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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떠나니…'희망퇴직' 응했지만 재취업·살길 막막

송고시간2016-12-2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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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7천500만원 정규직도 한 순간 "푸드트럭이라도 잘 됐으면…"

"평생 배만 만들었는데, 재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요양보호사 준비

<※편집자주: 세계 조선산업을 이끌었던 한국 조선업이 컴컴한 터널 속에서 끝 모를 구조조정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울산중공업과 거제 대우조선·삼성중공업에서 1~2년새 수천명씩 회사를 떠났습니다. 현대중공업에선 2년새 협력업체를 포함해 1만6천여명이 떠났고,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에서도 올해에만 1만명가량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수주절벽이 이어져 대형 조선소가 휘청거리자 지역경제도 함께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최악의 위기가 내년에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심각해지리란 전망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연합뉴스는 연말을 맞아 눈물을 머금고 '희망퇴직'을 선택했던 조선노동자의 조선소 야드 밖 사회 적응 모습과 다행히 조선소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맞닥뜨려야하는 현실을두 차례에 걸쳐 송고합니다.>

(거제·울산=연합뉴스) 장영은 이정훈 기자 = 2016년 국내 조선업 근로자들은 구조조정 한파를 정면으로 맞았다.

수주급감·해양플랜트 대규모 적자에 따른 불황의 짙은 그림자가 올해 조선소 야드를 본격적으로 덮쳤다.

그동안 고용불안을 비교적 덜 느꼈던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빅3' 대형 조선소 정규직 현장 근로자들도 한파를 비켜가지 못했다.

올해 3대 조선소가 희망퇴직 등의 방법으로 줄인 직영인력만 6천명에 달한다.

조선산업 구고조정 저지 기자회견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선산업 구고조정 저지 기자회견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수천 거제고용복지센터장은 "대형 조선소가 구조조정을 본격화한 올해 7월 이후부터 조선업 실직자들 방문이 크게 늘어났다"며 "하루에 150명 안팎의 조선업 실직자가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재취업 정보를 얻으려 거제고용센터와 거제조선업희망센터를 방문한다"고 말했다.

기업회생중인 STX조선해양과 조선협력업체들이 밀집한 경남 창원시조선업희망센터에도 지난 7월말 센터 개설 후 이달 중순까지 1천여명에 가까운 조선 실직자가 도움을 호소했다.

조선소를 떠난 근로자들은 눈높이를 한참 낮췄지만 재취업은 힘들기만 하다.

◇ 뭘 할지 막막…푸드트럭 몰고 축제현장 뛴다

이모(50)씨는 얼마 전부터 경남 거제시에서 푸드트럭 영업을 시작했다.

지역 축제장, 시내를 돌아다니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몸을 한번 펴보기도 힘든 좁은 푸드트럭에 앉아서 찹스테이크와 핫바를 판다.

찹스테이크 1인분은 9천900원이다.

거제 옥포매립지에서 장사를 한 지난 20일에는 12만원 정도를 벌었다.

경비와 식자재비 등을 제했더니 얼추 5만~6만원이 수중에 떨어진 것 같았다.

점포 임대료 낼 일이 없고 1인 장사라 종업원 인건비 부담이 없는데도 하루 10시간 동안 매달린 일치곤 썩 만족스럽지가 못했다.

그는 "처음부터 욕심을 내면 안되지만 돈벌기 힘든 걸 실감한다"며 "손에 익으면 장사가 잘 되겠지"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김 씨는 하루벌이를 걱정해야 할 자영업자 생활이 낯설다.

작업모 내려놓고 [연합뉴스 자료사진]
작업모 내려놓고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거제시에 있는 대형 조선소 정규직원이었다.

하루종일 건조중인 선박안에서 배관이나 쇠붙이를 다루는 고된 일을 했지만 연봉이 7천500만원에 달했다.

