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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송이의 빛과 그림자 "소득 보증수표 vs 채취하다 봉변"

송고시간2016-09-2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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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등록금·손주 용돈 마련"…예나 지금이나 농가소득원

20년 전 강릉 무장공비 침투 때도 사건·사고 끊이지 않아

(춘천=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올해 유례없는 폭염을 딛고 풍작을 이룬 송이 채취에 주민들의 열기가 뜨겁다.

송이는 농·산촌 주민의 가을철 농가 외 소득의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귀한 몸이다.

하지만 '고수익은 리스크'를 동반한다. 무턱대고 고수익만 노리고 송이 채취에 나섰다가는 예기치 못한 위험을 당하기에 쉽다.

올해 들어 벌써 강원 양양에서만 송이 채취를 위해 산행에 나섰다가 2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해마다 가을철 송이 등 버섯 채취 사고는 전국적으로도 빈발한다.

'도대체 송이가 뭐길래' 목숨을 건 위험을 감수하면서 채취에 열을 올릴까.

야생 송이 [연합뉴스 자료 사진]
야생 송이 [연합뉴스 자료 사진]

◇ '귀한 송이' 농가 고소득원…자식에게도 송이밭 '비밀'

'가을 한 철 송이 채취로 자녀 대학등록금을 마련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송이는 농가 고소독원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소나무숲에서만 나는 송이는 독특한 솔향 때문에 가을철 별미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송이가 나는 곳은 자식·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비밀 장소'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때문에 일부 주민은 가족과 이웃의 시선을 피해 이른 새벽 송이 채취에 나선다.

산주들은 송이 채취 시기인 9월부터 산속에 들어가 며칠씩 생활하며 채취한다.

하지만 송이 채취에 집착한 나머지 야간 산행과 장기간 산속 은둔 생활 등 과정에서 빚어지는 일들이 산악사고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을철 '귀한 몸' 송이 가격은 과연 얼마일까.

송이는 날씨의 영향에 따라 작황이 달라 수매가도 그때그때 들쭉날쭉하다.

무덥고 건조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면 균사 번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송이 구경을 거의 할 수 없다.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양양 송이는 첫 공판을 시작한 지난 17일 ㎏당 35만9천100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는 송이 작황이 좋아 열흘 만인 27일 ㎏당 33만5천720원으로 다소 하락했다.

2008년 이후 8년 만의 풍작이라고 할 만큼 수매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선물용으로 수요가 많은 1등급 양양 송이는 지난해 1㎏에 50만∼60만원을 웃돌기도 했다.

품귀현상을 빚을 때는 1㎏에 70만∼100만원 이상 오를 때도 있다.

양양 송이 공판 시작 [연합뉴스 자료 사진]
양양 송이 공판 시작 [연합뉴스 자료 사진]

역대 최악의 양양 송이 생산은 2009년 가을이었다. 당시 수매가는 1등급 1㎏에 136만1천 원이었다.

전국 송이 생산 유통의 20∼30%를 차지하는 경북 영덕, 울진, 봉화 송이도 지난 18일 첫 공판에서 1등품 24만6천305원을 기록한 이후 현재는 15만∼22만 원대를 형성한다.

송이는 해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고가의 선물용으로 귀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이른 추석으로 수확된 물량이 적은 데다, 28일 부정청탁·금품 수수 금지법 일명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된서리를 맞기도 했다.

심지어 회식 자리에서 어렵게 구한 송이를 올려놓고 삼삼오오 나눠 먹다가는 김영란법에서 정한 3만원 규정을 훌쩍 넘겨 오해받기에 십상이다.

◇ "위험한 줄 뻔히 알지만"…송이의 '빛과 그림자'

자녀의 등록금, 손주의 용돈 등을 마련하려는 농촌 주민에게 송이는 예나 지금이나 무척 귀한 존재다.

하지만 주민들을 위험에 빠트리게 하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20년 전인 1996년 9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동해안 일대가 공포에 휩싸였을 때도 송이 채취를 둘러싼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당시 내륙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탓에 동해안 일대 송이 채취는 전면 통제됐다.

그런데도 송이를 따려고 강릉의 야산에 오른 일부 주민이 무장공비에 의해 피살됐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또 다른 주민은 제철을 맞아 가을 송이를 채취하려고 산에 갔다가 무장공비로 오인해 아군의 총격에 숨지기도 했다.

당시 숨진 주민은 '제철을 만난 송이를 산속에 버려두기 아깝다'며 지팡이를 들고 집을 나섰다가 봉변을 당했다.

결국, 그해 가을 송잇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무장공비 출현에 공포에 시달린 동해안 주민들은 송이산 먼발치에서 녹아내리는 송이를 바라보며 또 한 번 눈물을 삼켜야 했다.

송이 채취 중 조난이나 목숨을 잃는 사고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 24일에는 육군 모 부대 소속 부사관 3명이 버섯을 채취하려고 철원과 화천에 걸친 대성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 하루 만인 지난 25일 귀가했다.

이들은 날이 어두워져 산속에서 길을 잃었고, 휴대전화 불통지역인 탓에 연락이 잘 닿지 않아 밤새 가족과 수많은 수색 인력의 애를 태웠다.

실족으로 인한 사망 사고도 잇따랐다.

지난 24일 오전 9시 18분께 강원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에서는 버섯을 따러 나선 60대가 실종 하루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20일 오후 1시 53분께는 양양군 서면 미천골 자연휴양림 인근 야산 5부 능선에서도 버섯을 채취하던 김모(76) 씨가 숨졌다.

경기 파주에서는 지난 10일 버섯을 채취하려고 산에 오른 60대가 실종 이틀만인 지난 12일 파주시 법원읍의 한 야산에서 바위에 깔려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대부분 주변 지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마을 주민들이지만 송이 채취에 집착하거나 무리한 채취로 힘을 빠져 추락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인제군 산림조합 박춘서(45) 상무는 "예나 지금이나 농·산촌 주민에게는 송이가 가을철 가장 큰 소득원인 만큼 이를 둘러싼 사건·사고부터 얽히고설킨 애환이 많다"며 "중요한 것은 무리한 채취와 타인의 송이 산에 침입해 송이를 따는 행위는 자신은 물론 가족에게도 큰 상처로 남는 만큼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햇송이 출하 [연합뉴스 자료 사진]
햇송이 출하 [연합뉴스 자료 사진]

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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