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 사기사건' 발생부터 수사 종결까지
송고시간2016-06-28 14:26
7만명에 5조원 끌어모아 2천900억 챙겨…발생 12년 만에 '마침표'
(대구=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막노동, 도박판 허드렛일로 생계를 잇던 조희팔은 40대 중반에 한 다단계 업체에서 일을 배워 2004년 10월 ㈜BMC(Big Mountain Company)를 설립했다.
터무니없는 고수익 대신 구체적으로 연 35% 확정금리를 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을 하자 투자자가 몰려들었다.
건강보조기구를 사면 회사가 이를 찜질방 등에 빌려주고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저금리 시대에 이런 소문은 금세 전국으로 퍼졌고 조희팔은 서울, 부산 등 전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는 전국 20여 곳에 유사수신 업체를 세워 강태용 등 측근에게 맡고 정·관계를 기웃거리며 인맥을 쌓았다.
그러나 뒷사람이 낸 돈으로 앞사람에게 이자를 주는 사업을 지속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사기 행각을 벌인 지 2년이 지난 2006년부터 내사를 시작한 경찰은 2008년 10월 조희팔과 핵심 측근을 사기 혐의로 수배했다.
이미 조희팔 일당이 4년간 7만명에게서 5조원이 넘는 투자금을 받아 이 가운데 2천900억원을 챙긴 상태였다.
두 달 뒤인 2008년 12월 조희팔은 수사망을 뚫고 중국으로 밀항했다.
충남 태안군 마검포항에서 양식업자 박모(42)씨 배를 타고 격렬비열도를 거쳐 서해 공해 상으로 나가 미리 대기하던 배에 옮겨 타고 유유히 중국으로 달아났다.
사기 혐의 내사 과정, 수배 후 중국 밀항 과정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조희팔 등에게 돈을 받아 처벌된 검찰·경찰 관계자가 상당수라는 사실에서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조희팔은 중국에서 다른 사람 명의로 공장, 식당 등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따금 찾아온 한국 경찰관과 골프를 치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
2012년 5월 경찰은 "조희팔이 2011년 12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며 장례식 동영상을 공개했다.
그러나 유족이 찍었다는 동영상과 중국 당국이 발행했다는 사망진단서가 의심스럽다는 주장과 함께 위장 사망설이 급속하게 번졌다.
사건 피해자들은 "조희팔이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 칭다오(靑島) 등에서 폭력조직 비호 아래 생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3년이 지나 2015년 10월 최측근으로 지목된 강태용이 중국 공안에 체포돼 두 달 만에 국내로 압송됐다.
강태용은 조희팔이 운영한 유사수신업체 부회장을 맡아 동생, 처남 등을 거느리며 재무, 전산 업무 등을 총괄했다.
사건 재수사에 나선 검찰은 은닉자금 환수, 비호세력 규명 등에 주력해 검·경 관계자 8명을 포함, 70여명을 처벌하는 것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검찰이 찾아낸 현금 ,부동산 등 950억원 가량을 2만명에 가까운 피해자들이 나눠 가지는 것으로 12년간 이어진 '단군 이래 최대 사기사건'은 막을 내릴 전망이다.
yongm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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