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월주 스님 "한국불교, 세간에서 불법 찾고 대중과 공존해야"

송고시간2016-09-27 12:00

이 뉴스 공유하기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본문 글자 크기 조정

회고록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종교 지도자, 빛과 소금 돼야"

(김제=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출세간(出世間·법계)에서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마치 토끼 뿔과 거북이 털을 구하는 것과 같죠. 토끼는 뿔도, 거북이는 털도 없습니다. 즉 세간(세상)에서 불법을 찾고 깨닫고 전하고 더불어 공존·공생하면서 올바르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북 김제 금산사 조실 월주(81) 스님은 최근 발간한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조계종출판사)의 책 이름에 얽힌 뜻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토끼뿔 거북털'이란 제목은 육조 혜능의 육도단경 중 '불법재세간(佛法在世間) 불리세간각(不離世間覺) 이세멱보리(離世覓菩提恰) 여구토각(如求兎角)'이란 글귀에서 따온 것이다.

'불법은 세간 가운데 있으니 세간을 떠나서 깨닫지 못하네. 세간을 떠나서 깨달음을 찾는다면 마치 토끼 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월주 스님은 지난 26일 전북 김제 금산사에서 회고록과 법문집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다'(민족사) 출간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60여 년의 수행 인생을 회고했다.

1935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한 스님은 1954년 법주사에서 금오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으며, 정화운동이 한창이던 1961년 스물일곱의 나이에 130여 개 사찰을 관할하는 금산사 주지로 임명됐다. 이후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총무원 교무부장, 중앙종회 의장을 거쳐 제17대·28대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여든을 훌쩍 넘긴 고령에도 월주 스님은 지구촌공생회 이사장, 함께 일하는 재단 이사장,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 이사장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스님은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펼치며 불교계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데 앞장섰다. 불교가 세상을 등진 채 산중에만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스님은 각종 시민운동과 비정부기구(NGO) 활동에 뛰어든 배경에 대해 "한국불교는 기복에 젖어 있고 가람수호와 사찰관리 보수에 급급했다"며 "승려가 출세간적으로 산중에만 머물면 안 된다. 이웃을 돕고 울타리 역할도 해주고 대중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스님은 "이제 내 나이가 만 81세인데 미수(米壽·88세) 때까지는 계속 활동할 것이다. 건강하면 더 해야지"라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스님은 한국불교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스님은 "한국불교는 아직 멀었다. 수행공간을 가지고 있고 수행력은 있지만, 세상을 이끌고 계도하고 향도(嚮導)하는 실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불교계에서 월주 스님은 사회운동가보다는 개혁종단을 이끈 수장으로서의 면모가 깊이 각인돼 있다. 월주 스님 이전과 이후로 현대 불교사가 나뉜다고 할 정도다.

월주 스님은 1980년 4월 제17대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취임했으나, 그가 품었던 '자주적인 종단, 개혁적인 종단'의 이상은 그해 10월 27일 신군부에 의해 산산이 무너졌다.

이른바 10·27 법난으로 스님은 총무원장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나 미국으로 떠났다.

스님은 "10·27 법난은 국가권력이 불교계에 개입해서 탄압한 교권 유린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신군부가 '전두환 장군을 대통령으로 지지한다'는 선언을 내가 해주길 바라더라. 그래서 거절했다"고 털어놓았다. 스님은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전두환을 지지하지 않았기에 신군부가 조계종을 탄압한 것"이라며 "결국 나를 몰아내려고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다"고 10·27 법난 당시를 회고했다.

당시 군경 합동 병력 3만2천여 명이 비리자·불온 사상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전국 사찰과 암자 등 5천700여 곳을 일제 수색했으며 스님과 불교계 인사 153명이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무차별 폭력과 고문이 자행됐다.

이후 1994년 개혁종단이 들어서자 다시 총무원장 자리에 오른 월주 스님은 14년 동안 가슴에 품었던 개혁작업에 착수했다.

총무원과는 별도로 승가 교육을 책임질 교육원, 신도 포교를 진두지휘할 포교원을 설립해 '삼원 분립'을 실현하고 종무 행정을 체계적으로 전문화했다. 또 종단 고위직 겸직을 금지하고 선거인단을 50명에서 300명으로 확대했다.

아울러 스님은 김수환 추기경 그리고 강원용 목사와 교류하며 '종교 지도자 삼총사'로 불리기도 했다.

이들 '삼총사'는 한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종교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함께 논의하고 실천에 옮겼다. 특히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 세 명의 종교 지도자가 공동 발의로 '함께일하는재단'(구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을 설립해 양극화 해소와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월주 스님은 고인이 된 김 추기경과 강 목사에 대해 "그분들은 자신의 종교의 우월성을 주장하지도 않고 다른 종교를 폄하도 하지 않고 미덕을 잘 지켰다"고 회고했다.

이어 "모든 종교 지도자가 치열하게 사회의 빛과 소금 돼야 한다"며 "종교인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사회로부터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는다"고 지적했다.

신뢰회복을 위해 스님은 끊임없는 성찰을 강조했다. 스님은 "매일 세 번을 반성한다는 공자님 식으로 끊임없이 참회하고 반성하고 돌아봄으로써, 종교인의 도리와 사명을 지켜야 한다"며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보살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아울러 자신의 역할이 미흡하다며 겸양을 보였다.

"지금까지 삶은 아주 부족해요. 더 노력해야 해요. 숭산 스님은 선(鮮) 사상의 국제화에 기여했고, 광덕 스님은 도심포교 전법을 만드는 데 역할을 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아름다운 글로 감동을 주고 문필가로서 역할도 했고, 나도 나만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항상 부족합니다.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스님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724쪽의 방대한 분량의 회고록을 펴낸 스님은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많다"며 "이번에 못 담은 이야기를 정교하게 다듬어서 3년 후에 개정증보판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kihun@yna.co.kr

회고록 출간한 월주 스님
회고록 출간한 월주 스님

(김제=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금산사 조실 월주 스님이 지난 26일 전북 김제 금산사 화림서원에서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자들의 질의에 응답하고 있다. 2016.9.27.
doo@yna.co.kr

회고록 출간한 월주 스님
회고록 출간한 월주 스님

(김제=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금산사 조실 월주 스님이 지난 26일 전북 김제 금산사 화림서원에서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자들의 질의에 응답하고 있다. 2016.9.27.
doo@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