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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이제 보름 이상은 버틸수 없다"…타들어가는 전남 서남권 들녘

송고시간2016-08-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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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저수지 가보니 마르고 갈라지고…20년만에 최악 가뭄

(진도·해남=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올해 농사는 망했지. 비 구경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

전남 해남군 화산면 한 농가에서 탈곡기를 손질하던 박모(78)씨는 담장 넘어 고추밭을 바라보며 푸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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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500㎡ 남짓한 박씨의 밭에서 수확을 마친 붉은 고추는 20㎏들이 자루 네 포대가 고작이었다.

누렇게 마르다 못해 뙤약볕에 타버린 고추 줄기와 잎사귀, 열매는 손끝으로 비비자 잘게 부스러졌다.

박씨는 "농사는 하늘이 지어준다고 하지만 올여름 더위와 가뭄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나락이라도 제대로 수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 집에서 40㎞ 남짓 떨어진 진도군 진도읍 동외저수지에서는 한 뼘 깊이도 채 안되는 초록빛 물웅덩이에서 물고기 수천마리 사체가 썩어가고 있었다.

한 점 바람조차 없어 흐트러지지 않은 악취는 뜨거운 공기와 뒤섞여 수㎞ 떨어진 도로까지 진동했다.

이번 여름 18만t가량의 물이 증발해버린 동외저수지 곳곳에는 화석처럼 말라버린 물고기 껍질만이 이곳이 물이 차있던 자리였음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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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으로 변한 저수지 바닥을 헤집던 왜가리 한 무리를 제외하면 생명의 기운조차 찾아볼 수 없다.

동외저수지가 마르면서 주변 30여만㎡ 들녘도 갈증으로 신음중이다.

진도 고군면 5곳, 임회면 1곳 등 저수지 6곳이 바닥을 드러냈다.

저수율이 채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수지는 13곳이다.

진도군은 굴착기, 양수기, 화물차 등 장비를 동원해 들샘을 개발하고, 물을 끌어올리고, 용배수로를 정비하고 있다.

농민들은 하늘을 볼 때마다 들녘이 지금처럼 버텨낼 수 있는 한계는 보름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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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저수지 물이 40%가량 남아있는 진도군 지산면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에 속하지만, 이곳 농민들 또한 메마른 대지에 물을 주기 위해 팥죽땀을 쏟아내고 있었다.

농민들은 저수지에서 농경지까지 양수기 호스가 한 번에 닿지 않아 중간중간 웅덩이를 만들어가며 물을 대고 퍼내기를 지난 18일부터 반복하고 있다.

지산면 관마마을 김권민(60) 이장은 "논에 물 대는 작업을 일찍 시작한 덕분에 벼는 살릴 수 있었지만 콩, 대파처럼 밭작물은 대부분 말라죽었다"며 "1994년 이후로 이런 가뭄은 처음이다"고 말했다.

김 이장은 "36∼37일째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고 있다"며 "하늘이 돕지 않는 이상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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