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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범죄 불안ㆍ반중 감정 번진 제주 기도여성 살인사건

송고시간2016-12-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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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외사과 조직 신설…무사증 입국제도 개선은 제자리

피해자의 용서·사랑 의미 되새기는 유고시집 출판기념회도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병원 중환자실 심장박동 모니터에 긴 줄이 그어졌다. 김성현(61·여)씨의 삶이 끝났다는 신호다.

흉기에 찔린 상처로 인한 과다출혈로 숨지기 직전 그는 "범인을 용서하세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지난 9월 18일 아침 제주시 내 한 병원의 일이다. 김씨는 전날 일면식도 없는 중국인 관광객이 휘두른 흉기에 수차례 찔렸다. 혼자서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이었으며 범죄가 일어날 만한 어떠한 이유도 없었다.

중국인 거리인 제주 바오젠거리에 놓인 국화꽃 [연합뉴스 자료 사진]

중국인 거리인 제주 바오젠거리에 놓인 국화꽃 [연합뉴스 자료 사진]

제주 성당 살인 현장검증(CG)
제주 성당 살인 현장검증(CG)

[연합뉴스TV 제공]

사건은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성당에서 기도하던 여성이 흉기에 찔렸다는 보고를 받는 순간 보통 사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기간 강력사건을 담당했던 박기남 제주서부경찰서장의 직감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추석 연휴의 토요일이던 9월 17일 오전 중국인 천궈루이(50)씨는 성당 안으로 들어와서는 혼자 기도하던 김씨를 아무런 이유 없이 흉기로 수차례 찌르고 달아났다.

검거된 천씨는 "중국 공산당이 내 머리에 칩을 심어 조종하고 있다",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범행했다"며 이해할 수 없는 진술을 해댔다.

지난달 7일 제주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도 천씨는 "종교시설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구원해 줄 것으로 믿었다"는 등의 상식 이하의 말을 했다.

경찰이 천씨의 범죄심리를 분석하고 중국 생활을 조사한 결과 망상장애가 있긴 하나 일상생활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판사도 심신미약 판정을 받아 천씨가 형량을 낮추겠다는 의도로 의심했다.

천씨 범행으로 도민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으나 천씨는 정작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천씨 사건보다 1주일가량 앞선 9월 9일 제주시 연동에서는 중국인 관광객 7명이 음식점 여주인을 집단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 도민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배경이 됐다.

급기야 밀려드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주민 사이에서는 반중 감정까지 나타났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혈안이 되는 등 물질 만능에 물든 우리 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는 김씨의 장례식에서 "이 부조리하고 무자비한 죽음의 탓을, 우리 자신들의 무분별한 탐욕에 돌려야 한다. 인간의 품격과 존엄에 어울리는 절제 있는 삶을 회복하라는 하늘의 경종이 아닌가 싶다"며 일침을 가했다.

무사증 입국제도 폐지 서명운동 [연합뉴스 자료 사진]

무사증 입국제도 폐지 서명운동 [연합뉴스 자료 사진]

중국인 유학생들의 추모 [연합뉴스 자료 사진]

중국인 유학생들의 추모 [연합뉴스 자료 사진]

제주경찰은 외사과 조직을 신설, 외국인 범죄에 강력히 대응키로 했다.

제주도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은 도내 모든 숙박업소에 외국인 투숙객 여권 사본을 복사·비치해 두도록 했다. 입국불허자 증가에 따른 제도적 방안도 강구키로 했다.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협회를 통해 제주에 찾아오는 중국인 관광객에 대해 기초질서 준수 등에 대해 교육하도록 했다.

중국인 유학생들도 거리로 나와 김씨의 억울한 죽음을 추모하고 중국인에 대한 오해를 풀라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석 달이 다되고 있으나 여전히 충격은 가시지 않았고 확실한 대책이 수립되지도 않았다. 무사증 입국제도 개선이나 폐지 등 외국인 관광정책의 올바른 방향에 대한 합의도 찾지 못했다.

그간 김씨의 남편은 인천에 있는 트라우마센터에 입원, 치유해야만 하는 등 가족들은 매우 큰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있다.

김씨가 다니던 성당은 미사가 없던 시간에도 문이 활짝 열렸으나 사건 후에는 신도들이 찾는 시간 외에는 문이 굳게 잠겨져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성실한 신도이던 김씨를 보낸 성당에서는 지난달 28일 그의 유고시집 '국화향이 나네요'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시집에는 그가 생전에 틈틈이 써온 120여 편의 시가 담겼다.

출판기념회에는 가족과 신도, 문학인들이 찾아 하늘나라에 있을 그를 기렸다.

유고시집에는 그의 마지막 말인 '용서'의 의미와 용서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는 '사랑', '이해'의 마음이 한 행, 한 행에 담겼다.

/억새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 꽃이 되고 싶어라/ 누군가의 마음이 되고/ 위로가 되어 시들어 버려진다고 해도/ 사랑을 배달하는 꽃이 되고 싶어라/

김성현의 시 '꽃이 되고 싶어라' 마지막 연.

<※ 이 기사는 고(故) 김성현씨의 동료 신도 등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 작성됐습니다.>

ko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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