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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수 "배역 작다고 안 하면 그놈은 작은 배우다"

송고시간2016-09-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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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천만 영화 뒤에는 짙은 그늘이 있죠"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배역에는 크고 작음이 없는 겁니다. 단지 큰 배우와 작은 배우만이 있을 뿐이죠."

배우 김응수(55)는 영화, 드라마를 찰지고 맛깔스럽게 만드는 말 그대로 '명품 조연'이다.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고 주제의식을 뚜렷이 드러냄으로써 작품의 가치를 높인다.

그런 그의 능력은 23일 막을 내린 KBS 1TV 5부작 '임진왜란 1592'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김응수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연기에 대한 소신과 한국 영화, 드라마에 관한 솔직한 견해를 밝혔다.

악역 연기로 정평이 난 그는 "악은 드라마를 세우는 큰 기둥 중의 하나"라며 "악이 제대로 서야 드라마가 흘러가고, 작품이 나온다"고 했다.

스무 살 때부터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1980년대 말 일본으로 건너가 영화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가 이끄는 일본영화학교에서 연출을 전공한 유학파 배우다.

1996년 '깡패수업'부터 내년 개봉을 앞둔 '임금님의 사건수첩'까지 68편의 영화와 35편의 TV 드라마에 출연한 그는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1년에 관객 1천만명을 넘기는 영화가 두 편 정도 나오는데 쌍수 들어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짙은 그늘이 있죠. 스크린을 독점해 다른 작품들을 희생시키는 게 문제입니다. 한두 편의 천만 영화가 한국 영화계를 대변할 때 나머지 제작자들은 뒤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당장의 천만 영화도 좋지만 4~5년 뒤 천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을 키워야 합니다."

현재 시나리오를 직접 쓰며 자신의 연출 영화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배우 김응수
배우 김응수

KBS 1TV '임진왜란 1592'

다음은 일문일답.

-- '명품 조연'이란 평가가 많다.

▲ 너무나 기분이 좋죠. 작품을 빛나게 하는데 보탬이 되고 그걸 보신 관객들이 좋아하니 배우로서 최고의 행복감을 느낀다. 주인공보다 덜 나온다고 기쁨이 작을까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그 역을 제대로 했는지 스스로 평가할 수 있다. 시사회 가서 객석에서 보고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 만족스럽다.

연극은 그게 안 되지만 영화와 드라마는 내 연기를 직접 볼 수 있다. 연기를 제대로 안 하면 못 봐준다. 과거의 서툴고 유치한 자기 모습을 보게 되면 얼마나 창피하냐. 발가벗겨 놓은 듯한 수치심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나 드라마는 정말 잔인하다.

작품이 좋다면 배역에는 크고 작음이 없는 거다. 단지 큰 배우와 작은 배우만 있을 뿐이다. 역이 작다고 안 하면 그놈은 작은 배우다.

-- 악역 연기로 정평이 나 있다.

▲ 악은 드라마를 세우는 큰 기둥 중의 하나다. 악이 제대로 서야 드라마가 흘러가고, 작품이 나온다. 책임감을 느낀다. 믿고 맡기는 거니까.

근데 많이 하다 보니 철학 같은 게 좀 생겼다. 악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때론 귀여운 느낌도 나게 악당을 살짝 중화시킨다. 한 번에 스트레이트로 보여주지 않는다. 인상만 쓰는 건 누가 못하냐. 관객들은 그런 걸 더 좋아하더라. 요즘은 관객들이 배우들보다 수준이 높고 요구사항도 많다. 나를 변화시키는 건 관객들이다.

배우 김응수
배우 김응수

KBS 1TV '임진왜란 1592'

--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 '전원일기'에서 최불암 선생님처럼 서민적인 아버지 역할을 해보고 싶다. 남루한 옷을 입고 자식들을 묵묵히 뒷바라지하면서 가정을 지키는 연기 기가 막히게 할 거 같은데, 그런 작품이 안 들어온다. 내가 잘 못할 거로 생각하는 것 같다.(웃음) 맨날 회장, 검사, 국회의원 신분이 높으신 분들만 들어오는데 죄다 악역이다.

