 2013∼2015년 각각 7천700억, 7천400억, 2조9천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고 재무제표를 수정해 공시했다.

최근 구조조정의 뇌관으로 부상한 해운업체들 역시 자율협약 신청 직전까지도 회계법인의 외부 감사에서 뚜렷한 지적을 받은 적이 없다.

올해 3월과 4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각각 자율협약을 신청했지만 그 직전 나온 감사보고서에서 두 회사는 모두 존속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회계법인들은 감사보고서의 한 귀퉁이에 "해운 경기의 회복 여부에 따라 재무 상태가 큰 폭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미리 경고음을 울리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계법인이 수억원의 감사 수수료만 받아챙기고 '적정 감사 의견'이라는 '고무도장'을 남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고조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회계법인의 수익 구조 변화 등 구조적 문제가 외부 감사 제도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회계법인들은 최근 들어 본업인 외부 감사 업무를 벗어나 구조조정, 리스크 관리, 세무 등 다양한 분야의 종합 자문 기업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2013년을 기준으로 삼일·삼정·안진·한영 등 4대 법인의 매출액 1조1천700억원 가운데 컨설팅·세무 분야 수입이 절반을 넘는 61%를 차지한 것이 이런 변화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수치다.

가뜩이나 회부 감사 수주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컨설팅 시장 주요 고객이 대기업을 상대로 회계법인들의 공정한 평가의 잣대를 대기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는 얘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회계법인의 이해상충 문제가 지적돼 작년 국회에서 회계법인이 감사 대상 기업으로부터 컨설팅 업무 수주를 못 하도록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결국 무산됐다"며 "이미 회계법인의 사업 기반이 컨설팅 쪽으로 기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상조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자본시장에서 이뤄지기 어려운 이유가 회계법인의 프라이싱(가격 책정)이 합리적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며 "사업 부문별로 유동성과 재무상황 등의 정보가 구축돼야 사고파는 사람이 나타나는데, 지금은 수주산업의 회계정보를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시장으로 나가지 못하고 은행 품에서 썩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없는 회계법인에 대해 엄중한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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