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인터뷰> '더프라미스' 묘장 스님 "이웃돕기는 부처님 약속"

송고시간2016-06-09 07:01

이 뉴스 공유하기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본문 글자 크기 조정

창립 8년 만에 국제협력 NGO로 우뚝…비결은 참여·자발성·소통·연대

불교와 무관한 지원대상국 선정…"종교 다르다고 인색하면 자비 아니다"

미얀마·동티모르 이어 말라위에도 지부…"언제나 재난 현장에 있을 것"

<인터뷰> '더프라미스' 묘장 스님 "이웃돕기는 부처님 약속" - 2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부처님께서 태어나며 하신 첫 말씀이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건 많은 분이 알고 계십니다. 저는 그 다음 말씀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데 대부분 잘 기억을 못 하시더군요.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온 세상이 고통받고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는 뜻이지요. 부처님께서 중생에게 하신 첫 약속을 지켜나가자고 다짐하며 단체 이름을 '더프라미스'(The Promise)로 정했지요."

불교계 국제협력구호단체 더프라미스를 이끌고 있는 묘장(妙藏) 스님은 2천600여 년 전 석가모니의 탄생게(誕生偈)를 들어 단체의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제자로서 고통받는 이웃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더프라미스는 국제협력 NGO 가운데서도 내실 있게 해외봉사와 긴급구호 활동을 펼치는 것으로 이름나 있다. 2008년 미국 NGO 마칙(MACHIK)과 협력해 중국 티베트자치구에 쥔빠중학교를 건립한 것을 시작으로 미얀마, 인도, 동티모르, 네팔, 마셜군도 등지에 도움의 손길을 뻗쳐 학교를 짓고 식수 개발을 지원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말라위에도 지부를 설치해 영양식과 교육개발 지원에 나섰다. 10년도 채 되지 않은 연륜으로는 가파른 성장 속도다.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더프라미스 사무국에서 만난 묘장 스님은 그 비결로 참여, 자발성, 소통, 연대를 꼽았다.

"후원자들은 돈만 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가서 돕고 싶어하지만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현지에 가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동화책에 색칠하거나 슬리퍼 끈을 달아주는 등 선물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도록 했더니 무척 뿌듯해하시더군요. 마을 주민들의 자발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신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작은 일이라도 자신들의 힘으로 해내도록 해야 도움의 효과가 유지됩니다. 그러자면 마을의 공동체 정신이 회복돼야 하고 주민들과의 소통도 필수적이지요."

더프라미스는 본격적인 지원에 앞서 몇 달 전부터 직원을 현지에 파견해 어떤 지역에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파악하도록 했다. 현지 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를 보이면 이들도 마음을 열고 대한다고 한다. 풀뿌리 공동체 만들기 운동도 펼쳐 자발적인 동참을 끌어내도록 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이 더디게 나타나더라도 일방적으로 지원한 뒤 기념사진만 찍고 가는 일부 단체와는 다르게 접근하는 것이 결국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더프라미스는 지난해 네팔 대지진 때 보건의료 NGO 메디피스, 아동복지 전문기관 어린이재단과 손잡고 구호 활동을 펼쳤다.

"우리는 규모가 크지 않고 역사도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있었지요. 맨 먼저 재난 현장에 들어가 식량과 물을 공급하고 텐트를 지어 잠잘 곳을 마련해주는 게 우리 일이었습니다. 메디피스는 의료 캠프를 운영했고, 어린이재단은 무너진 도로나 주택의 복구를 맡았지요. 구호단체마다 각기 활동하다 보면 어느 지역에는 식량이 남아도는데 어느 지역에는 의료 인력이 없는 경우가 생기지요. 피해 상황을 공유하며 단체마다 장점을 살려 협력한다면 훨씬 많은 이를 도울 수 있습니다."

더프라미스는 석가모니의 약속을 지키자는 다짐으로 출발했지만 종교를 가리지는 않는다. 동티모르나 말라위가 불교국가도 아니고, 어린이재단은 개신교 정신에 따라 설립된 국제기관이다. 후원자 가운데 불교 신도가 많기는 하지만 묘장 스님은 이들에게도 도움받는 대상을 차별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남을 돕는 일에 분별심을 지녀서는 안 됩니다. 나와 더 가깝다고 해서 선심을 쓰려고 하거나 나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인색한 태도를 보인다면 자비라고 할 수 없지요. 아무 이득을 바라지 않고 대가를 생각지 않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진정한 베풂이고 나눔입니다."

