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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조라떼' 낙동강서 빈 그물 들고 망연자실한 늙은 어부(종합)

송고시간2016-08-2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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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차 어부 성기만 씨 "4대강 사업 후 수질 악화로 물고기 씨 말라"

"메기·붕어·잉어 등 하루 천마리 잡기도 했는데…2012년부터 격감 지금은 10마리도 버거워"

(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강의 흐름이 멈추자 생명의 흐름도 멈췄다.

'녹조라떼' 낙동강서 빈 그물 들고 망연자실한 늙은 어부(종합) - 2

늙은 어부는 잔디 색깔로 물든 녹색 강에서 텅 빈 어망을 걷어 올리며 낙동강 유속보다 빠르게 흘러내리는 땀을 훔쳤다.

지난 16일 찾은 경남 창녕군 박진교 인근 낙동강은 푸른 융단을 깔아놓은 듯 피어오른 녹조로 가득했다.

이틀 전 수자원공사는 찌는 듯한 가마솥더위 때문에 녹조가 기승을 부리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낙동강 수계 보와 댐 6곳의 수문을 여는 댐-보 연계방류를 단행했다.

그러나 이날 찾은 박진교 인근 낙동강은 물 3천400만t을 흘려보낸 뒤 강의 모습이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로 '푸른곰팡이'가 가득 낀 모습이었다.

강기슭에는 선명한 녹조 띠가 형성돼 있었으며 일부 구간에서는 녹조가 뒤엉켜 페인트처럼 끈적끈적하게 변한 녹조 덩어리가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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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위를 가로지르는 바람은 찌는 듯한 더위를 머금은 듯 뜨겁다 차갑기를 반복했다. 강바닥 수온마저 29도까지 치솟았다.

이곳에서 만난 성기만(57)씨는 20년 차 베테랑 어부였다.

평소 낚시에 취미가 있던 그는 낙동강에서 물고기를 잡던 지인이 큰돈을 버는 모습을 보고 어부의 길로 뛰어들었다.

박진교 인근 낙동강 20㎞ 구간은 그가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이었다.

그렇게 20년을 낙동강 품 안에서 통발을 던지고 어망을 거두며 살았다.

아들 한 명과 두 딸의 학자금도, 병치레하는 아내의 병원비도, 반백의 노모 밥상에 올라가는 물고기 반찬도 모두 낙동강에서 건져 올렸다.

이 시절 낙동강은 마태복음의 한 구절처럼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아 '그물은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는' 풍요의 강이었다.

장어, 메기, 붕어, 잉어 등 다양한 민물고기가 그물에 걸렸다. 운 좋으면 하루에 1천마리 이상을 잡기도 했다.

남 보다 여유롭진 않지만 남 만큼 넉넉하게 지내던 그의 삶은 4대강 사업이 끝난 2012년부터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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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단위로 일부 구간에서만 발생하던 녹조는 강 본류까지 침투했다. 어망과 통발을 가득 채우던 물고기도 점점 줄었다.

지금은 하루에 10마리 잡기도 버거운 형편이다. 이마저도 강준치나 블루길 따위가 대부분으로 병에 걸렸을까 봐 팔지도 못한다.

학자들은 간 질환을 유발하는 마이크로시스틴이나 리굴라 촌충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녹조, 호우 등이 닥칠 때마다 8개 보는 수문을 열고 물을 쏟아냈다. 어부 입장에서 이는 기존 문제의 해법이 아니라 또 다른 문제의 발단이었다.

"올 6월 수자원공사에서 갑자기 보 수문을 열고 방류하겠다는 문자를 보냈어요. 문자를 받고 10분 만에 강에 도착했더니 그곳에 정박했던 배 3척이 물살에 떠내려가고 있는 겁니다. 수자원공사 직원들을 불렀더니 자기들도 방법이 없다며 119에 신고해 구조대원들이 배를 다시 강기슭으로 끌고 오는 웃지 못할 일이 있었어요."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강 곳곳에 설치해 둔 통발과 어망이 물살에 휩쓸려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분실한 어구를 보상해주는 기관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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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오염되면서 물고기도, 물고기 잡을 도구도 모두 잃어버린 성 씨는 두드릴 수 있는 문은 모두 두드려가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국토교통부, 수자원공사, 창녕군을 직접 찾아가 시위를 하거나 담당자를 만나 면담을 했으나 모두 손사래를 쳤다.

어떤 이는 '안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어 보상은 곤란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4대강 조사위원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어민 어구 손실 실태조사를 해 보상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그뿐이었다.

한 국회의원도 "어민들 고충이 국회에서 다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정치인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에 그치는 경우가 예사라지만 그 의원 말을 믿었던 성씨는 허탈함을 느꼈다.

그는 올 7월부터 어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집에서 TV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면서 소일하고 있다.

아내는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자르고 뼈를 도려내는 일을 하며 생계를 잇고 있다. 함께 사는 아들과 며느리는 최근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해 가계에 보탬이 못 되고 있다.

"기관을 돌아다니거나 집회를 하면서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할 수 있는 다른 어부들은 사정이 괜찮은 편이에요. 저는 다릅니다.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입니다. 이 나이에 받아주겠다는 곳도 없습니다."

나쁜 수질이 물에 사는 생물에게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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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근처에는 수달, 뉴트리아, 고양이, 너구리 등 야생동물도 많이 살았다.

이들은 통발에 갇힌 물고기를 잡아먹어 어민들에게 큰 골칫거리였다.

그러나 4대강 사업 이후 녹조가 창궐하면서 이들도 자취를 감췄다. 가끔 피부병에 걸렸는지 털이 모조리 빠진 너구리가 목격되기도 했다.

어망 쪽으로 배를 몰던 그는 "개인이 강을 이렇게 망쳐놨다면 아마 칼부림이 났을 것"이라며 "봉이 김선달처럼 낙동강을 팔아먹은 이들이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한탄했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어망을 걷어 올렸다. 강을 가로질러 길게 던져놓은 어망에는 그러나 물고기 한 마리 걸려있지 않았다.

성씨는 "평소라면 어망에 물때만 가득 끼는데 지금은 방류 직후고 어제 비도 내려 깨끗한 편"이라며 "이런 강을 어떻게 후손에게 물려주겠느냐"고 쓸쓸하게 읊조렸다.

쇠파이프로 강바닥을 콕 찍어 올리자 모래 대신 시커먼 펄이 한가득 묻어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펄을 살펴보자 시궁창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낙동강은 수변부 강바닥마저 펄로 변하며 썩어가고 있었다.

때마침 이날 강에는 낙동강유역환경청 직원들이 펄스 방류 뒤 수질을 측정하기 위해 배를 몰고 나와 있었다.

이들을 만나 현재 낙동강 수질 상태가 어떤지 물었으나 '측정 결과가 나와봐야 안다'는 원론적인 답만 돌아왔다.

강을 수놓은 무수한 녹조 알갱이를 가리키며 '육안으로도 확실하게 보이지 않느냐'고 재차 물었으나 쓴웃음만 지었다.

물이 깨끗하다고도, 더럽다고도 말하지 못하는 그들의 난처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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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은 뙤약볕 아래에서 묵묵히 시료 채취를 한 뒤 다른 지점의 수질을 측정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성씨는 말없이 녹색 물살을 가르며 뭍으로 빈 배를 몰았다.

home12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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