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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현장르포> "완전 충격, 터무니 없어" vs "아주 흥분, 기대감"

송고시간2016-06-25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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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 '희열' 교차…브렉시트 찬반 놓고 1741만명 vs 1614만명 희비

(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슬프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완전 충격이다."

영국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유럽연합(EU) 탈퇴 51.9% vs 잔류 48.1%'가 EU에 남아야 한다는 데 한 표를 던졌던 영국민들에게 안긴 감정이다.

24일(현지시간) 낮 런던 워털루 다리 인근 사무실에서 만난 25세 다니 씨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이탈) 찬반 국민투표 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나는 영국인이고 유러피언(유럽인)이다. 영국을 유럽과 구분해본 적이 없다. 영국은 지금 이대로 유럽을 이끌 수 있었다"고 했다. 그의 말과 표정에서 좌절감이 묻어났다.

정당 지지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까지 내놨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잉글랜드 북부(영국인들은 영국 중부를 대개 잉글랜드 북부라고 말함)는 전통적으로 노동당 텃밭이었는데 그곳에서 EU를 떠나자는 여론이 우세했다는 점을 들었다. 노동당은 늘 EU 잔류 편에 있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대학교 킹스칼리지런던 캠퍼스를 찾았다. 중국인 등 아시아계 유학생들이 야외에 눈에 많이 띄었다.

경영학 전공인 클레멘츠는 투표 결과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자 "EU에서 탈퇴하는 건 고립의 길을 가는 길"이라며 "터무니없고 어이없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 젊은이가 지금 느끼는 이런 충격과 흥분이 나중에 사회를 향해 어떻게 표출될까?

<브렉시트 현장르포> "완전 충격, 터무니 없어" vs "아주 흥분, 기대감" - 2

좀 더 나이 든 세대의 EU 잔류 지지자들에게선 충격 정도는 아니지만 "실망감" "걱정" "우려" 등의 말들이 나왔다. 실망감에 할 말을 잃은 듯 짧은 반응을 내놓을 뿐이었다.

빌딩 리셉션에서 일하는 에마누엘(31) 씨는 "지금 그냥 기분이 좋지 않다"고만 했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로버츠(35) 씨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실망스럽다"면서 "회사가 유럽으로 옮기고 인원을 줄이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도대체 무엇을 위한 EU 탈퇴인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무려 1천614만명이 EU에 남아야 한다는 선택을 했다. 이들에게 EU 탈퇴는 "예상치 못했던" "준비되지 않은" 것이다.

투표 운동 기간 여론조사들에서 브렉시트 찬반 우위가 엎치락뒤치락했지만, EU에서 떠난다는 말들이 현실로 다가올 일이라고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만큼 그들에게 EU는 가까이 있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EU 잔류를 호소했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오늘은 슬픈 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슬픈 날'은 이들이 느끼는 감정에 부족함이 있다.

말을 아끼는 잔류 지지자들과 달리 EU 탈퇴를 선택했던 이들은 또다른 의미의 흥분을 느꼈다. 희열이다.

열차에서 만난 70대 한 할아버지는 "아주 흥분된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EU 정치인들로부터 우리 결정권을 되찾아온다"며 반겼다. 그는 "영국하고 독일은 다르다. 독일은 우리보다 면적도 크고 인구도 많다. 독일인들이 노령화하면서 이민자들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영국은 그렇지 않다"며 이민을 막을 수 있게 됐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는 손녀가 이날 아침 일찍 자신의 부인에게 휴대전화로 "충격! 충격!"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면서 "손녀는 우리가 느끼는 것을 잘 모른다"며 웃어넘겼다.

한국 은행의 한 런던법인장은 "영국 금융규제를 들여다보면 독일 규제가 문구 그대로 영어로 번역된 것들이 무척 많다. 영국은 금융에서 유연성을 강조하는 반면 독일은 철저한 규제를 강조한다. 영국인 금융인들을 만나면서 유럽대륙 규제에 반감이 상당하다는 느낌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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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카트리 씨(55)도 "브렉시트에 매우 흥분돼 있다"고 했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금융시장에 변동성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잠잠해질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에 긍정적이 되도록 우리 일들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정체된 유럽에 의해서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천600만명을 넘는 EU 잔류 지지자들이 하룻밤 새 받은 충격과 실망은 이날 오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다우닝10(총리 집무실) 앞에 나와 "오는 10월 물러나겠다"는 전격 발표를 불렀다.

jungw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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