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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약용의자 '묻지마 사살' 결국…5세 여아 유탄에 숨져(종합)

송고시간2016-08-26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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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갈 준비하다 참변…두테르테 '마약과 전쟁' 최연소 희생자

마약용의자 전문 여성 킬러까지 등장…"경찰관이 보스, 청부살인 1명당 48만원"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가족들에게 행복 바이러스였는데…."

다니카(5)는 평소대로 목욕하며 유치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고 그중 한 발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26일 온라인매체 래플러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23일 필리핀 북부 다구판 시 마이옴보 마을의 한 허름한 가정집에 오토바이를 탄 괴한 2명이 난입해 총기를 난사했다.

다니카의 할아버지 막시모 가르시아(54)가 표적이었다. 가르시아는 나흘 전 친구로부터 자신이 경찰의 마약 용의자 감시 대상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 경찰에 자수, 조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부인, 3살짜리 다른 손주와 함께 점심을 먹던 중 총격을 받았다. 그는 몸을 피하다가 배에 총상을 입고 치료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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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손녀 다니카는 방수포로 어설프게 만든 목욕탕에서 나오다가 유탄에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지 경찰은 가르시아가 마약 용의자로 지목된 것이 이번 사건과 관련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마약상이나 자경단의 범행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다니카는 결국 로드리고 두테르트 대통령의 '마약과의 유혈 전쟁'에서 가장 어린 희생자가 됐다.

올해 처음 유치원에 들어간 다니카는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친척들은 "다니카가 행복해하고 친절하고 말 잘 듣는 아이로, 가족들에게 웃음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다니카의 할머니 젬마는 "우리가 잠들 때까지 안마를 해주던 다니카가 밤마다 그리울 것"이라며 "너무 고통스럽다"고 가슴 아파했다.

가르시아의 딸이자 다니카의 고모 그레천 소는 "아버지가 마약을 끊은 지 1년이 넘었고 그 이후 뇌졸중으로 거의 침대에서 지냈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그녀는 "많은 무고한 사람이 살해당하고 있다"며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묻지 마 사살'을 중단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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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말 취임한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 용의자를 죽여도 좋다며 공격적인 단속을 지시한 이후 경찰과 자경단 등의 마약 용의자 사살이 속출하고 있다.

로널드 델라로사 필리핀 경찰청장은 최근 상원 청문회에서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다음 날인 7월 1일부터 약 7주일간 하루평균 36명, 총 1천900여 명이 사살됐다고 밝혔다. 이 중 1천100여 명은 자경단이나 경쟁 마약상 등의 총에 맞아 죽었다.

청부 살인이 흔한 필리핀에서 부패 경찰관의 돈을 받고 마약 용의자를 죽이는 여성 전문 킬러까지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 방송은 마리아(가명)라는 여성과의 인터뷰를 통해 26일 이같이 보도했다.

필리핀 마닐라 빈민가 출신의 마리아는 여성 3명으로 구성된 청부살인팀의 일원으로,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이후 마약 용의자 5명을 사살했다고 말했다. 목표물에 접근할 때 의심을 덜 받도록 여성 킬러를 쓴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누구의 지시를 받느냐는 질문에 "우리 보스는 경찰관"이라고 말했다. 1명을 죽일 때마다 2만 페소(48만 원)를 받는다고 했다. 이를 팀원들과 나누지만, 필리핀에서는 적지 않는 수입이다.

마약 밀매를 직접 하거나 마약상과 결탁한 경찰관이 청부살인팀을 이끄는 것으로 보인다.

마리아는 남편이 먼저 경찰관의 돈을 받고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를 죽이는 킬러로 활동하며 자신을 이 일에 끌어들였다고 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국내외 인권단체, 유엔 인권기구 등의 인권 침해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약 용의자 인권보다 범죄 척결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해외 인권기구·단체를 향해 "말만 하지 말고 화장실 휴지 값을 포함해 모든 비용을 대줄 테니 60만 명의 마약 중독자가 있는 필리핀에 와서 마약 문제를 직접 눈으로 보라"고 말했다.

델라로사 경찰청장은 마약 투약자들에게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거물 마약상들을 죽이고 그들의 집을 불태우라는 주문까지 했다.

그는 "마약상 집을 찾아가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여 마약 투약자들의 분노를 보여주라"고 말했다가 문제가 되자 사과했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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