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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음식> 고난의 역사 딛고 태어난 의정부부대찌개

송고시간2016-11-1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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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활활 타는 가스버너 불꽃 위에 거꾸로 놓인 작고 동그란 무쇠솥 뚜껑. 그곳에서 찌개가 보글보글 잘도 끓는다. 새하얀 김은 모락모락 춤추듯 솟아오른다. 자신도 모르게 꿀꺽 넘어가는 침! 이게 식전의 허기 때문만일까? 식재료 사이에서 솔솔 우러나오는 국물은 영양가 있는 육수와 맛깔스럽게 합류한다.

사진/임귀주 기자
사진/임귀주 기자

밥상에서 펄펄 끓는 부대찌개를 기대감 속에 묵묵히 바라보는데 무대공연의 모습이 뜬금없이 겹쳐 떠오른다. 출연배우 격인 두부, 떡국, 햄, 소시지, 김치, 파 등이 뜨거운 불기운에 들썩들썩 춤추며 신명을 더하는 것 같다. 자글자글 경쾌하게 끓어대는 찌개 소리는 또 어떠하며, 솥뚜껑 안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국물 색깔은 또한 어떠한가. 시각, 청각, 미각, 후각을 두루 자극하는 식탁 위의 종합 예술이 아닐 수 없다.

경기도 의정부를 대표하는 음식인 부대찌개. 군대 용어인 ‘부대’와 음식 명칭인 ‘찌개’가 생뚱맞을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잘 어울려 제3의 음식문화를 창출했다. 이 음식에는 한국전쟁의 후유증으로 더욱 배고팠던 지난날의 아픔과 회한이 서려 있다. 더불어 이종 간 만남과 어울림을 통한 상생과 공존의 미덕도 넌지시 일러준다.

경전철 의정부중앙역의 바로 앞에는 ‘의정부부대찌개거리’가 길게 이어져 있다. 약 150m에 이르는 이 골목에는 크고 작은 부대찌개 식당 14개가 옹기종기 들어앉아 손님을 부른다. 2009년, 경기도가 부대찌개 특성화거리로 지정한 명품골목이다. 2013년에는 사단법인 의정부부대찌개명품화협회가 설립됐다. ‘의정부’ 하면 ‘부대찌개’, ‘부대찌개’ 하면 ‘의정부’가 곧바로 떠오를 만큼 그 독자적 정체성이 뚜렷하다.

사진/임귀주 기자
사진/임귀주 기자

◇ 서양과 전통의 식재료가 만나 제3의 음식 만들어져

의정부부대찌개는 언제, 어떤 연유로 등장하게 됐을까?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1960년을 전후해 탄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미군부대에서 나온 햄과 소시지 등을 재료 삼아 볶음 요리를 해 먹다가 김치, 파, 두부 등과 어울리면서 별미의 찌개로 태어났다. 서양의 식재료와 한국의 식재료가 만나 ‘멋진’ 하모니, 아니 ‘맛진’ 조화를 연출하며 제3의 음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박길순(62) 부대찌개명품화협회 회장은 “50여 년 전, 미군부대에 근무하던 한국인 군무원 등이 햄과 소시지 등의 식재료를 부대에서 가지고 나와 거리의 좌판에서 볶아 먹었던 게 그 시발이었다고 한다”며 “서양 식재료의 맛이 느끼해 김치와 같은 우리 식재료를 넣어 찌개를 만들어 새로운 음식으로 사랑받기 시작했다”고 들려준다.

부대찌개에 대한 일부 오해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군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모아 만들었다고 해 ‘꿀꿀이죽’이라고도 했다는데 이는 사실과 달리 와전된 것이라는 얘기다. 당시 미군부대에서 나온 햄과 소시지는 김치와 두부 등과 멋진 조합을 이뤄 우리 서민의 입맛을 사로잡는 음식으로 재탄생했다. 이를테면 한국적 특성이 강렬한 ‘혼혈 음식’이랄까? 물론 ‘부대찌개’라는 이름 그대로 이곳의 미군부대와 직접 관련이 있다.

의정부부대찌개에 들어가는 재료는 햄, 소시지, 김치, 두부, 떡국, 당면, 대파, 소고기 완자, 고추장 소스, 후춧가루, 고춧가루, 마늘 등이다. 여기다 매콤한 맛을 원할 경우 청양고추를 넣으면 좋다. 햄과 소시지의 경우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전량 수입산 재료를 쓴다고 한다. 이들 풍성한 식재료가 한 솥에서 어울려 부글부글 끓는 모습만 봐도 배가 절로 불러온다.

