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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주 명문대 출신"…재산축적 욕심에 '축사노예' 19년 은폐

송고시간2016-07-2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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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소 5마리로 시작해 100마리로 불려…농장주 수십억 재산가"

"우리집 오송" 기억 또렷한 '만득이' 가족품 돌려보내지 않고 강제노역

(청주=연합뉴스) 전창해·이승민 기자 = 청주 '축사 노예' 사건의 가해자인 농장주가 지적 장애로 판단력이 흐린 '만득이' 고모(47)씨 존재를 의도적으로 은폐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농장주 명문대 출신"…재산축적 욕심에 '축사노예' 19년 은폐 - 2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서 축사를 운영하는 김모(68)씨 부부는 1997년 여름 소 중개업자의 손에 이끌려 온 고모(47·지적 장애 2급)씨를 19년간 붙잡아두고 무임금 강제노역을 시켰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한가족처럼 지냈고, 감금은 없었다"며 "집이나 신원 확인을 하지 않고 임금을 주지 않은 것은 잘못이지만 예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이니까 문제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래전 시골에서는 오갈 데 없는 부랑자나 장애인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허드렛일을 시키며 머슴으로 부리는 사례가 간혹 있었다.

김씨의 주장은 오갈 데 없는 고씨를 '거둬줬다'는 논리다.

하지만 경찰 조사 이후 드러난 정황이나 증언은 고씨가 김씨 농장으로 오게 된 경위부터 19년간 강제노역을 하며 머문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선 김씨는 경찰에서 고씨를 데려온 소 중개인에게 사례금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주도적이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고씨를 두고 돈거래를 했다는 얘기다.

즉 고씨가 거처가 없어 자발적으로 김씨 농장을 찾아온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고씨는 김씨 농장에 오기 전 천안의 한 양돈농장에서 자신을 자식처럼 여기는 농장주에게 일을 배우며 비교적 순탄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만 소 중개인이 10년 전 교통사고로 숨져 고씨가 김씨 농장에 흘러든 상황을 명확히 규명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고씨는 김씨 농장에서 '만득이'로 불리며 무려 19년간 무임금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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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경찰에 "한가족처럼 지냈다"고 밝혔지만 고씨는 2평 남짓한 창고 옆 쪽방에서 지내며 100여 마리의 소들을 돌보는 중노동에 내몰렸다.

김씨는 1985년 서울에서 낙향할 당시 5마리에 불과했다는 게 주민들 전언이다. 그런 김씨 농장의 소는 30여년 만에 100마리까지 불었고, 고씨의 일도 당연히 많아졌다.

김씨 부부는 고씨 덕에 한 푼의 품삯도 들이지 않고 축사를 운영, 큰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마을에서 김씨네는 수십억 원대 부자로 통한다.

축사 인근 주민은 "김씨가 농장 주변 꽤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데 옥수수 수확이 끝나면 소들을 방목하곤 했다"며 "축사로 돈을 벌어 다른 곳에도 땅을 많이 샀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김씨가 부를 축적하는데 고씨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그런 고씨의 신원을 확인하거나, 집을 찾아주려는 의도는 김씨 부부에게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30대 중반인 1985년 이곳에 터를 잡고 축산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마을주민은 "김씨와 모임을 하나 하는데 거기서 그가 서울의 명문대 출신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김씨가 세상 물정 어두운 시골 필부가 아닌 대학 졸업의 학력자라면 마음먹기에 따라 고씨 집을 찾아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파출소나 동사무소에 데려가 지문 확인만 했으면 될 일이다.

2년 전 '염전 노예' 사건으로 장애인 부당 고용이 사회적 문제가 됐던 것을 김씨 부부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그때도 김씨 부부는 고씨의 가족을 찾아주는 것을 외면했다.

심지어 고씨는 자신의 집이 어디였는지도 잊지 않고 기억한 것으로 보인다.

"농장주 명문대 출신"…재산축적 욕심에 '축사노예' 19년 은폐 - 4

축사 주변의 한 주민은 "만득이가 마을버스 정류장에 앉아있길래 집에 가고 싶어서 그러느냐면서 농담처럼 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오송, 오송'이라고 대답했다"며 "김씨 부부가 (만득이를)호남에서 데리고 왔다고 해서 실언을 하나보다 했는데 자기 집이 어디인지를 기억하고 있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실제 고씨의 어머니(77)와 누나(51)가 있는 집은 청주시 흥덕구 오송이었다.

19년을 함께 살아 고씨의 고향이 오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김씨 부부가 마을 주민들에게 그를 호남에서 데려왔다고 했다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 셈이다.

김씨 부부는 수사에 착수한 경찰이 축사에 찾아가 고씨와 어떤 관계인지를 묻자 '사촌동생'이라고 답했고, 이어 '먼 친척'이라고 둘러댔다.

경찰에조차 고씨의 실체에 대해 속이려 한 것이다.

일이 고된 데다 파리가 날리고 악취가 진동하는 가축 사육을 하는 축산농들의 가장 큰 애로는 인부를 구하는 일이다.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들조차 가축 사육을 기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지적 능력이 떨어져 일반인에 비해 일 처리 능력은 떨어지지만 고씨는 김씨 부부에게 아쉬운 대로 쓸모 있는 일꾼이었을 것이다.

임금 한 푼 주지 않고, 싫어도 제대로 저항조차 못 하는 고씨에게 19년 동안 궂은일을 맡겨왔던 노부부는 익숙한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서 그를 쉽게 놓아주고 싶지 않았을지 모른다.

감금한 적이 없다는 것이 김씨 부부의 주장이지만 집을 찾아주려는 노력 없이 고씨에게 노동을 강요했다는 점에서 강제적 억류로 볼 수 있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농장주가 신체를 감금하지는 않았더라도 무임금 노동을 강요하고, 회유와 협박으로 판단력이 떨어지는 고씨를 붙잡아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씨 부부가 의지만 있었다면 진작에 고씨를 가족 품에 보냈을 것"이라고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경찰은 고씨에게 무임금 강제노역을 시키고, 학대한 의혹이 있는 김씨 부부에게 장애인복지법 위반 및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를 적용, 조만간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고씨는 19년간의 강제노역을 끝내고 지난 14일 가족과 극적으로 재회했다.

jeon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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