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는 '가난한 불교'…역사·삶에 관심 가져야"
송고시간2016-08-24 07:00
현응 스님, '깨달음과 역사' 개정증보판 출간
"'깨달음 논쟁', 깨달음에만 국한돼 아쉬워"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당시 세미나가 깨달음에 대해 논하자는 자리는 아니었어요. 깨달음과 동시에 자비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깨달음과 자비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는가를 말하고 싶었죠."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이 이른바 '깨달음 논쟁'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현응 스님은 지난해 불교계를 뜨겁게 달군 '깨달음 논쟁'의 불씨를 지핀 장본인이다. '깨달음 논쟁' 이후 언론 노출을 삼가던 스님이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3일 조계종 총무원 교육원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스님은 "물론 깨달음이란 주제는 중요하지만, 깨달음에 대해서만 논쟁이 벌어진 게 아쉽다"고 당시를 돌이켜 생각했다.
하지만 '깨달음 논쟁'이 남긴 성과는 적지 않았다. 출가자뿐 아니라 재가자들도 간만에 벌어진 불교계의 '논쟁다운 논쟁'에 열렬한 관심을 보였다.
논쟁의 시작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응 스님은 자신의 저서 '깨달음과 역사' 발간 25주년을 기념해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깨달음과 역사 그 이후'란 글을 발표했다. 이 발제문은 '깨달음'이란 유리창에 날아든 돌멩이가 됐다.
당시 발제문에서 스님은 "깨달음은 이해의 영역이기 때문에 설법, 토론,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며 "선정(禪定) 수행을 통해 이루는 몸과 마음의 높은 경지, 즉 신비로운 경지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조계종의 간화선(看話禪) 수행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 셈이다. 매년 여름과 겨울 약 2천여 명의 스님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3개월씩 안거(安居) 수행을 하는 조계종의 수행풍토에서 현응 스님의 주장은 일종의 '폭탄 발언'이었다.
이에 전국선원수좌회와 수불 스님이 불교계 매체 등을 통해 반론을 제기하며 이른바 '깨달음 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스님은 당시 논쟁에 대해 "깨달음이란 게 꼭 이런 것이라고 고집할 생각은 없다"면서 "결국 불교를 보는 관점의 차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불교는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는 종교이고 다양한 관점이 있어서 좋은 것"이라며 "깨달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적당히 합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옳다 그르다'를 겨뤄보자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덧붙였다.
스님은 당시 발제문에 대해 "불교적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이 사회에 어떻게 참여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늘 염두에 뒀다"며 "제 책이 나온 지 25년이 흘렀는데 그동안 얼마나 공감을 이뤄냈는지, 한국불교는 얼마나 변화했는지 살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현응 스님은 "발제문을 통해 깨달음과 역사, 지혜와 자비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런데 깨달음 부분만 언론에 집중 조명되면서 이른바 '깨달음 논쟁'으로 흘러갔다"고 살며시 웃었다.
1990년 초판본이 출간된 '깨달음과 역사'는 일관되게 대승불교의 관점에서 깨달음과 역사를 주제의식으로 다루고 있다.
스님은 이 책에서 깨달음이란 "모든 번뇌를 끊고 고매한 인격을 이룬 높은 경지"가 아니라 "세상을 연기(緣起)의 관점으로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스님은 깨달음만큼이나 자비와 실천도 강조한다.
깨달은 사람이 깨달음에 만족하지 않고 실천에 나서는 것은 "존재에 대한 사랑과 연민 때문"이며 "자비야말로 역사적 행위의 원동력으로서 깨달음과 역사를 묶어내는 고리"라는 것이다.
스님은 이런 자신의 주장이 중생 구제에 목적을 둔 대승불교의 관점에 입각해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스님은 "한국불교는 대승불교를 지향한다"며 "대승불교의 이상형은 보디(지혜)와 사트바(자비)가 결합한 보디사트바(보살)"라고 지적했다.
"보디와 사트바는 분리된 것이 아니고, 깨달음이란 삶 속에 탑재된 깨달음이 돼야 합니다. 출가자나 재가자들이 이런 관점으로 삶을 일구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죠."
한국불교를 바라보는 스님의 시각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특히 비판적 시각은 '가난한 불교'란 표현에 응축돼 있었다.
스님은 최근 출간한 '깨달음과 역사' 개정증보판 서문에서 "한국불교는 여전히 초기불교의 교리행상(敎理行相)이나 대승교학인 유식학(唯識學) 등에 대한 연구와 해석에 몰두하거나, 보수적으로 받아들이는 후기 간화선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런 불교는 대체로 '불교란 무엇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에 어떻게 합일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만 있을 뿐, '삶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나는 이러한 불교를 '가난한 불교'라고 말한다. 삶과 역사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고 꼬집었다.
"불교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고 바람직한 삶을 제시해야 하는데 오늘날의 불교는 삶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고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도 부족합니다. 이래서는 불교의 가르침이 빈곤하다고 할 수밖에요."
스님은 "좀 더 분발하자는 의도에서 '가난한 불교'란 표현을 썼다"며 "오늘의 한국불교도 풍성한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과연 중생의 고(苦)를 없애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국불교가 전통적 교리와 수행법에 몰두하느라 시대와 삶의 문제를 도외시했다는 게 스님의 뼈아픈 성찰이다.
"산중에 앉아 초월적인 가치체계를 지향하는 것만이 불교는 아닙니다. 불교는 역사적 삶에 관심을 두고 '삶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답해야 합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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