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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형약국의 머슴이었다' 거래처 영업사원의 설움

송고시간2016-12-06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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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렛일·자녀 통학·이삿짐 나르기…'갑질'한 약사 부부 형사입건

약사 부부의 갑질 '거래처 직원 머슴처럼'
약사 부부의 갑질 '거래처 직원 머슴처럼'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광주 서부경찰서는 대형약국을 운영하며 거래처인 약품 도매상 영업사원을 수년간 머슴처럼 부린 약사 부부를 강요 혐의로 입건했다고 6일 밝혔다. 사진은 회사가 아닌 약국으로 출근해 문을 열고 카펫을 깐 뒤 화분을 나르는 등 허드렛일을 하는 영업사원의 모습. 2016.12.6 [광주 서부경찰서 제공=연합뉴스]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2년 전 의료품 도매업체에 입사한 A(30)씨는 매일 회사에 들러 '출근도장'만 찍고 차로 15분 떨어진 광주 동구의 한 약국에서 일과를 시작했다.

B(45)씨 등 약사 부부가 운영하는 약국에서 그가 하는 일은 오전 8시 문 열기부터 오후 7시 셔터 내리기까지 온갖 허드렛일이었다.

약국 직원들보다 일찍 나온 A씨는 화분 진열과 청소, 쓰레기통 비우기, 카펫 깔기 등 아침마다 손님맞이 채비로 분주했다.

B씨 부부가 도착하면 그들이 몰고 온 차를 주차했고, 틈틈이 빈 약장을 채웠다.

'나는 대형약국의 머슴이었다' 거래처 영업사원의 설움 - 1

미용실 방문 등 부부가 근무 시간에 짬을 내면 운전기사 노릇을 할 때도 있었다.

출출한 오후에 간식을 사오는 일이나 은행 업무, 담배 심부름까지 약국에서 A씨의 지위는 거래처 직원이라기보다 머슴에 가까웠다.

부부의 중학생, 초등학생 아들을 학원에 데려다주고 귀가시키는 등 A씨가 떠안은 일은 약국 밖에서까지 이어졌다.

쉬는 날에도 B씨 가족의 사적인 심부름에 전화벨이 울리기 일쑤였다.

어느 주말에는 이삿짐을 날랐고, 다른 휴일에는 약국에서 쓸 사무용품을 옮기느라 회사 화물차를 끌고 나갔다.

또 다른 주말에는 집안 가구를 새로 배치할 테니 와서 힘 좀 쓰라는 요구가 있었다.

업체는 대학병원 정문에서 대형약국을 운영하며 매달 10억원가량 약품을 사들이는 B씨 부부 앞에서 그저 '을(乙)'에 불과했다.

A씨와 상사들은 2009년 11월부터 지금까지 2∼3명씩 부부의 약국에 상주하며 온갖 잡다한 일을 떠맡았다.

20여명의 약국 직원은 이들과의 역할 구분에 익숙해져 A씨 등이 도맡았던 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업체 직원이 부부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거나 부당함을 제기하면 '거래처를 바꾸겠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대형약국의 머슴이었다' 거래처 영업사원의 설움 - 2

경찰은 대형약국이 납품업체를 상대로 '갑질'을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나섰다.

업체 직원들도 약사 부부도 수사 과정에서 각각 '관행'이라는 말을 꺼냈다.

A씨는 피해자 진술 때 "상사의 지시로 매일 약국으로 출근하며 사적인 심부름을 하는 동안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부부는 경찰 조사에서 "이런저런 일을 시키거나 부탁한 것은 맞지만, 업체 직원들 스스로 우리를 도왔다"고 항변했다.

5일 광주 서부경찰서는 B씨와 아내(41)를 강요 혐의로 형사 입건했다고 밝혔다.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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