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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불안하고 침통한 '독일의 여름'…"희생된 그들은 우리입니다"

송고시간2016-07-2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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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 추모 꽃다발·촛불, 애도 발길 이어져…조기도 내걸려


곳곳 추모 꽃다발·촛불, 애도 발길 이어져…조기도 내걸려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내가 사는 바로 옆에서 모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촛불은 희생당한 그들을 위한 하나의 빛입니다."

지난 22일 오후(이하 현지시간) 발생한 뮌헨 총격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현지 주민 헬가 마코 씨는 모든 게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았다.

주말인 23일과 24일 사건 현장인 맥도널드 매장 등 주변에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애도하는 마음은 촛불로도, 또한 흰색 장미로도 표현됐다.

추도 현장에선 "왜"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 종이도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이런 비현실적 행태가 반복되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이 맹목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광란의 총격에 그렇게 스러져도 되는 것인가. 추모객들은 그 화두를 붙잡고 유족과 함께 울었다.

뮌헨 총기 난사에 망연자실한 독일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말마따나 당일 "공포의 밤"을 지내고 차분한 추모 흐름을 보이고 있다. 치안 확보와 안보 증진의 단단한 다짐과 함께다. 곳곳에는 추모의 꽃다발과 촛불도 모자라 조기가 내걸렸다.

<르포> 불안하고 침통한 '독일의 여름'…"희생된 그들은 우리입니다" - 2

엔버 혹스하즈 코소보 외교부 장관은 몸소 사건 현장을 찾기까지 했다.

그는 "독일과 코소보에 모두 지난한 밤이었다"며 유족들을 위로하고 "독일과 함께하겠다"고 했다. 이번 공격으로 숨진 이들 9명을 국적별로 보면 터키와 더불어 코소보 출신이 3명으로 가장 많았다.

한국인은 희생자 명단에 없었다. 사건 당일 밤부터 비상근무에 들어간 한국공관은 모든 희생자를 추도했다.

주독 한국대사관의 김동업 공사는 "프랑크푸르트 공관에서 근무하는 경찰 인력이 뮌헨 현지로 가서 점검 작업을 했다"고 전하며 한국인 희생은 없다고 확인했다.

이번 사건의 특징 중 하나는 희생자 연령대가 13살 3명, 15살 2명, 17살 1명, 19살 1명 등 10대만 7명이었다는 점이다.

'평화 프로젝트'이기도 한 유럽의 불안한 오늘과 더는 안전하지 않은 독일의 현주소는 미래 주역인 젊은이들에게 특히나 큰 걱정과 시름을 안기고 있다.

베를린을 대표하는 '자유 지성' 베를린자유대에 1개월 교환학생으로 온 대학생 이예영(23) 씨의 체험담은 실상을 웅변했다.

23일 밤 베를린 쉐네펠트공항에 도착한 그가 베를린으로 향하면서 처음으로 마주한 소식이 바로 "뮌헨 총격 참사"였다.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는 아니겠으나 그래도 미지의 세계로 발을 디딜 때 으레 들게 되는 달뜬 마음은 싹 가셨다.

파리와 런던을 거쳐 베를린에 당도한 그는 무엇보다 '안전'을 걱정했다. 프랑스에서 '니스 트럭 질주 테러'를 듣고 파리 '혁명기념일' 행사 땐 인파를 향해 강력한 폭죽을 쏴 대는 위험을 겪었다.

한 달여 간 유럽을 돌아보고 있는 대학생 정서우(23) 씨 역시 "파리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어느 땐 정말 불안 불안했다"고 운을 떼고는 "그러나 독일은 메르켈이 세서(강력해서) 괜찮을까 싶었는데 아닌 것 같다"고 느낌을 말했다.

유럽 주요 국제공항과 중앙역 등 핵심 공공장소에서도 나타나는 유럽의 불안 징후와 삼엄한 경계 분위기도 전했다. 그는 "별것도 아니었는데도 검색대를 통과할 때 그저 소리가 좀 났다고 신발을 벗기는 등 무지하게 예민하게 반응하더라"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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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저명 주간지 슈피겔 계열 슈피겔온라인은 지난 18일 열차 도끼 만행에 이어 터진 이번 총격 참사를 계기로 "(구분하기) 어려운 개념 : 무엇이 테러인가? 무엇이 광란의 총기살해인가?"라고 질문했다.

유럽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대중지 빌트와 자유주의 언론의 대표격인 쥐트도이체차이퉁 같은 독일 주요 신문은 '정치적 목적과 동기',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과 수단'이라는 개념화 요건을 따져 이번 사건을 대하면서 "테러"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베를린 거점의 일간 타게스슈피겔은 "뮌헨에서의 테러"라고 23일 헤드라인을 장식함으로써 슈피겔온라인의 질문을 방증했다. 이 매체는 그러고는 일요판에서는 전체 희생자 9명 중 14∼20세 연령대가 8명이었다고 짚고서 "쇼크 이후의 고통"이라며 시민들의 추도 흐름을 전했다.

독일인들의 기억에 가징 인상 깊게 새겨진 대표적 테러는 안드레아스 바더, 울리케 마인호프 같은 이들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무장폭력그룹 '적군파 테러'다. 1970∼80년대 독일사회를 흔든 이들의 극좌 혁명의 모험주의는 살해, 납치, 인질극, 무장강도 행위 같은 것들로 점철됐다.

자유로운 예술정신을 앞세운 뉴저먼시네마의 기수였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이 소재 삼은 영화 '가을의 독일'이 적군파 사건을 다룬 이후로 '독일의 가을'은 음산했던 적군파 테러 시기를 표징 하는 말이 돼 버렸다.

이번 사건의 범인이 집단살해에 탐닉하면서 그중에서도 특히, 신나치주의 살인범 브레이비크의 집단살해 행각에 자극받았다는 분석도 나오는 형국이다.

밀려드는 난민 위기와 증가일로의 외국인혐오, 그 속에서 자라는 극우 득세, 그리고 이유도 불분명한 무차례 공격 행위가 유럽의 평화와 독일의 안위를 위협하는 지금은 '독일의 여름'이다.

un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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