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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 '조선산업특구'…땅값만 올려놓고 잡초 무성

송고시간2016-07-0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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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특구 지정 고성 동해면 일원, 10년 안돼 골칫거리 전락

'내산지구' 겨우 가동…군, 특구면적 확대 "조선경기 다시 살아날 것"

(고성=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고용창출, 세수증대'란 장밋빛 전망은 바래지고 망가진 해안선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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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호황기에 배 지을 곳을 찾아 몰려들던 조선소와 기자재 업체에 해안선을 내줬던 경남 고성군의 현주소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몇년간 전세계적인 물동량 폭증으로 선박 발주가 쇄도했다.

그때 국내 조선업계는 하루 걸러 수주 소식이 들릴 정도로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거제·통영에 밀집한 조선소, 기자재 업체들은 배를 짓거나 기자재를 만들어 기일내 납품하려고 기존 공장을 확장하거나 새 공장을 건립하는데 열을 올렸다.

조선업계가 보기에 통영시와 맞붙어 있고 바다를 끼고 거제시가 코앞인 고성군은 물류비를 아끼고 조선인력을 조달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

농·어업이 주력산업이던 고성군도 조선업 유치를 계기로 인구증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기를 마련하려고 했다.

양측 이해가 맞아떨어져 2007년 전국에서 유일하게 고성군 동해면 일대 3곳이 조선산업 특구로 지정됐다.

당시 이학렬 고성군수는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기존 조선업체 외에 새로 선박건조를 시작한 성동조선해양, SPP조선과 가까운 고성군이 조선산업 적지라는 판단을 했다.

통영·거제로 연결되는 동해면~거류면 국도 77호선 해안도로를 따라 줄줄이 조선특구 조성공사가 시작됐다.

조선특구를 연결하는 국도 77호선 왕복 2차선 해안도로엔 '조선특구로'란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고성군은 2020년 특구가 완전히 궤도에 오르면 생산유발 효과가 3조2천289억원, 직접 고용만 6천800여명 이상이 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법인세는 2020년 250억원 이상을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조선호황 거품이 꺼지면서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조선산업은 오히려 고성군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 조선단지 만들다 스톱…산 깎이고 바다였던 곳엔 잡초만 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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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둘러본 조선특구 구역중 한곳인 동해면 양촌리 양촌·용정지구는 '특구'란 명칭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계획대로라면 한창 공장이 돌아가야 할 자리엔 잡초만 무성했다.

양촌·용정지구는 고성군에 있는 조선특구 3곳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특구 안 3곳의 전체 면적 388만㎡ 가운데 양촌·용정지구는 192만㎡를 차지한다.

공유수면 매립 면적만 93만6천㎡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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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특구지정후 2009년 특구조성공사가 시작됐지만 당시 시작된 조선 불경기를 견디지 못하고 특구사업자인 삼호조선해양㈜이 부도났다. 이듬해 12월에는 공정률 8% 상태에서 공사가 모두 중단됐다.

바다를 메우려 깎아낸 마을 앞산은 속살을 드러 냈고 마을 앞 일부 매립지는 어른 키만한 잡초만 무성했다.

주민들이 대대로 벼농사를 짓다 특구에 포함된 바다 근처 논은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아 황무지로 전락했다.

특구공사 시작때 들어선 현장 조립식 가건물 벽에는 붉은 스프레이로 갈겨 쓴 '출입금지' '유치권 행사중'이란 경고문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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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은 6년째 삼호조선해양을 대체할 사업자를 구하고 있지만 희망적인 소식이 없다.

천익태(56) 매정마을 이장은 "마을에 공장도 들어오고 땅값이 오른다고 하니 주민들은 꿈에 부풀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천 이장은 "주민 기대만 올려놓고 특구사업이 중단되면서 남은 건 거래되지 않는 땅과 훼손된 자연밖에 없다"고 말했다.

"땅값이 올라 뭐 해볼려고 해도 할게 없어요. 공지지가만 비싸져 세금만 잔뜩 물고 거래는 안됩니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조선특구 조성소식에 평당(3.3㎡) 4만~5만원 하던 바닷가 쪽 논은 한때 10배 가까이 치솟았다.

매정마을 한 주민은 "있는 공장도 물량이 없어 문닫는 마당에 누가 새로 공장을 짓겠느냐"며 조선특구 사업 재개 가능성은 이미 물건너갔다고 했다.

