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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먼저 가서 쉬려고…" 야구단 버스가 속도제한을 푼 까닭

송고시간2016-10-2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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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단 버스 연평균 1만5천㎞ 이동…버스 가격 2억원 상회

피곤한 선수들 과속 요구하기도…1990년 쌍방울 버스 사고로 2명 사망

프로야구단 버스 내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프로야구단 버스 내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10명의 사망자를 낸 울산 경부고속도로 관광버스 화재사고의 원인 중 하나는 과속이었다.

앞차를 추월하려고 갑자기 속도를 내 차선을 변경했고, 무게중심을 잃은 차량은 방호벽을 들이받고 불길에 휩싸였다.

최근 출시되는 대형 버스는 출고할 때 시속 110㎞ 이상 속도를 낼 수 없도록 속도제한을 걸어두지만, 경찰은 이 버스가 속도제한장치를 풀고 운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는 유난히 관광버스로 인한 대형 인명사고가 잦았다.

5월에는 남해고속도로 9중 추돌사고로 관광버스 2대 사이에 낀 모닝 승용차 탑승자 4명이 모두 숨졌고, 7월에는 영동고속도로 봉평 터널 입구에서 졸음운전을 하던 관광버스에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가운데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버스 운전기사가 불법으로 속도제한장치를 풀고 운행하다 경찰에 적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광주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운전기사들로부터 건당 15~25만 원씩 받아 속도제한장치를 무단으로 조작한 혐의로 자동차 공업사 업자 4명과 이들에게 불법개조를 의뢰한 운전기사 2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8일 밝혔다.

속도제한장치가 조작된 버스 가운데는 KIA 선수단이 이용하는 버스 3대도 포함됐다.

KIA 1·2군 선수단은 2014년 3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과속 버스'에 몸을 맡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KIA 구단은 곧바로 버스를 원상 복구했고, 올해는 규정 속도에 맞춰 운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 버스는 프로야구단 귀중한 발…1대에 2억원 넘어 = 연간 이동 거리가 5만㎞를 가볍게 넘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주요 이동수단이 비행기고, 고속열차 망이 잘 갖춰진 일본프로야구는 신칸센과 비행기를 함께 활용한다.

상대적으로 이동 거리가 짧은 한국프로야구는 고속버스가 선수단의 발이 된다.

부산을 연고로 해 연간 이동 거리가 가장 긴 롯데 자이언츠가 제리 로이스터 감독 당시 잠시 비행기를 이용하기도 했고, 소수의 인원이 움직일 때는 KTX를 탑승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은 야구장에서부터 숙소까지 편하게 옮겨주는 버스를 선호한다.

프로야구 구단마다 3~4대의 버스를 운용하는데, 체구가 큰 선수도 불편하지 않도록 넓은 간격으로 좌석을 배치한 게 구단 버스의 특징이다.

연고지가 부산이라 이동 거리가 먼 롯데는 연평균 2만㎞가량 운행하고, 수도권 구단은 70% 수준인 1만4~5천㎞가량 달린다.

보통 버스는 3년에 한 번씩 신차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교체하며, 대부분의 구단은 버스 길이(12.5m)가 가장 길어 개조가 쉬운 기아 뉴그랜버드 모델을 구단 버스로 애용한다.

현재 뉴그랜버드의 출고가는 1억8천910만 원이며, 45인승으로 출고된 버스 의자를 23~4개로 줄이고 각종 편의시설을 추가하는 개조 과정을 거치면 대당 가격은 2억 원을 훌쩍 넘는다.

◇ 위험에 내몰린 프로야구 선수단…아찔한 때도 잦아 = 프로야구단 버스도 교통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구단 버스 교통사고 중 가장 큰 인명피해를 낸 사건은 1990년 일어난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 버스 사고다.

트레이너와 쌍방울 선수 13명을 태운 버스는 군산상고에서 훈련하려고 전주에서 출발해 군산으로 향했다.

그러다 김제 부근에서 마주 오던 트럭이 빗길에 미끄러져 중앙선을 넘어오면서, 쌍방울 선수단을 태운 버스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 사고로 운전기사와 구단 트레이너가 숨졌고, 선수를 포함한 1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998년에는 OB(현 두산) 베어스 선수단을 태우고 부산에서 광주로 이동하던 구단 버스가 경남 하동인터체인지 부근에서 빗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 버스에는 김태형 두산 감독(당시 선수)과 진필중, 이경필, 이혜천 등 선수단 26명이 탑승했는데, 모두 안전벨트를 매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A 구단 버스 운전기사는 "이 버스에 타고 있는 선수들의 몸값을 생각하면 난폭운전은 생각도 못 한다"면서 "야간에 운전하다 보면 졸음운전을 하는 화물차가 가장 위험하다. 가슴 철렁한 적이 여러 번 있고, 방어운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버스 3대가 한꺼번에 움직이면 추돌사고 발생 시 중간에 있는 차는 피해가 크다. 그래서 최근에는 버스 1대당 3분 간격을 두고 출발해 사고를 예방한다"고 덧붙였다.

◇ 불법개조의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추월' = 보통 선수단은 경기 하루 전 이동을 마쳐 '경기 시간에 맞추기 위한 과속'은 있을 수 없다는 게 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과거에는 경기 당일에 이동하다 보니 선수단 버스의 과속이 일상이었지만, 최근에는 선수단 안전 때문에 경기 전 미리 이동한다.

서울에서 주중(화~목) 3연전을 마친 구단이 금요일부터 지방에서 경기하면, 금요일 오전이 아닌 목요일 경기가 끝난 뒤 야간에 이동한다.

그렇다면 프로야구 구단 버스 운전기사가 불법개조의 유혹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한 구단 관계자는 "단순히 빨리 가기 위한 게 아니라, 추월 때문에 개조한 것이다. 선수단 버스는 무거운데, 추월하려면 순간적으로 속도를 내야 한다"면서 "KIA 외에도 몇몇 구단에서 개조했다고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선수단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는 B 씨는 "가장 이동 거리가 먼 건 인천(SK행복드림 구장)-부산(사직구장)이다. 보통 4시간 30분에서 5시간 정도 걸리는데, 속도제한을 풀고 달리면 30분은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 시간에 쫓기는 건 아니지만, 선수단에서 '좀 더 빨리 가줄 수 없느냐'라는 요구가 자꾸 나온다. 우리 구단은 해당하지 않지만, 그래서 (불법개조)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일주일에 6번 그라운드에 나서는 야구선수들에게 체력은 곧 경기력으로 이어진다. 이들에게 30분의 시간이 적은 건 아니다.

좀 더 일찍 숙소에 도착해 쉬려는 선수들의 마음은 당연하지만,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야간 운행에서 자신을 스스로 과속의 위험에 내몰고 있다.

4b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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