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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사건 경찰 초기수사 총체적 부실…뒷북수배·축소은폐

송고시간2016-06-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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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일당 대구서 수사받기로 결정…비호세력 도움 노린 것"

조희팔 수배중 '돈잔치'…검찰 7만6천개 계좌 뒤지며 전방위 재수사

[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TV 제공]

(대구=연합뉴스) 류성무 기자 = "죽어도 대구에서 죽자."

희대의 사기범 조희팔이 밀항해 중국으로 달아나기 40여 일 전인 2008년 10월 말.

경찰이 조희팔을 수배(10월 25일)한 직후 그는 대구 수성구 한 호텔에 은신해 있으며 유사수신 사기 회사 임원들을 모아 놓고 이 같은 방침을 정했다.

자기들을 비호해 줄 수 있는 대구에서 수사를 받자는 취지였다.

유통업계 등을 전전하며 잔뼈가 굵은 조희팔은 48세이던 2004년 10월 ㈜비엠씨(BMC)라는 이름으로 대구에서 처음 유사수신 업체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불법 사업 과정에 뒤를 봐주는 세력이 있다는 점을 자주 주변에 과시했다.

조희팔 조직 2인자 강태용(55·구속)도 평소 고등학교 친구인 김광준(구속) 전 검사가 부장검사로 재직하고 있다고 친분을 자랑했다.

강태용은 "서울에서 신경 써주는 사람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경찰 조사를 받으라"는 이야기도 서슴없이 했다.

지난해 10월 강태용이 중국에서 붙잡혀 본격화된 조희팔 사건 재수사에서는 경찰, 검찰 등 비호 의혹이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 경찰이 수족 노릇…초기수사 축소·은폐로 일관

28일 검찰 재수사 결과, 관련 재판 내용 등에 따르면 2008년 경찰의 조희팔 사건 초기수사는 상당한 문제점이 확인됐다.

조씨 일당에 매수된 경찰관이 수사 담당자를 맡는 등 경찰이 사건을 축소하고 수사를 지연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대구지방경찰청 수사과 소속으로 조희팔 사건 수사 담당자인 정모(41·구속 기소) 전 경사는 2008년 10월 31일 대구 수성구 한 호텔에서 강태용에게서 자기앞수표로 1억원을 받았다.

경찰이 조희팔 회사 전산센터를 압수 수색한 날이다. 압수수색 결과는 허탕이었다.

검찰은 당시 경찰 내부 인사가 압수수색 시점과 수사 정보를 조희팔 측에 미리 알려줘 수사에 대비하고 도피할 수 있도록 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압수 수색을 하기 하루 전에는 당시 대구경찰청 강력계장이던 권모(51·구속) 전 총경이 조희팔과 만나 자기앞수표로 9억원을 받았다.

경남 밀양경찰서와 충남 서산경찰서가 별도로 수사하던 조희팔 사기 사건을 대구 경찰이 이첩받은 것도 수사 축소·은폐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경찰은 조희팔을 사기 주범으로 지목하고도 10일 가까이 지나서야 수배한 의혹도 받고 있다.

또 대구경찰청은 2008년 5월과 9월 두 차례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에서 조희팔 조직이 운영 회사를 통해 불법자금을 세탁한 흐름을 포착한 정보 등을 넘겨받았지만, 수사를 미뤘다.

문제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은 조희팔 회사에서 전무 직함으로 일하던 경찰관 출신 임모(49·구속) 전 경사를 사기 피해자로 둔갑시켜 조사했다.

조희팔 측은 또 속칭 바지사장을 내세워 경찰에 자진 출두해 수사를 받도록 했다.

조희팔 일당이 대구에서 조사를 받기로 작정하고 사건 축소를 위해 일종의 '청탁 수사'를 의뢰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12월 조희팔 사건 피해자 단체인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는 대구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씨 유사수신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12월 조희팔 사건 피해자 단체인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는 대구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씨 유사수신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년간 진행한 조희팔 사건 재수사에서는 검찰 서기관급 간부가 조희팔 일당의 뒤를 봐준 혐의도 확인했다.

대구지검은 조희팔 측에서 수사 무마 등 부탁을 받고 17억여원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대구지검 서부지청 오모(54) 전 서기관을 구속 기소했다.

강태용에게 2억7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7년이 떨어져 복역 중인 김광준 전 검사에 이은 두 번째 검찰 내 비호세력이다.

◇ 조희팔 수배 중 '돈 잔치'…중국서도 국내 조력자 도움받아

조희팔 일당이 회사를 정리하는 D-데이로 정한 2008년 10월 31일 조희팔과 조희팔 운영 회사 전국 임원 20여 명은 대구 수성구 한 호텔에 집결했다.

조희팔은 이 자리에서 기여도 등에 따라 2억∼5억원씩을 나눠줬다. 금액은 조희팔이 미리 메모해 가지고 있었다.

변호사비 등 명목이었다고 돈을 받은 사람들은 주장했지만, 일종의 위로금 성격도 있었다.

조희팔은 2008년 12월 10일 서해에서 밀항해 중국으로 달아난 뒤 내연녀, 아들뿐만 아니라 국내 조력자와 수시로 접촉한 정황이 드러났다.

대구지검은 조희팔 범죄수익금 20억원을 돈세탁한 뒤 도피자금으로 조씨 측에 다시 전달한 혐의로 정모(59)씨를 구속 기소했다.

또 조희팔에게 5억 5천만원 상당의 중국 위안화를 제공한 혐의로 화장품 관련 사업가 김모(53)씨를 구속 기소했다.

강태용은 최근 조희팔 관련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조희팔이 자신을 시켜서 국내 조력자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돈만 챙기고 조희팔이 중국에서 도피생활을 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불만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 '조희팔 오른팔' 강태용 모르쇠…계좌 7만여 개 뒤진 방대한 수사

조희팔 조직 실질적인 2인자이자 자금관리 총책으로 알려진 강태용이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검거돼 두 달여 뒤 국내로 송환될 때만 해도 그가 조희팔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상당히 역할을 할 것으로 검찰은 기대했다.

핵심 의혹과 관련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이런 기대와는 다르게 강태용이 조희팔에게 주요 범죄 혐의를 떠넘겨 수사는 한계에 부닥쳤다.

검찰 관계자는 "불리한 내용은 조희팔에게 미루거나 모르쇠로 버티면서 수사 어려움이 가중했다"고 말했다.

조희팔 사건 관련자 상당수 혐의가 공소시효 7년을 이미 넘긴 점도 수사 걸림돌로 작용했다.

조희팔 사건 전담 수사팀을 꾸린 대구지검은 2년간 진행한 재수사 과정에 조희팔 일당 법인 계좌, 차명 계좌, 투자자 수당지급 계좌 등을 포함해 7만6천여 개의 계좌를 추적했다.

이 작업에는 대검찰청 계좌추적팀까지 투입했다.

확인된 거래 내역만 1천800만 건에 이른다.

대구지검 관계자는 "역대 국내 경제 관련 사건 가운데 계좌추적 규모가 가장 방대한 수사였다"고 밝혔다.

tjd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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