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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성추문 논란에 휩싸인 문화계, 깊이 자성하길

송고시간2016-10-2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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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문인들과 미술관 큐레이터로부터 성추행이나 성희롱당했다는 폭로가 최근 SNS에서 잇따르고 있다. 소설가 박범신(70)씨와 시인 박진성(38)씨, 일민미술관 큐레이터 함영준씨가 성추문 구설에 올랐다. 전직 출판 편집자라고 밝힌 A씨는 지난 21일 트위터에 소설가 박씨가 영화 '은교' 제작 당시 주연 여배우와의 술자리에서 "섹스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떠벌리는가 하면 함께 일한 여성 편집자 전부와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는 식의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박씨는 또 편집팀과 방송작가, 팬 2명 등 여성 7명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옆자리에 앉은 방송작가와 팬들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과 성적 농담을 했다는 것이다. 시인 박씨는 시를 배우려던 여성 등에게 "여자는 남자 맛을 알아야 한다", "색기가 도는 얼굴"이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 박씨가 자신을 걱정해 찾아온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함씨의 경우 예술대 학생에게 작업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해 만난 뒤 차에서 신체 부위 등을 만졌다는 주장이 나왔다.

성추문 피해 사실이 공개된 데 대해 박범신씨는 "나이 많은 내 잘못이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며 사과의 뜻을 전했고, 박진성씨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함씨는 "깊이 사죄하고 후회한다"며 활동 중단 의사를 밝혔다. 개인적인 사과 표명 수준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창작의 세계를 이끌어가는 문인이나 예술가는 문화 권력자로 불린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 피해자들이 공개한 내용을 보면 문인 등의 부적절한 행태가 문화계에 고질적인 병폐로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번 파문은 김현 시인이 지난달 한 문예지에서 문단의 만연한 여성 혐오나 성폭력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선 이후 불거졌다. 편집자나 작가 등 주변 인사들을 상대로 한 부도덕한 행각은 파렴치한 '갑질'과 다를 바 없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문단과 예술계 내부의 깊은 자성과 비뚤어진 성문화에 대한 척결 노력이 시급해 보인다.

문화계의 풍토는 한 사회의 지적, 도덕적, 정신적 위상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사고와 행동 방식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일이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대표적 문학단체인 한국작가회의는 이번 파문과 관련해 긴급 모임을 갖는다는 소식이다. 성추문의 당사자인 박 시인도 작가회의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엄정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이 우선이다. 일각에선 무분별한 폭로로 예술 행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는 모양인데 성추문 사안의 폐해와 심각성을 간과한 듯하다. 개인적 일탈에 불과할 수 있다는 등의 해명 따위를 내놓아선 안 된다. 시인 박씨의 시집을 낸 문학과지성사는 "참담한 마음으로 유감을 표명한다. 사실을 확인해 사회적 정의와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말로만 그칠 게 아니다. 그간 알고도 모른 척 했다면 이번에 치부를 도려내고 문화계가 윤리적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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