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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상징 해녀…조선 임금도 잠수 물질 고통 헤아렸다

송고시간2016-12-0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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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8시간 100여 차례 잠수 반복, 거친 바다 이겨내며 명맥 이어

바다와 공존 추구…농업과 병행, 연평균 잠수 수입 563만원 불과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 해녀 문화가 1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수천 년 이어온 제주 해녀 문화의 우수성과 보전의 필요성이 세계인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제주인의 삶 속에 오롯이 전해 내려온 해녀의 역사와 사계절 삶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수면으로 올라가는 제주 해녀
수면으로 올라가는 제주 해녀

(서귀포=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지난 25일 제주 서귀포시 쇠소깍 앞바다에서 하례리 어촌계 해녀가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다.
제주 해녀 문화는 다음달 2일까지 에티오피아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제11차 무형유산정부간위원회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전망이다. 2016.11.29 jihopark@yna.co.kr

◇ 역사 속의 제주해녀 기록들

"밭에서 열심히 일을 해봐야 태풍 한 번 불면 농사를 망치니 먹고 살 방도가 바다밖에 없었어…."

바다로 둘러싸인 화산섬 제주는 그래 왔다.

토양과 기후 등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척박한 자연환경 탓으로 제주 사람들은 바다를 가까이할 수밖에 없었다.

거친 파도와 싸우며 생계를 이어온 해녀의 고된 삶은 그대로 제주를 상징했다.

잠녀(潛女) 또는 잠수(潛嫂)로 불려왔던 해녀의 기원에 대해 사람들은 인류가 바다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 시작한 원시시대부터 시작됐다고 본다.

또 다른 학자들은 삼국사기 등에 섭라(涉羅·제주)에서 야명주(진주)를 진상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삼국시대 이전부터 잠수조업이 시작됐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해조류를 따던 해녀와 전복을 따던 남성 포작인은 제주에서 가장 힘든 노동을 하던 천한 계층이었다.

어떤 잠수장비 없이 그저 맨몸으로 바닷속에 들어가 해산물을 캐야 했기 때문에 다치거나 죽는 일이 많았다.

해녀는 주로 미역과 같은 해초를 채취했으나, 전복을 따던 포작인들이 관리들의 착취로 도망을 치는 등 수가 줄어들자 17세기 후반 들어 해녀에게도 많은 양의 전복을 진상토록 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전복 수량을 채우지 못하면 부모를 잡아 가두고 남편에게 태형을 가하기도 했다. 착취가 심해지자 제주 해녀들은 물질하다 뱃속 아기를 잃기도 하는 등 그 어려움이 극에 달했다.

수확물 옮기는 해녀들
수확물 옮기는 해녀들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해녀들이 소라 등 수확물을 옮기고 있다. 2016.11.30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박물관 제공=연합뉴스] jihopark@yna.co.kr

부패한 관리들의 횡포로 인한 해녀들의 고통을 전해 들은 임금과 관리들은 어렵게 채취한 전복을 차마 입에 댈 수 없어 진상하지 않도록 명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 등을 보면 세조 때(1455∼1468년)의 제주목사 기건은 해녀들이 전복 바치는 것을 괴롭게 여겨 3년 동안 전복을 먹지 않았다.

정조는 1776년 5월 "잠수하는 여인이 포작한 것을 서울에 바칠 때 간사한 꾀를 써서 물가를 올리는 폐단을 준엄하게 금하겠다"며 해녀의 고통을 헤아린 데 이어 1800년 4월에는 고을에서 전복을 사들여 쓰는 폐단이 있을 경우 엄벌하겠다고 명을 내렸다.

정조는 "매번 전복을 캐는 수고로움을 생각해 보니 어찌 전복을 먹을 생각이 나겠는가"라며 전복을 먹지 않은 왕으로 후대까지 널리 칭송됐다.

◇ '마린보이' 박태환과 해녀할머니가 겨루면

지난 2008년 10월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돌아온 박태환 선수와 제주 해녀 할머니의 잠수 대결 UCC(사용자제작콘텐츠 동영상)가 화제가 됐다.

한 의류 브랜드 회사가 제작한 동영상에는 실내수영장에서 펼쳐진 박태환과 해녀 할머니의 숨 참기 대결 모습이 담겼다.

나란히 물속에 뛰어든 두 사람은 수영장 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견제의 시선을 주고받기도 하고, '인제 그만 먼저 올라가라'며 익살스러운 장난을 치기도 했다.

3분 남짓 시간이 지난 끝에 박태환이 더는 참지 못하고 물 위로 올라가면서 대결의 승리는 끝까지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한 해녀 할머니에게 돌아갔다.

해녀 할머니는 대결이 끝난 뒤에도 승리의 'V'자를 그리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해산물 채취하는 해녀
해산물 채취하는 해녀

(서귀포=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어촌계 해녀가 쇠소깍 앞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다. 2016.11.30 jihopark@yna.co.kr

장난스러운 대결이었지만, 해녀에게 숨을 참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오랫동안 숨을 참을 수 있는 능력은 해녀의 위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대상군 또는 상군(작업 수심 10∼20m), 중군(〃 5∼10m), 하군 또는 똥군( 〃 3∼5m)으로 나뉘는 해녀의 위계질서는 단순히 노력만으로 넘나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군에서 중군이 되는 것은 개인의 노력 여부에 따라 가능할 수 있지만, 수십년간 물질을 해 온 베테랑 해녀도 타고난 폐활량과 같은 선천적인 능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중군에서 상군이 될 수 없다.