천 이장은 고향 자연환경이 훼손된데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동해면 일대는 개발 바람을 덜 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졌지만 조선특구 공사로 해안선이 많이 망가졌다"며 "소득이 높아질수록 자연을 보존하는게 더 도움이 되는데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매정마을 바로 옆동네로 양촌·용정지구에 포함된 가룡마을은 마을 뒷산이 파헤쳐진 채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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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는 녹슨 중장비와 부서진 컨테이너 박스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최외호(61) 가룡마을 이장은 "조선소 하겠다며 중장비가 들이닥쳐 산을 파헤쳤는데 얼마있다 다 떠났다"고 말했다.

최 이장은 "특구 사업이 아직 살아있다는데 언제쯤 될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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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면 조선특구 주변 마을을 둘러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인구가 수백명에 불과한 한적한 어촌마을 마다 '부동산 컨설팅'이란 간판을 단 부동산 사무소가 한군데씩 있다.

공장부지 알선, 부동산 투자자문을 해주겠다며 들어온 부동산 사무소는 조선특구가 표류하면서 거래가 끊기자 땅값만 올려놓은 채 대부분 문을 닫았다.

조선소나 기자재 업체가 들어온 조선특구도 사정이 나을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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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특구 중 한곳인 동해면 장좌리 일대 장좌지구에는 고성조선해양이 있다.

이 회사는 STX조선해양 자회사로 2009년부터 STX조선해양에 납품할 선박 블록을 만들었다.

2011년부터는 STX조선해양이 수주한 선박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고성조선해양은 모기업인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 신청을 한 지난 5월말부터 자금난으로 선박건조를 중단했다.

한때 2천500여명이 일한 조선소 야드에는 현재 관리직 200여명 정도만 출근한다.

건조를 일시 중단한 선박 2척을 완성해 인도하면 조선소를 돌리려 해도 더 이상 물량이 없다.

불과 10년도 안된 설비가 통째로 고철이 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나마 동해면 내산리에 있는 조선특구 구역인 '내산지구' 만 제대로 가동되는 상황이다.

내산지구내 삼강엠엔티㈜는 최근 줄어든 국내 조선소 물량외에 일본 중공업 회사 물량을 받아 공장을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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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산업 특구 기간 더 연장한 고성군

조선업을 둘러싼 최근 상황은 최악인데도 고성군은 올해 초 양촌·용정지구 특구 사업기간을 2015년에서 2018년까지로 3년 연장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조선특구 3곳의 면적도 265만㎡에서 388만㎡로 확대했다.

명칭도 '조선산업 특구'에서 '조선해양산업 특구'로 바꿨다.

조선산업 외에 해양플랜트 사업을 특구 목적에 추가했다.

고성군 관계자는 "지금은 조선경기가 좋지 않지만 1~2년을 버티면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조선보다 첨단산업인 해양플랜트를 추가해 특구 기간과 면적을 확대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왕 사업을 시작했으니 늦더라도 무산시켜서는 안된다는 지역 주민들 의견이 있고 유가가 하락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유가가 오를 가능성이 있어 해양플랜트 사업이 장래가 밝을 것으로 예측했다"고 덧붙였다.

면적과 사업기간이 늘자 사업비도 6천48억원에서 7천952억원으로 1천904억원이나 증가했다.

사업비 전액은 민간투자다.

고성군청 내에서 조선특구 사업은 애물단지 취급이다.

고성군은 조선특구 산업을 추진하면서 특구경제과를 만들었다.

하지만 조선특구 사업이 휘청대는 동안 언제부터인지 특구경제과는 없어지고 항공산업경제과내 특구담당으로 축소됐다.

지난 4일자 정기인사에서는 미래전략실내에 투자유치 담당이 조선해양산업 특구를 담당하는 것으로 조직개편을 했다.

특구산업이 꼬이는데 담당 부서는 갈수록 축소된 것이다.

이정곤 고성군 부군수는 "지금 조선경기가 침체상황인 것은 맞다"고 말했다.

그는 "2018년~2020년 사이 조선경기가 다시 살아날 것이란 전망이 있는 만큼 지금 어렵다고 조선산업 특구를 포기하면 더 큰 어려움이 따른다"고 강조했다.

sea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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