부대찌개를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1년 이상 숙성한 찌개김치로 바닥을 깐 뒤 소고기 완자를 그 위에 올리고, 소시지와 햄을 차례로 썰어 넣는다. 이어 당면과 떡국이 추가되며, 신선한 대파도 넉넉하게 올린다. 다음은 다진 마늘과 후추, 고춧가루, 다진 양념 차례. 여기다 하얗고 영양가 높은 두부를 얹은 뒤 불을 지펴 푹 끓인다. 물론 지글지글 끓는 찌개에 라면 사리까지 넣으면 그냥 먹는 라면과는 또 다른 맛을 깊게 느껴볼 수 있다. 무와 양파 등의 야채로 우려낸 육수는 의정부부대찌개만의 맛을 한껏 살리는 비결. 찌개와 더불어 김치와 짠무, 콩나물, 식혜 등이 식탁에 놓인다.

‘의정부부대찌개 본점’을 운영하는 박 회장은 “수입하는 햄과 소시지를 제외하고 모든 음식과 반찬은 외부에서 사 오지 않고 직접 만든다”며 “김치의 경우 가을에 사나흘 동안 직접 담그고 짠무 또한 1년 이상 숙성시켜 상에 올린다”고 말한다. 박 회장은 “서른아홉 살에 식당을 시작해 올해로 23년이 됐다”면서 “총각과 아가씨로 데이트를 겸해 우리 식당에 왔던 청춘남녀가 결혼해 낳은 아들의 입대를 계기로 20여 년 만에 중년 아저씨와 아줌마로서 다시 찾아왔을 때 보람과 함께 뭉클한 감회를 느꼈다”고 덧붙인다.

부대찌개는 맛도 맛이려니와 가격 또한 큰 부담이 없다. 식비는 공깃밥을 포함해 1인당 8천원. 모든 식당이 균일한 가격을 받는다. 가난했던 시절의 서민음식으로 출발했던 만큼 지금도 누구나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 식당에서 만난 김우정(48·서울 동대문구 거주) 씨는 “간간이 이곳 부대찌개거리를 찾는데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이라는 게 고스란히 느껴진다”며 미소를 짓는다. 의정부에 산다는 박현주·박영화(76) 씨는 “친구 사이인 우리는 밥맛이 떨어질 때면 함께 이곳에 온다. 맛있고 푸짐한 음식을 부담 없는 가격으로 먹을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고 말한다.

설설 끓는 찌개 맛에 푹 빠진 군인 세 명도 눈에 띄었다. 대전에서 출장 왔다가 점심을 먹고 있다는 김모(51) 대령은 “의정부에서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본고장이라 역시 맛이 다르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마주 앉은 두 명의 영관급 장교도 고개를 끄떡이며 공감한다. 김치가 들어가서인지 맛이 물리지 않고 개운하단다.

부대찌개거리의 시식회. 사진/임귀주 기자
부대찌개거리의 시식회. 사진/임귀주 기자

◇ 탄생 반세기 만에 외국으로도 속속 진출

부대찌개는 탄생 반세기 만에 경기도의 대표적 퓨전 음식으로 탄탄히 자리 잡았다. 지방 곳곳은 물론 미국, 일본 등 외국으로도 속속 진출하고 있다. 해마다 10월이면 관련 축제가 풍성하게 열려 거리를 한껏 흥청거리게 한다.

특히 지난 10월 8일과 9일 열린 제11회 의정부부대찌개축제에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깜짝 방문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미국대사가 축제 현장을 직접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리퍼트 대사는 축제 첫날 부대찌개를 시식하며 “의정부는 한미 관계에서 상징적인 도시다. 이곳에서 부대찌개를 직접 먹어보니 너무 맛있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축제에서는 부대찌개 300인 분 시식행사와 미8군 군악대 공연, 어린이 마술인형극, 부대찌개 퍼포먼스 등이 펼쳐졌다.

부대찌개로 푸짐하게 ‘입맛’을 즐긴 뒤 인근의 제일시장과 행복로를 산책 삼아 걸어보는 ‘눈맛’ 역시 쏠쏠하다. 제일시장은 경기북부 지역의 최대 전통시장. 없는 게 없다 싶을 만큼 방대한 규모인데 전통시장 특유의 따뜻한 정감도 느껴볼 수 있어 좋다. 태조 이성계 조각상과 남녀 인물상이 서 있는 행복로는 제일시장 바로 옆에 길게 뻗어 있는데 누구나 홀가분하게 거닐며 편안한 행복감에 젖어들 수 있다. 부대찌개거리와 제일시장, 행복로는 대중교통인 전철로 쉽게 닿을 수 있다. 의정부중앙역에서 걸어서 코앞이다.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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