해녀는 한번 잠수에 통상 1∼2분 바닷속에서 소라·전복·천초 등을 채취한다.

상군 중 일부 해녀는 한 번에 3분가량 20m 깊이까지 들어가 작업하기도 하지만 하루 8시간가량 쉬지 않고 100여 차례 물속을 드나들어야 하는 작업 특성상 박태환과 해녀 할머니의 대결에서처럼 숨을 끝까지 참아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삶'과 단 한 번에 모든 걸 쏟아내야 하는 '대결'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숨이 길면 더 많은 해산물을 캘 수 있어 좋겠지만, 숨이 길든 짧든 부러움을 느낄 새도 없이 해녀는 하루 주어진 시간 안에 물질하고 캐낸 해산물로 삶을 이어가야 한다.

거친 바닷속에서 멈췄던 숨을 수면 위로 올라가 터뜨릴 때 내는 '숨비소리'는 바로 삶을 위한 해녀의 울부짖음과 같다.

'호오이 호오이' 마치 돌고래 또는 새가 우는 듯 아름답게 들릴 법한 이 소리는 짧은 휴식만으로도 계속해서 물질을 이어가기 위해 해녀들이 터득한 호흡법이다.

갯가의 해녀들
갯가의 해녀들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해녀들이 물질하기 위해 갯가로 가고 있다. 2016.11.30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박물관 제공=연합뉴스] jihopark@yna.co.kr

◇ 해녀의 사계절…어떻게 지내나

해녀는 1년 365일 바닷속에서 물질만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해녀는 집안에서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 또는 딸로서 제주 어촌마을에서 이뤄지는 전통 세시풍속을 그대로 따르고 집안일과 농업을 병행하기도 한다.

계절마다 월별로 반드시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고, 해산물에 따라 어족자원 보존을 위해 금채(禁採·채취 금지) 또는 허채(許採·채취 허락) 기간이 정해져 있다.

제주 해녀들은 영등달인 음력 2월에 바다의 평온과 풍작 및 풍어를 기원하는 영등굿을 지낸다. 해상 안전과 풍요의 신이라 일컬어지는 영등신은 음력 2월 초하루 제주도로 들어와 바닷가를 돌면서 미역·전복·소라·천초(우뭇가사리) 등의 씨를 뿌려 풍요를 주고 같은 달 15일 제주 동쪽 부속섬 우도를 거쳐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녀들은 믿는다.

봄이 되면 해녀들에게 가장 바쁜 일상이 돌아온다.

3월 중순 '미역 해경(解警)'이라 해서 성장기 미역을 지난해 12월부터 금지했다가 이때부터 다시 채취하기 시작한다.

4월 하순 또는 5월부터는 해녀들에게 가장 큰 수입원이 되는 천초가 난다. 0∼5m 수심이 얕은 바다에서 자라는 천초는 하군∼상군 상관없이 해녀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기 때문에 평소 일손을 놓은 나이 많은 해녀들도 이때가 되면 물질을 하러 바다를 향하곤 한다.

제 지내는 해녀들
제 지내는 해녀들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해녀들이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바다의 신 용왕에게 제를 지내고 있다. 2016.11.30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박물관 제공=연합뉴스] jihopark@yna.co.kr

해녀들은 해삼(1∼6월·8∼12월), 전복(1∼9월), 소라(1∼5월·9∼12월), 톳(2∼9월) 등 해산물마다 잡는 시기를 달리하고, 일정 크기에 달하지 않은 해산물을 잡지 않도록 규정을 두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일정 기간 채취를 하지 못하도록 벌칙을 가하기도 한다. 해녀는 삶의 터전인 바다와의 공존을 추구한다.

이렇게 1년간 물질을 해서 벌어들이는 해녀들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

제주도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20개 어촌계를 대상으로 해녀가 마을어장에서 순수하게 수산물을 포획·채취해 벌어들인 소득만을 분석한 결과 농업과 어업을 겸업하는 제주 해녀들의 1인당 연평균 수입이 563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작업 수준별 1인당 평균 소득은 상군 1천400만원, 중군 930만원, 하군 440만원으로 편차가 매우 심했다. 최고 소득은 2천500만원, 최저 소득은 100만원이었다.

한 달 10∼15일 정도 조업을 했고, 지역마다 다르지만 소라 채취가 금지되는 6∼8월에는 바다에 나서지 않았다.

특히 감귤 수확철에는 해녀들이 물질 대신 과수원에서 일당을 받아 일하기도 했다.

공식적인 자료는 아니지만, 해녀 잠수일수가 가장 많은 우도(200일 이상)와 같은 지역에서는 해녀의 연간 수입이 2천만∼4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 기사는 제주해녀박물관 기록, 통사로 살피는 제주해녀,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제주도, 제주학과의 만남,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등을 참고해서 제주해녀를 소개한 기사입니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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