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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빚 많고 장기불황 일본의 엔화는 왜 '안전자산'일까

송고시간2016-07-0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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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1위 대외순자산, 세계2위 외환보유고, 엔 캐리트레이드 등 영향


세계1위 대외순자산, 세계2위 외환보유고, 엔 캐리트레이드 등 영향

(서울=연합뉴스) 이춘규 기자 = 엔화가치가 다시 급등하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의미하는 브렉시트(Brexit)가 결정된 뒤 '안전자산'이라는 이유로 엔화를 사겠다는 수요가 급증한 결과다.

7일 국제금융시장에 따르면 브렉시트 개표결과가 나온 지난달 24일 달러당 100엔 선이 흔들린 엔화 가치는 지난 6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장중 100.58엔까지 오르고 간밤 뉴욕시장에서도 강세를 이어갔다.

엔화 가치는 작년 연말에 비해선 15% 넘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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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본 경제의 현주소를 보면 엔화 강세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경제는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릴 정도로 좋지 않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45% 수준으로 선진국 가운데 최악의 수준이어서다.

통화정책 측면에서 보면 지난 1월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는데도 엔화가치는 뛰었다. 금리를 내려 돈값을 떨어뜨렸는데도 그 반대로 움직인 것이다. 25년가량 반복된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아베노믹스를 가동했는데도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위기가 올 때마다 엔화가 투자자들의 안전한 도피처가 되는 것은 일본경제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첫째 이유로는 작년말 현재 339조엔(당시 환율 기준 2조8천억달러)이나 되는 일본의 대외순자산 규모가 꼽힌다. 세계1위다. 세계경제에 쇼크가 오면 일본인이 해외에 가진 외화평가 자산을 팔아 엔화로 바꾸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는 엔화 수요를 높여 엔고로 이어진다.

다만 투자가들이 위험회피적으로 될 때 엔화를 사려는 경향은 대부분 단기에 그쳤다.

둘째 이유는 일본의 높은 외환보유고에 있다. 4월 현재 일본의 외환보유고는 2조2천600억달러가 넘는다. 6월말 현재 3조1천917억달러였던 중국에 이은 세계 2위 외환보유국이다. 일본이 외환보유 대국인 것은 25년 연속 흑자를 내는 경상수지 때문이다.

특히 엔화는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거래비중 43.5%), 유로화(16.7%)에 이어 세 번째(11.5%)로 많이 거래돼 위기 때도 결제에 문제가 없다. 안정성이 최우선인 3대 국제결제통화에 속하는 것이다.

셋째로는 나랏빚이 천문학적이라고 하지만 대외불안 요인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거론된다.

일본 국가채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부 발행 국채의 95%는 엔화표시로 발행되는데, 해당 국채의 90~95%를 일본인이 매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한 고령세대가 많이 갖고 있기에 위기가 닥쳐도 외국인과는 달리 팔아치울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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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로는 초저금리 지속과 엔 캐리 트레이드가 거론된다.

일본은행은 거품붕괴 뒤 경제를 살리고자 17년 전에 처음 제로금리를 단행할 정도로 금융완화를 해왔다. 지금은 마이너스 금리다.

이 때문에 '와타나베 부인'으로 불리는 일본 개인투자가들은 평상시 초저금리의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통화자산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를 시도했다. 하지만 시장이 혼란할 때는 불안한 투자자들이 캐리 트레이드를 청산하고 이는 엔화 매수로 이어져 엔화가치 급등을 낳는다.

상당수 외국인 투자자들도 일본 와타나베 부인 등의 영향을 받아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밴드왜건효과(편승효과)'를 입증하듯 엔화를 산다는 분석도 있다.

김용준 국제금융센터 외환팀장은 "과거 시장이 안정적일 때 엔화를 빌려 해외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유행했다"며 "시장이 불안해지면 이 같은 거래를 청산해 엔화가 강세를 띠는데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서 시장이 불안해질 때마다 엔화 강세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이 때문에 현재는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 여부와는 상관없이 시장이 불안하면 엔화에 자산이 몰리는 형태가 굳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다섯째 이유로는 세계적으로 국가경제의 경쟁력과 환율의 상관관계가 약화했다는 점이다. 한 국가의 경제가 좋으면 해당 통화가 강세여야 하는데 최근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디플레이션이 심화하는 속에서도 엔화가치는 올랐다.

이를 놓고 '잃어버린 20년'이 일본경제의 체력을 키웠다는 진단도 나온다. 일본이 생산가능인구 감소나 설비 노후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체질을 강화한 것이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상황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일본정부에 비해 가계의 재정상태는 건전한 편이다. GDP 대비 가계부채는 66%로 한국(84%)이나 미국(78%)보다 낮다. 초저금리에서도 빚잔치를 하지 않은 일본인들이다.

도요타자동차나 소니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도 있지만 중소기업도 강하다. 도쿄도 오타구,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 등지에는 기술력을 가진 중소·중견기업들이 일본경제를 지탱한다.

이종윤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은 "'잃어버린 20년'이란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그 기간 첨단기술개발 등 경제체질을 강화한 것이 엔화가 안전자산이 된 배경 중 하나"라면서 "일본정부가 엔저 유도를 하지 않으면 세계 1위 대외순자산 등을 배경으로 엔고는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tae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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