-- 일본에서 유학할 때 원래 연출 전공 아니었나. 배우로 전향한 이유는.

▲ 그게 아니다. 원래 서울예대 연극과 졸업했고 극단 목화에서 연극을 하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간 거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밑에서 영화연출을 배웠다. 공부 마치고 한국에 와서 다시 배우를 하고 있는 거다.

배우 하면서 감독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웃음) 죽기 전까지 10작품 찍으면 될 거 같다. 서두를 필요 없을 거 같다. 재미도 없는 작품 30편 만들어 봐야 쓸데도 없다. 나이 먹으면서 철이 들어가는 것 같다.

영화를 연출한다는 건 배우로서보다 세상에 더 강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싸우지 말고, 돈, 돈 하지 말자는 따뜻한 메시지를 세상에 보내고 싶다. 관객들이 다 별거 아니구나, 욕심 때문에 그런 거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하고 싶다.

내년까지는 1편 해볼까 하는데 진행이 빠르면 잘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준비가 돼 있기 때문에 현장 연출은 자신이 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중견배우 김응수
'천의 얼굴'을 가진 중견배우 김응수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는 중견배우 김응수. 2010.6.18 maum@yna.co.kr

-- 연출을 준비하는 작품이 있나.

▲ 타이틀은 '미녀농장'이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있다. 여자 주인공 7명이 나오는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냥 따뜻하고 잔잔한 그런 얘기다.

-- 요즘 한국 영화 잘 되는 것 같다.

▲ 지금 우리 사회도 그렇지만 한국 영화계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하다. 한국 영화계는 완전히 양극화돼 있다. 1년에 관객 1천만명을 넘기는 영화가 두 편 정도 나오는데 쌍수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짙은 그늘이 있다. 솔직히 재미없고 왜 1천만명이 들었을까 할 때도 많다. 극장에서 안 걸어주면 상영을 못 하는데 극장에선 관객들이 들 만한 영화만 건다. 유명한 스타가 안 나오면 작품이 좋아도 안 걸어준다.

스크린을 독식해 다른 작품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문제다. 한두 편의 천만 영화가 한국 영화계를 대변할 때 나머지 제작자들은 뒤에서 눈물을 흘린다. 남의 작품 희생시켜서 1천만명 넘긴 것을 위대하다고 할 수는 없다. 작품성 없어도 1천만명 가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스크린을 너무 독점해서 다른 작품에 아예 기회조차 안 주는 건 문제다. 이 때문에 제작비도 못 건지고 주저앉는 작품들이 많다. 이건 육상선수와 초등학생을 달리기 시키는 것과 같다. 1천만 명 넘겨서 벌어들인 수익도 고생한 스태프가 아니라 극장주들에게 간다.

KBS 1TV '임진왜란 1592' 김응수 등 출연진과 김한솔 PD
KBS 1TV '임진왜란 1592' 김응수 등 출연진과 김한솔 PD

9월9일 방송된 '임진왜란 1592' 3편을 대학로에서 단체로 시청한 후 촬영한 기념사진.

-- TV 드라마는 어떤가.

▲ 드라마는 정말 준비가 안 된 배우들이 많다. 대사조차 안 된다. 인터넷 댓글에도 다 나온다. 그런데도 가져가는 개런티는 어마어마하다. 제작비가 150억 원이라면 그중에 절반은 가져간다. 아주 극단적인데 상당히 걱정스럽다. 당장 KBS에서 최근 대하사극 중단했는데 제작비 때문이다. 스타를 써야 하는데 몸값이 비싸다.

-- 해법이 있나.

▲ 영화 문제는 제작자와 극장주들이 풀어야 한다. 내 돈 갖고 내 마음대로 건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분들이 장기적으로 보고 잘 해주셔야 한다. 당장의 천만 영화도 좋지만 4~5년 뒤 천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을 키워내야 한다. 그런 제작 현장을 만들어줘야 한국 영화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 지금은 그게 안 되고 있다.

배우 김응수
배우 김응수

KBS 1TV '임진왜란 1592' 방송 전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백팔배를 하기 위해 찾은 전북 고창 선운사에서 찍은 셀카(셀프카메라).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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