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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징용피해자 처우 연합군 포로보다 못했다"

송고시간2016-06-1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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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니치 "전쟁말기 미군의 조선인 포로 조사기록 발견"

"탄광의 조선인 급여 일본인의 절반 이하…편지는 검열"

"위안부 강제연행 있었다면 조선인들 가만있지 않았을 것"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일제시기 탄광 등에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최악의 근로환경 속에, 일본군에 잡힌 연합군 포로보다 못한 처우를 받았다는 조선인의 증언이 발견됐다고 마이니치 신문이 10일 보도했다.

마이니치는 일본군과 행동을 같이 하다 미군에 붙잡힌 민간 조선인 포로 3명을 상대로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4월 11일, 미군이 심문한 기록을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견했다며 그 내용을 공개했다.

3명의 답변 기록을 개인별 구분없이 적은 조서에서 한 조선인 포로는 탄광 등에서 일한 조선인 징용 노동자와 친했던 다른 포로로부터 들은 내용이라며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이 "항상 광산의 가장 깊고 뜨거운 장소에서 최악의 일을 요구받았다"고 진술했다.

조선인 포로는 또 "탄광에서 일하는 조선인은 하루 3엔 50전을 받았다"며 "사할린의 탄광에서 지역 주민과 일본인은 하루에 7∼24엔을 받았지만 징용된 조선인은 고정급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통신은 허가됐지만 모든 편지는 검열당했다"며 "이런 조선인 처우는 연합군 포로보다 열악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인 포로는 이와 함께 "조선인은 태평양의 섬들에서 일본인에 의해 잔혹한 처우를 받고 있다"며 "모든 포로(미군에 붙잡힌 조선인 포로)는 연합국에 항복하기를 두려워하는 일본군에 의해 민간 노동자가 살해당한 것을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더불어 미국령 북마리아나제도의 테니안섬에서 잡힌 포로로부터 일본인 장교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동굴에 함께 숨어있던 여성과 아기를 모두 죽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소개했다.

조선인 포로는 또 식민지 시기 조선인의 대일 감정에 대해 "조선이 독립상태였던 시절을 아는 나이의 조선인은 늘 일본인을 싫어한다"며 "일본 학교에 다니는 젊은이 중에는 외견상 친일적인 사람도 있지만, 그들의 다수는 일본의 지배를 감정적으로 매우 혐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모든 (조선인) 포로는 일본과 싸울 기회가 주어지면 조선인 모두가 달려들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며 "일본에 충성하는 사람도 일본이 전쟁에서 지는 걸 알면 금새 태도를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남한 지역 사람보다 북한 지역 사람들이 독립운동에 더 적극적이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조선인 포로는 태평양 전쟁에 대한 조선인들의 인식에 대해 질문받자 "조선인은 전쟁의 영향을 싫어하지만 전쟁은 독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일본의 지배를 견디고 있다"고 증언했다.

또 전후 해방될 조선에 대한 연합국의 개입과 관련, "조선은 일시적으로 연합국의 대표가 통치하는 것이 좋다고 포로들은 믿고 있다"며 "미국 단독 정부는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만, 다른 나라의 단독 통치가 되면 반대에 봉착할 것"이라는 증언도 있었다.

이와 함께 조선인 포로는 "태평양에서 목격한 모든 조선인 위안부는 지원했거나 부모에 의해 팔려간 사람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만약 일본인에 의한 직접적인 여성 징집이 있었다면 용납못할 폭거로 간주돼 노인이든 젊은이든 누구든 그것을 간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심문 조서는 1990년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으로서 일본 민관이 손잡고 만든 아시아여성기금의 자료위원회가 1997년 미국에서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를 했을 때 처음 발견했던 것이다. 이후 답변 기록의 소재가 한동안 파악되지 않았지만 마이니치 신문과 자료위원회 위원 출신인 아사노 도요미(淺野豊美) 와세다(早稻田)대 교수가 지난 3월 다시 발견했다고 마이니치는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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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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