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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안대환 이주노동재단 이사장 "외국인이 일자리 뺏는다고요?"

송고시간2016-06-0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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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이주노동자의 '수호천사'…"손가락 잘리는 위험한 일, 그들이 대신해"

근로·생활 여건 여전히 열악…"인권·생산성·국제우호 차원서 지원 늘려야"

<인터뷰> 안대환 이주노동재단 이사장 "외국인이 일자리 뺏는다고요?" - 2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노동자가 일자리를 빼앗는다고요? 1970∼80년대 지금 청년들의 바로 윗세대가 손가락이 잘려가며 하던 일을 이제 파키스탄이나 몽골의 노동자들이 대신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고도화돼 자동차나 휴대전화 제조업이 주력이라 해도 부품을 만드는 절삭가공이나 사출금형 등의 작업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청년들은 선반이나 밀링머신, 프레스 등의 위험한 기계는 다루려고 하지도 않지요. IOM이민정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의 국내총생산(GDP) 유발 효과가 20조 원을 넘습니다."

2015년 10월 통계청은 그해 5월 기준으로 외국인의 국내 취업자가 93만8천여 명이라고 발표했다. 연평균 10%의 증가세를 감안하면 올해 초 100만 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외국인노동자 100만 시대'를 맞았어도 이들의 근로조건이나 생활 여건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주거 환경이 열악하고 주위의 도움을 얻기가 막막한 농축수산업 노동자들의 삶은 차마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없지 않다.

경기도 광주 소재 한국이주노동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안대환(56) 목사는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는 '큰형님' 같은 존재다. 쉴 곳을 마련해주고 자상하게 상담해주며 타국살이의 설움을 달랜다. 돈이 없어 예식을 올리지 못한 커플의 결혼식을 올려주는가 하면 유족도 없는 상태에서 외롭게 숨진 외국인의 장례를 치러주기도 한다.

안 목사는 이들이 부당한 일을 겪으면 누구보다 앞장선다. 평소에는 말투가 차분하다가도 이때는 큰소리로 말다툼을 벌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정부의 고위 관료나 고용주들도 안 목사 앞에서는 '말대꾸'를 하기가 어렵다. 맞는 말을 당당하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과 31일 두 차례 만나 인터뷰했을 때도 표현에 거침이 없었다.

"일부 사업장의 숙소를 가보면 정말 한심합니다. 설사 난민이라고 해도 그렇게 대우하지는 않을 텐데,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그처럼 박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4인당 매달 25만 원씩 월세와 함께 전기료·수도료까지 꼬박꼬박 급여에서 제하면서 말입니다."

농축수산업의 상당수 사업장에서는 컨테이너를 외국인노동자 숙소로 쓰고 있다. 냉난방과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샤워 시설이나 화장실 등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그래서 한번은 인근 이천시의 컨테이너 숙소들을 대상으로 "불법 주거시설이니 철거해야 한다"고 당국에 민원을 넣었다.

그러자 시 당국자가 하소연했다. 철거 대상이 된 사업장의 농민들이 몰려와 "우리만 그러냐, 컨테이너를 철거하면 외국인노동자들이 당장 잠잘 곳이 없어지는데 이들이 모두 나가버려 농사를 망치면 책임질 것이냐"라고 거세게 항의하는 바람에 곤혹스럽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민원을 취하해주긴 했지만 그의 소신은 바뀌지 않았다.

"2004년 도입된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독소조항은 고용주가 변동신고를 해주지 않으면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는 겁니다. 농축수산업에서는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더욱 많습니다. 또 근로기준법 적용의 제외 대상이어서 주휴일이나 초과근로수당 등을 보장받지 못하고, 산재보험 등의 혜택도 제대로 못 받습니다. 더욱이 부당하게 권리를 침해받을 때 가까운 곳에 도움을 요청할 데도 없습니다. 지금의 농어업은 단지 생산만 하는 게 아니라 가공에 유통까지 하는데 언제까지 1차산업이라는 낡은 도식으로 제조업이나 서비스업과 다른 잣대를 들이대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안 목사는 인권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생산성 향상이나 국제 우호의 측면에서도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내국인의 불만이 있긴 하지만 새로운 예산을 편성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의 입국 신고와 체류자격 변경 신고 과정에서 낸 수수료와 각종 과태료·범칙금을 합치면 2천억 원에 가깝습니다. 이 돈은 대부분 외국인근로자들에게 쓰여야 합니다. 행정처리 비용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들겠습니까. 고용보험기금 가운데서도 일부는 외국인근로자들이 낸 것인데 고용노동부는 내국인이 낸 돈을 외국인에게 쓸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10년째 외국인노동자 지원 예산을 한 푼도 늘리지 않고 있습니다. 또 퇴직금 지급을 위해 사업주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외국인근로자 전용보험(출국만기보험) 가운데 도입 초창기에 돈을 냈다가 찾아가지 않은 휴면계좌도 활용하자고 제안했는데, 아직 당국은 묵묵부답입니다."

