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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 깎고, 얼굴 고치고, 침 놓고…사람잡는 사이비의료 범람

송고시간2016-09-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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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값에 혹해 '무면허 치료' 받다 목숨까지 잃는다

(전국종합=연합뉴스) "이 약만 먹으면 말기 암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의사 면허가 없는 신모(50)씨는 2014년 11월 세종시 오피스텔 6곳에 치료시설을 갖춘 사무실을 마련했다.

인터넷 블로그에는 '암 환우 분들과 건강한 삶을 찾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한 자연 치유 체험 프로그램에 초대한다'는 광고 글을 올렸다.

광고를 보고 설암(혀암) 3기 환자 A씨가 지난해 2월 신씨를 찾아왔다.

신씨는 A씨에게 "약재를 혀에 바르면 암 덩어리가 빠져나오고, 약재를 우려낸 물로 관장하면 독소가 빠져나온다"며 자신이 만든 약물을 투약했다.

A씨가 치료 과정에서 피를 토하고 혀가 괴사하는 등 병세가 악화되자 "암 세포가 빠져나오는 과정으로, 치유되는 것이다. 지금 병원에 가면 죽는다"며 약물 치료를 계속 받게 했다.

A씨는 4개월 뒤 암이 몸 전체로 전이돼 결국 병원으로 실려갔다.

A씨가 신씨에게 치료 대가로 건넨 돈은 1천500만원에 이른다.

신씨는 A씨를 비롯한 말기 암환자 10명으로부터 치료비 7천400만원을 받고 멋대로 만든 약물을 투약하는 사이비 의료 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1월 징역 4년 6개월, 벌금 1천만원을 선고받았다.

무면허 의료 행위를 하고 무자격자가 의료기관을 개설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사법기관이나 보건당국도 이러한 불법 의료 행위로 국민 건강이 위협받고 의료서비스의 질과 신뢰가 하락한다며 처벌과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고 치료 방법도 간편한데다 부작용이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아 무면허 의료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무면허 침술
무면허 침술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선교원으로 위장한 업소를 차려놓고 여성에게 무면허 침 시술을 한 업자를 구속했다. 경찰이 공개한 증거물. 2013.8.2 [연합뉴스 자료사진]
saba@yna.co.kr

◇ 무면허 침술, 문신 시술, 성형 수술, 치과 치료까지

부산 서부경찰서는 지난달 무릎이 아픈 노인을 걷게 해주겠다며 경로당에서 무면허 침술 의료행위를 한 혐의로 박모(71)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경로당에서 무릎이 아픈 노인들을 상대로 길이 21㎝의 대침을 등에 꽂는 시술을 했다.

박씨는 등에 꽂는 대침 시술이 '무릎으로 마귀가 가는 길목을 차단한다'는 황당한 이야기로 홍보했다.

2014년 광주에서는 남모(53·여)씨가 친구의 몸 7군데에 벌침을 놓아 숨지게 하기도 했다.

지난달 강원도에서는 자신의 집에 눈썹 문신에 필요한 기기와 마취 크림을 갖추고 300회가량 무면허 눈썹 문신을 하고 3천만원을 받은 40대 여성이 입건됐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지난 3월 2년간 공업용 실리콘을 독일제 필러로 속여 21명의 여성에게 무면허 성형 시술을 한 50대 여성을 구속했다.

지난 5월에는 20년간 치기공사로 일하면서 곁눈질로 배운 기술을 이용, 2년간 대구와 경북에서 노인 300여명을 상대로 치아 치료를 한 류모(51)씨가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위생상태가 불량한 마취 도구와 치아를 깎는 도구로 치료를 해 일부 환자는 잇몸이 괴사하거나 염증이 생기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불법 성형수술용 의료기구
불법 성형수술용 의료기구

제주지방경찰이 무면허 성형수술을 한 피의자에게서 압수한 주사기와 메스 등 의료 기구. 2006.4.19. [연합뉴스 자료사진]
khc@yna.co.kr

◇ 약효 입증 안된 식품·약품 전국에 유통

광주시 민생사법경찰과는 지난 2월 다이어트 한약 등 불법 한약재와 식품을 제조·유통한 업자 8명을 적발,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이 만든 불법 약과 식품 수십억원 어치가 전국 한약업소를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됐다.

구매자들은 복용 후 구토, 간 손상, 피부 발진 등 부작용을 겪었고 다량의 마황, 중금속이 검출되기도 했다.

광주 남부경찰서는 지난 5월 한의학약전을 참고해 만든 무허가식품을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과장해 전국에 유통한 농업법인 관계자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2006년부터 10년간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식재료를 활용,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23가지 종류의 식품을 만들어 전국 한의원 90여곳에 판매했다.

경기 포천경찰서도 지난해 5월 한약재를 섞어 만든 일반식품을 피로회복과 소화불량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속여 팔아 73억원을 챙긴 업자 7명을 적발하기도 했다.

중금속 범벅 한약재 유통
중금속 범벅 한약재 유통

◇ 위생처리 불량 건강 위협…은밀하게 이뤄져 단속 어려워

무면허 의료 행위는 그 효능이 검증되지 않았고 의료 기구의 위생처리도 제대로 안돼 그 위험성이 높다.

의료 기구 재사용으로 인한 2차 감염 가능성도 크다.

무면허 의료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인력 부족 등으로 단속이 쉽지 않다.

사적으로 은밀하게 이뤄지면서 불법 사실을 은폐하기 때문에 적발도 어렵다.

박영채 대한치과의사협회 홍보이사는 "무허가 의료인의 경우 법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에 의료 기구와 작업 환경을 제대로 소독할 수 없고 기구와 약제를 재사용할 우려가 매우 크다"며 "특히 치과 치료는 혈관이 많은 입안에서 이뤄지는데다 출혈 위험성이 높아 불법 의료를 하다가는 자칫 2차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경찰 관계자는 "무면허 불법 시술의 경우 건강 측면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며 "그렇지만 피해자들이 시술 사실을 수치스럽게 생각해서 진술을 꺼리기 때문에 범죄 사실 입증이나 단속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경찰은 보건소와 합동단속반을 꾸리고 무면허 의료 행위를 특별 단속하고 있다. 전국 경찰관서에 신고센터를 두고, 홈페이지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스마트 국민제보'를 통해 제보를 수집하고 있다.

(장덕종 최은지 김소연 최재훈 민영규 손대성)

cbeb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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