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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조랑말이 한라산 오른 까닭은…"조릿대 제거" 특명

송고시간2016-07-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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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천600m '아고산대' 만세동산에 말 4마리 풀어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 5년간 조릿대 관리방안 연구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백록담이 훤히 보이는 해발 1천600m 한라산 만세동산에 가면 말 4마리가 한가롭게 조릿대를 뜯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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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랑말(제주마) 2마리와 한라마 2마리다. 제주마는 순수 혈통을 인정받은 조랑말이고, 한라마는 조랑말과 외국산 경주용 말인 더러브렛종과의 교잡종이다.

이 말들은 "한라산을 점령한 조릿대를 제거하라"는 특명을 받고 지난 22일과 24일 이틀에 걸쳐 이곳까지 올라왔다. 오는 10월 초까지 75일 동안 이곳에서 조릿대로 포식하며 지내게 된다.

제주도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은 한라산국립공원을 전체적으로 뒤덮어 다른 식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조릿대를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말 방목'을 선택했다.

먼저 문화재청으로부터 연구 목적의 현상변경허가를 받았다. 이어 항공기에서 레이저를 쏘는 라이다(LiDAR) 촬영 방식으로 만세동산을 측량하고, 조릿대가 빼곡히 들어선 1㏊ 면적에 사각으로 철조망을 둘렀다. 철조망 안쪽의 식물상을 조사하고 나서 말을 들여보냈다.

말을 방목하는 방법은 앞선 연구에서 힌트를 얻었다.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의 김현철 녹지연구사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해발 약 600m에 있는 국립축산과학원 열안지방목장과 제주시 공동묘지 인근에서 '제주조릿대의 말 사료가치 평가'와 '제주조릿대의 생태학적 특성 및 관리방안'이란 두 가지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결과 말은 조릿대를 아주 잘 먹어 사료로서 가치가 충분했다.

말 1마리가 하루 18∼24㎏ 정도의 조릿대를 먹는 것으로 조사됐다. 말을 방목하는 강도가 세어질수록, 즉 횟수가 증가할수록 조릿대 줄기의 길이와 굵기는 물론 줄기수도 감소했다. 따라서 조릿대 하부의 광선, 기온, 습도 등 환경이 개선돼 종 다양성이 개선됐다.

말 방목이 조릿대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오랫동안 근무한 직원이나 오래전부터 한라산을 올랐던 산악인들도 알고 있다. 이들은 한라산에 마소 방목이 금지될 당시인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조릿대가 지금처럼 번성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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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조릿대 관리방안 연구'란 이번 실험은 이러한 근거들을 바탕으로 올해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진행한다. 실험은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가 함께 한다.

방목장을 0.5㏊씩 나눠 한쪽에서는 잎과 줄기만 뜯어먹게 적정방목을 하고, 한쪽에서는 뿌리까지 뜯어먹을 수 있게 강방목을 하는 방식이다. 내년부터는 4∼7월과 7∼9월로 나눠 2차례씩 같은 방법으로 방목한다. 방목이 끝나는 10월에는 식물상을 조사해 어떤 식물들이 새로 자라나는지 확인한다.

말 방목 효과와 비교 분석하기 위해 해발 1천800m 장구목에서는 사람이 직접 조릿대를 베어내고 있다.

장구목에도 같은 방법으로 1㏊의 조사구를 설정하고 0.5㏊씩 나눠 한쪽에서는 잎과 줄기를 모두 베고 있다. 한쪽은 줄기와 잎을 베어낸 다음 토양 위에 깔린 부엽층까지 걷어낸다.

내년에는 0.5㏊를 다시 5등분 해 5분의 4 부분만 베고, 다음 해에는 5분의 3 부분만 베는 방식으로 해마다 베어내는 부분을 줄여간다. 이렇게 해서 베어내기 횟수에 따른 조릿대의 생육 상태를 파악한다.

장구목 실험구에서도 해마다 10월에 식물상을 조사해 어떤 식물이 새로 자리를 잡아가는지 파악한다.

5년 뒤에는 말 방목 실험구와 사람이 베어내기를 한 실험구의 조릿대 생육 상태와 종 다양성 등을 비교 분석한다. 그동안 들어간 비용도 비교해 투자 대비 효과가 좋은 방법을 가려낸다.

연구가 마무리되면 주요 식물들이 자생하는 지역의 조릿대 번식을 막기 위한 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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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연구사는 "낙엽수림지대에서의 이전 연구에서는 조릿대가 작아지고 밀도가 감소하는 효과가 있었다"며 "이번에는 식물 생육이 아주 늦고 주변 환경변화에 민감한 아고산대에서 장·단점을 분석해 5년 후 정확한 관리방안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제주조릿대에 대한 기록은 1577년 제주를 찾았던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가 남긴 제주에 대한 기록 '남명소승'(南溟小乘 )에 나온다. 임제는 "작은 대와 누런 띠들이 그 위를 덮고 있어 말의 통행이 심히 어려웠다"고 적었다.

이후 1601년 어사 김상헌(金尙憲), 1702년 목사 이형상(李衡祥), 1841년 목사 이원조(李源祚) 등이 각각 기록했다.

1914년에는 한라산에 분포하는 식물에 관한 최초의 연구 보고서인 '제주도 및 완도 식물조사보고서'에 언급됐다. 1950년 이후 국내 학자들에 의해, 1970년대에 제주에 사는 학자들에 의해 한라산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 때마다 자주 거론됐다.

다만, 조릿대는 옛날부터 한라산에 폭넓게 분포하는 하층 식생임에도 주요 연구대상은 아니었다.

조릿대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해발 600m에서 1천900m까지 대부분 지역에서 분포한다.

15년 전부터 조릿대가 당뇨와 고혈압 등에 좋다는 입소문이 돌고, 이를 소재로 한 기능성 음료 제품이 시중에 나오면서 일반인들도 많은 관심을 끌게 됐다.

백록담을 포함한 한라산은 1966년 천연기념물로, 1970년 한라산국립공원으로,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각각 지정됐다.

'2012년 한라산국립공원 자연자원조사' 보고서를 보면 한라산국립공원에는 4천600여 종의 난대·한대·아한대 생물이 서식한다.

이는 도내 전체 7천여종 가운데 66%에 해당한다. 생물 종은 유관속식물 931종, 담수조류 71종, 식물플랑크톤 46종, 지의류 145종, 선태식물 378종, 포유류 27종, 조류 74종, 양서·파충류 13종, 곤충류 2천664종, 저서성 대형 무척추동물 49종, 고등균류(버섯) 202종 등이다.

예부터 행해졌던 한라산 말 방목은 30여년 전 식생 보호 등을 이유로 금지됐으니 이제는 오히려 종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검토되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에 말들이 뛰노는 목가적 풍경을 관광자원화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이 자연스럽게 실현되지도 모를 일이다.

kh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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