안 목사는 민간이 세운 이주노동자들의 쉼터나 상담소를 '고용허가제의 하수종말처리장'이라고 자조적으로 부른다. 곤경에 빠진 이들이 법적 보호도 못 받고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나 몰라라 하니 자신들을 찾아온다는 것이다. 질병, 부상, 사망 등의 일을 당해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지난해 8월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조합이 합법화되기는 했지만 조직 역량 등에 한계가 있어 크게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정부가 건물 임대료와 직원 인건비를 일부 지원한다고 해도 나머지 비용은 돈을 벌어 메꾸거나 후원에 기대야 합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상담사들은 최저임금을 받는 이주노동자보다도 월급이 적은 처지지요. 저희 같은 성직자들이야 소명 의식으로 버틴다고 하지만 정말 어려운 여건에서 봉사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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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목사가 외국인노동자들의 '수호천사'가 된 것은 어떤 계기였을까. 그는 웃으며 '코가 꿰였기 때문"이라고 털어놓는다.

5대째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안 목사도 처음에는 목회를 시작했고 신도도 내국인이었다. 90년대 중반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으로 이사하며 교회를 차렸는데 하루는 아프리카 출신 노동자가 도움을 요청해왔다. 그 집의 보일러를 고쳐주고 형광등을 갈아주며 돕다가 친해졌다. 이 소문을 듣고 다른 외국인들이 교회로 하나둘씩 찾아왔다. 그러자 정작 내국인 신도들은 함께 예배를 보기가 불편하다며 떨어져 나갔다.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데, 잠자기 전에 어떻게 인사해야 하는지 묻더군요.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한다고 하니까 저더러 '안녕히 죽으세요'라고 했지요. 그때 제가 이들을 위해 살다가 죽을 운명임을 깨달았습니다."

곧바로 한국인 목회는 접고 공장 건물을 개조한 외국인노동자선교센터를 만들었다. 1998년 5월의 일이었다.

2003년에는 외국인근로자 쉼터의 문을 열고 2005년과 2007년에는 각각 한글학교와 컴퓨터교실을 개설했다. 2008년에는 한국이주노동재단으로 법인화했으며 2009년에는 외국인장례지원센터도 설립했다. 이어 이주민상담센터와 이주민서포터즈센터도 마련했다.

안 목사는 이주민들의 권익 향상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제6회 세계인의날을 맞아 대통령상을 받았다.

"성경 자체가 이주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나 '위대한 선지자' 모세도 이민의 역사를 이끌었고 예수도 이주민이었습니다. 성경에도 우리를 나그네에 비유하거나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대목이 자주 등장하지요. 저는 제가 누구를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제가 이들과 함께 지내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안 목사는 성경적 가르침에 따라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종교를 가려서 돕거나 개종을 강요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한번은 어느 외국인노동자에게 도움을 주면서 세례를 받아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더니 '그런 값싼 도움으로 내 종교적 신념을 사려 하지 말라"는 단호한 거절이 돌아왔다. 그때부터 안 목사는 외국인노동자가 세례를 해 달라고 자청해도 진짜 원하는지 꼭 물어보고 다짐을 받은 뒤 세례 의식을 행한다고 한다.

안 목사는 외국인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의 인권이 보호되려면 적절한 규모를 산출하고 개인의 자격 요건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견해도 제시했다.

"많은 외국인이 '코리안 드림'을 품고 인천국제공항에 내립니다. 그러나 달랑 3일 교육받고 처음 본 고용주의 손에 이끌려 사업장에 도착하면 그야말로 군에 입대한 것 이상의 문화적 충격에 빠집니다. 결혼이주여성이 겪는 심리적 혼란은 말할 것도 없고요. 언어 소통 능력 등 최소한의 적응 요건을 갖춘 이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아가 국가 차원에서 필요한 이주노동자 규모를 산출하고 체계적인 인력 관리 계획을 짜려면 이민청을 신설해 각 부처로 분산된 기능을 통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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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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