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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 퇴위 규정 왜 없나…"히로히토 전쟁책임 안지게 하려고"

송고시간2016-07-1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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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케이 "자유퇴위 논의됐지만 궁내청·정부가 반대"


닛케이 "자유퇴위 논의됐지만 궁내청·정부가 반대"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아키히토(明仁·82) 일왕이 생전 퇴위 의향을 밝혔다는 일본 언론 보도를 계기로 왕실 전범의 개정 문제가 정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1947년 제정된 왕실 관련 법률인 왕실 전범은 일왕 별세시 왕세자가 곧바로 즉위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생전 퇴위에 관한 내용은 없기에 전범 개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왜 애초 왕실 전범에 생전 퇴위 규정을 두지 않았을까.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인터넷판은 18일 왕실 전범이 제정될 당시 퇴위 규정이 논의됐지만 일본 정부가 반대했으며, 그 배경에는 히로히토(裕仁·1926∼1989 재위) 일왕이 전쟁 책임 문제로 물러나는 길이 열리는 것을 우려한 궁내청(왕실담당 관청)의 반대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신문에 의하면, 일본 패전후 왕실 전범 입안때부터 "천황(일왕)의 발의(發議)에 따른 퇴위를 국무대신의 조언과 승인에 의해 허용하고, 퇴위후의 신분을 '상황'으로 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었다.

연합군총사령부(GHQ)도 "왕위 계승을 별세시로 한정하는 것은 자연인으로서의 천황의 자유를 과도하게 구속한다"며 "퇴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냈고 국회에서도 사회당 의원이 자유의사에 의한 퇴위 규정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 측은 "천황에게 '사'(私)는 없으며, 모든 것이 '공적인 일'"이라는 논리로 반대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퇴위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로 "퇴위의 자유를 인정하면 그것에 대응해 천황에 취임하지 않을 자유도 인정해야 한다", "천황의 의사에 근거하지 않은 퇴위를 강제당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이 같은 입장의 배경에는 전쟁 책임을 지고 히로히토 일왕이 물러나는 상황을 막으려는 궁내청(당시 궁내성)의 강한 반대가 있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그러자 당초 생전 퇴위 규정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GHQ도 "야심적인 천황이 퇴위후 정치 운동에 투신해 총리가 되면 곤란하다"는 다소 엉뚱한 이유로 정부의 입장에 동조했다.

결국 1947년, 신 헌법 하에서의 왕실 전범이 생전 퇴위 규정 없이 제정됐지만 그 후로도 생전 퇴위를 둘러싼 논의는 있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1948년 태평양전쟁 일본인 전범을 단죄한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 판결이 이뤄졌을 때와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때 아키히토 일왕이 전쟁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도의적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또 1950년대 후반 제도적으로 생전 퇴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국회에서 제기됐다. 일왕도 인간인데 평생 공인의 지위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기본적 인권에 비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1959년 2월 중의원 내각위원회에서 사회당 우케다 신키치(受田新吉) 의원(사회당)은 "천황도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정년 퇴직에 해당하는 연배가 된다. 천황의 퇴위 자유가 인정되면 좋지 않은가"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당시 내각법제국 장관은 "(국가의) 상징으로서의 천황 지위에 입각해 생각하면 자신의 발의로 그 자리를 물러서는 것은 모순"이라며 일왕이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퇴위할 수는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 1991년 3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도 퇴위를 가능하게 하자는 견해가 나왔지만 당시 궁내청은 "자의적 퇴위는 천황 지위의 안정성을 해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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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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