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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에 1억'…파산위기 무료변론 변호사 돕기 성금 쏟아져

송고시간2016-08-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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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밀려 사무실 문닫을 처지…'스토리펀딩' 3일만에 1억 모금

수원역 노숙소녀ㆍ삼례 3인조 사건 등 재심 이끈 박준영 변호인

(수원=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2007년 5월 17일 새벽 경기도 수원의 한 고등학교 화단에서 인근을 돌며 노숙하던 김모(당시 15) 양이 모진 폭행을 당해 숨진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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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노숙자 2명이 김양을 숨지게 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이듬해 최모(당시 18) 군 등 가출 청소년 5명이 진범으로 지목돼 법정에 섰다.

박준영(43ㆍ사법연수원 35기) 변호인은 최 군 등의 변론을 맡았지만 실패했다. 무죄라고 확신했던 청소년들에게 징역 2∼4년이 선고됐다.

이른바 '수원 노숙소녀 사망사건'은 박 변호인을 재심 전문 변호인의 길로 이끌었다.

박 변호인은 "제가 변호를 잘못해서 유죄가 난 거에요"라며 입을 열었다.

그는 "아이들이 전부 자백해서 처음에는 헷갈렸어요. 그런데 현장을 가보니 상황이 자백 내용과 전혀 안 맞더라고요. 아이들은 담을 넘어서 학교에 들어갔다고 했는데 넘을 수 있는 높이ㆍ구조의 담이 아니었고 그곳을 지나갔다면 찍히지 않을 수 없는 CCTV에 그들의 모습이 없었어요. 모순이 한둘이 아녔습니다"라고 기억을 되짚었다.

박 변호인은 이 사건을 재심으로 이끈 뒤부터 허위자백ㆍ회유 등 수사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문제, 특히 사회적 약자의 권리 침해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미성년자ㆍ지적 장애인 등이 범인으로 지목돼 옥살이한 석연치 않은 사건들을 접하고 수년에 걸쳐 당사자들을 찾고 관련 기록을 모으는 등 10년도 더 지난 일을 다시 파고들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삼례 3인조 강도치사사건'의 재심 확정판결은 이렇게 나왔다.

극히 이례적인 일반 형사사건의 재심을 그는 벌써 3차례 받아냈다. 재심 결정이 난 뒤 검찰이 항고해 아직 확정판결이 나지 않은 '무기수 김신혜 사건'까지 더하면 4차례다.

전국 2만여 명의 변호사가 가입한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해 박 변호인을 '제3회 변호사공익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변호사공익대상은 인권옹호, 사회적 약자 지원 활동으로 공익 실현에 기여한 변호인 개인과 단체에 주는 상이다.

그런 그가 수원지법 앞 자신의 사무실을 이달 말까지 비워야 할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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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들의 억울함을 풀고자 재심 사건에 집중하면서 '돈 되는' 사건을 맡지 못한 탓이다. 재심 사건들은 모두 돈을 받지 않고 진행했다.

2012년부터 4년째 쓰고 있는 사무실의 월세가 이번 달로 열 달째 밀렸다. 마이너스 통장은 한도가 찼고 적금도 모두 깼다.

한때 변호인 2명과 직원 4명을 고용했었지만, 월급을 감당할 수 없어 모두 내보낸 뒤 지난해부터 30여 평의 사무실을 홀로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현재 맡은 재심 사건에서 손을 뗄 생각이 없다.

박 변호인은 "아직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멈추고 다른 사건을 맡을 수 있겠어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제가 사회에 의미가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이 사회가 저를 도울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는 사회에 도움을 청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스토리펀딩'에 자신의 사연을 알리고 후원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11일 석 달에 1억 원 모금을 목표로 글을 올렸는데 3일 만인 14일 오후 목표를 달성했다. 15일 오전 10시 현재 1억824만여원의 후원금이 모였다. 2천869명의 시민이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박 변호인은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고 정의를 바라는 시민들의 마음이 이렇게 크다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큰 도움, 많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최근 수십억 원의 수임료를 받고 문제를 일으킨 일부 변호인에 대한 국민 분노가 큰 상황에서 반사이익을 본 것도 같고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당초 기반을 다져 온 수원을 떠날 계획이었지만 후원금을 통해 수원에서 변호인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사법 시스템 운용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의 권리 침해를 막는 일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마음가짐도 다잡았다.

박 변호인은 "법과 제도를 만드는 분들한테 현장에서 찾은 문제점을 분명하고 실질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재심해서 무죄가 나오면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체계적으로 밝혀서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이죠. 단지 한 개인의 불행을 끝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라고 말했다.

이 길을 걷는 이유에 대해서는 "저는 제가 만족할 수 있는 경제적 기준을 확 낮췄어요. 그러고 나서 변호인 활동을 하다 보니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저는 그 사람들에게 제가 베푼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법률적 경험과 지식이 있는 제가 이렇게 하는 게 형평성에 맞는 거고 배분적 정의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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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노숙소녀 사망사건'은 현재 미제로 남아있다.

최 군을 비롯한 가출 청소년들은 2009년 서울고등법원에 이어 대법원에서 "혐의를 인정할 물증이 전혀 없고 자백의 경위 또한 석연치 않아 진술의 진실성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들에 앞서 범인으로 몰려 수감됐다가 만기출소한 노숙자들도 "수사기관의 회유에 허위로 자백했다"며 청구한 재심에서 누명을 벗었다.

박 변호인은 제2의 최 군들을 찾고 있다.

zorb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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