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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창촌 탈바꿈> ④ "먹고 살도록 준비시간은 줘야죠"…선미촌 사람들 분통

송고시간2016-06-08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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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촌 재정비 사업 임박…업주·성매매 여성 "생계를 어떻게 꾸리나"

(전주=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이곳(선미촌)이 없어지면 저도 음지에서 영업할 겁니다."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된 지 10여 년이 흐른 7일 늦은 오후 전주시의 선미촌 재정비사업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선미촌을 찾았다.

<집창촌 탈바꿈> ④ "먹고 살도록 준비시간은 줘야죠"…선미촌 사람들 분통 - 2

선미촌이 50여 년간 자리를 지킨 전주시청 뒷길에는 가로수 사이로 드문드문 붉은 불빛이 비쳤다.

짙은 화장에 높은 구두 굽, 비키니 못지않은 노출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유리창 안에서 남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매매특별법 철퇴를 맞기 전과 다름없는 모습이지만, 유리창 안에 사람이 없거나 아예 불이 꺼진 곳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텅 빈 골목에 주저앉아 담배를 문 여성들 사이로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기자가 카메라를 한쪽 어깨에 메고 들어서자 업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굳은 표정으로 길을 막아섰다.

골목 한쪽으로 들어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문 그는 하얀 담배 연기와 함께 하소연도 내뿜었다.

그는 "선미촌이 없어지면 저희는 뭘 먹고 삽니까. 최소한 나가서 먹고살 수 있도록 준비할 시간은 줘야지, 당장 1∼2년 뒤에 나가라는 게 말이 되나요. 이곳에서 쫓겨나면 음성적으로라도 영업할 생각입니다"라며 막막한 심정을 털어놨다.

선미촌을 볼거리와 먹거리를 갖춘 문화공간으로 바꾸겠다는 전주시의 계획도 기사를 보고 알았다는 그의 푸념은 한동안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는 "선미촌진흥회원들이 전주시에 항의해 3월 22일 전주시 관계자들과 대책 마련을 위한 간담회를 한번 가졌지만, 그 이후로 일언반구 말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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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가 선미촌 정비계획의 동기로 내놓은 선미촌 내 폭력과 여성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격한 반응을 나타냈다.

그는 "10년 전쯤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은 전혀 없다. 아가씨들 방에 인터넷 가능한 컴퓨터도 있고 휴대전화도 전부 가지고 있다. 담당 경찰서 전화번호도 있다. 오히려 업주로부터 받은 선불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법이 생겨서 돈만 들고 튀는 아가씨들이 태반이다. 여기에 있는 업주들이 아가씨들한테 떼인 돈만 개인당 수천만원은 될 것이다. 심지어 여성단체들이 아가씨들한테 돌리는 소식지 제목도 빚을 퉁치라는 의미로 '빚퉁'이다. 말 그대로 죽을 맛이다"며 울상을 지었다.

시간이 흘러 자정을 넘기자 선미촌 골목으로 차량이 슬슬 들어왔다.

차량 전조등이 골목을 비추자 '직업여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호객행위를 하러 나왔다.

"오빠, 잠깐만 얘기 좀 하자. 일단 내려봐."

차량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말없이 발길을 옮기는 여성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말도 업주의 푸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5년째 선미촌에서 일한다는 A(38·여)씨는 여성단체가 제공하는 쉼터나 직장교육을 받아볼 생각이 없느냐는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A씨는 "이 일을 하다가 고작 첫 월급 100만원이 채 안 되는 미용사나 네일아트를 하라고요? 제 나이가 몇인데요. 그냥 이 일 하게 해주세요. 마사지업소와 다르게 저희들은 정기점진도 받아요"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아가씨들이 일해야 업주도 돈을 버는 구조여서 지금은 우리가 '갑'이에요. 폭행 같은 건 전혀 없다고 보면 돼요"라고 말했다.

다시 업소로 발길을 돌린 A씨는 여느 때처럼 흔들리는 불빛 사이로 지나가는 차량과 사람에게 손짓했다.

선미촌(2만2천700여㎡)에는 현재 49개 업소에서 80여 명의 여성이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주들로 구성된 선미촌진흥위원회는 전주시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생존권'을 위한 집단행동과 1인 피켓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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