"국내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외국의 어려운 이웃을 돕느냐"는 비판도 있다는 말을 꺼내자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돕지도 않는 사람이 꼭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다"며 답답해한다. 정작 봉사나 나눔에 나서는 사람은 그런 것 안 따진다는 것이다.

묘장 스님은 2006년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경불련)에서 감사를 맡고 있을 때 출장차 네팔의 국제구호 현장을 처음 방문했다. 경희사이버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는 그곳에서 남은 인생을 바칠 일을 깨달았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더 도울 수 있을지 머릿속에 기획안이 마구 떠오르는데, 누구에게 건의해 이를 실천하도록 하는 것보다 내가 단체를 만들어 직접 추진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듬해 발의해 주변 사람들을 모은 뒤 2008년 6월 더프라미스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장과 호계원장 등을 지낸 그의 은사(恩師) 법등(法燈) 스님이 흔쾌히 이사장 자리를 수락했고 자신은 상임이사를 맡았다.

"제가 누구를 돕는다고 나서고 있지만 제가 큰 도움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미얀마에는 건기가 유독 긴 지역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참깨가 다 여물기 전 춘궁기(春窮期)에는 하루 한 끼만, 그것도 세 숟가락만 먹고 버틴다고 합니다. 예전 우리나라의 '보릿고개'처럼 '참깨 고개'가 있는 겁니다. 마침내 깨를 수확한 뒤 마을 잔치가 열렸습니다. 맨 처음 그릇을 노스님께 바치니 세 숟가락만 먹고 말더군요. 다음 스님들도 마찬가지고요. 오랫동안 배를 곯아 무척 먹고 싶었을 텐데도 말입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차례가 돌아갔습니다. 노년, 장년, 청년 순으로 숟가락을 뜨는데 모두 세 번을 넘지 않았지요. 마지막에 아이들 순서가 되자 마음껏 먹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부터 양보와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에 큰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한 달가량 지속된다는 기근 속에서도 이 마을에서는 왜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지요. 제 마음 한켠에 남아 있던 선입관이나 우월감도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인터뷰> '더프라미스' 묘장 스님 "이웃돕기는 부처님 약속" - 3

묘장 스님은 사춘기를 혹독하게 보냈다. 죽음의 문제를 두고 고민하다가 1988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승려 출신 작가 김성동의 수필집 '부치지 않은 편지'를 읽고 생사의 경계를 뛰어넘은 고승들의 이야기에 감명받았다고 한다.

당장 서울 조계사(曹溪寺)로 전화를 걸어 출가하고 싶은데 어떡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전화를 받은 관계자가 고등학교는 졸업하고 오라고 해서 불교 서적을 읽으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2년여가 지난 뒤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경북 김천 직지사(直指寺)로 가보라고 해 그 길로 집을 나섰다. 당시 직지사 부주지이던 법등 스님이 그의 머리를 깎아주고 상좌로 삼았다.

1991년 사미계를 받고 중앙승가대에 입학한 뒤 서울 회기동 연화사(蓮花寺)에서 직지사 조실 녹원(綠圓) 스님을 시봉하다가 비구계를 받았다. 2005년부터 연화사 주지를 맡았으며 2009∼2012년 조계종 총무원 사회국장을 지냈다. 지금은 경북 구미의 도리사(桃李寺) 주지를 4년째 맡고 있다.

"은사 스님은 불교가 사회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시고 실천하시는 분입니다. 그 영향을 받아 저도 연화사에 살 때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많이 마련했습니다. 종교에 상관없이 동네 주민이나 인근 직장인이 마음 편하게 들러 지낼 수 있도록 했지요. 법당에서 요가와 댄스를 시키고 경내에 카페를 만들어 커피를 파니 처음에는 반대도 많았으나 나중에는 모두 좋아하더군요. 조계종 사회국장을 지내면서도 이웃 종교인을 많이 알게 되고 환경, 노동, 통일 등의 문제에 관해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묘장 스님은 1년에 4차례가량 외국을 방문하며 아비규환의 참상을 생생히 목격했다. 아이티의 지진이나 인도의 대형 화재 현장에서 숱한 죽음을 봤고, 지난해 네팔에서는 진도 7.4 규모의 강진을 겪었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집니다. 또 대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땅이 흔들리자 태풍에 흔들리는 배 위에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수행이나 이미지 트레이닝도 소용이 없을 만큼 죽음의 공포가 밀려들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부처님의 약속을 생각하고 봉사대원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겨냈습니다.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에도 재난현장에 있겠습니다."

<인터뷰> '더프라미스' 묘장 스님 "이웃돕기는 부처님 약속" - 4

heeyong@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