먹고살기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던 김 씨는 용접과 배관기술을 발판으로 1996년 1월 조선소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회사 규모가 커 정년 때까지 별탈없이 조선소를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입사 20년만에 정년을 10년이나 남겨놓고 옷을 벗었습니다"

수주급감 등 조선산업 불황으로 사측이 대규모 희망퇴직을 강행하자 김 씨에게까지 '절벽'이 닥친 것이다.

희망퇴직 위로금이라고 회사가 준 돈을 쥐고 나왔지만 뭘 할지 막막했다.

고용노동부에 실직을 신고한 후 실업급여를 받으며 이것저것 구직활동을 했다.

철저한 시장조사없이 충동적으로 가게를 열거나 개인사업을 시작했다가 희망퇴직 위로금을 순식간에 날리는 동료들도 목격했다.

언제 일자리를 얻을지 몰라 동네 가게에서 몇천원짜리 생필품 하나 사는 것도 망설여졌다.

같이 희망퇴직을 했다 조선소 협력업체에 부장으로 취업한 동료로부터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등 떠밀려 나온 조선현장에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이 별로 생기지 않았다.

용접하는 조선소 직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용접하는 조선소 직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던 중 거제시에서 푸드트럭 사업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선소 근무때 제 별명이 '셰프'(주방장) 였어요. 동료들과 야유회갈 때마다 음식을 주로 맡았고 손맛도 있다고 평가받았거든요"

푸드트럭을 구하는데도 3천만원이나 들었다.

지난 10월 중고 포터 트럭을 1천만원에 사서 경기도에 있는 전문업체에 2천만원을 주고 개조를 맡겼다.

트럭을 인수한 뒤에는 거제대구축제 현장에서 시범영업을 하면서 관광객들 반응을 살폈다.

김 씨는 "어렵지만 내가 만든 찹스테이크를 맛본 사람들이 '맛이 괜찮다'고 하면 힘이 난다"며 "장사를 잘해 적더라도 매일 고정수입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식당 서빙도 힘들어"…요양보호사 도전하기로

"식당에서 서빙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 지난 23일 오후 울산시 동구 남목동에 자리한 울산조선업희망센터.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이들 회사 사내협력업체에서 희망퇴직한 실직자들 발걸음이 이어졌다.

32년 동안 일한 현대중공업에서 올해 5월 희망퇴직한 김모(59)씨는 아직 재취업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23일 울산조선업희망센터에서 만난 한 퇴직 조선소 근로자.
23일 울산조선업희망센터에서 만난 한 퇴직 조선소 근로자.

정년을 2년 여 남겨둔 그는 회사가 희망퇴직 구조조정에 나서자 사흘 동안 고민한 끝에 희망퇴직 신청서를 냈다.

조선업계 사정이 더 나빠질 것 같았고 후배들만이라도 자리를 지키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동료들은 "왜 혼자 먼저 떠나냐"며 안타까워했다.

힘든 결정 끝에 직장을 나왔지만 당장 뭘 해야할지 고민이 적지 않았다.

이제 벌어들이는 돈이 없으니 돈 드는 일을 줄여야 했다.

사람들과 만나는 술자리도 없어지고 생활비도 아껴야 했다.

여유있게 직장 생활을 하던 예전과는 분명 삶의 질도 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나마 아이들이 모두 성장해 교육에 드는 비용이 없어 다른 퇴직자에 비해 걱정은 덜한 편이었다.

뭐라도 벌이가 있어야 할 것 같아 먼저 조선 협력업체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몇 년째 조선 경기가 바닥을 치면서 이들 업체도 일하는 직원들도 잘라야 할 정도로 사정이 좋지 못했다.

조선소 현장 직원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선소 현장 직원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씨는 "배만 만들줄 알았는데, 최악의 경기를 맞은 조선업종에서 다시 취업을 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직장을 떠난 동료끼리 최근 만났더니 식당에서 서빙이라도 해보려했지만 재취업이 안된다며 모두 답답해했다.

김씨는 최근 요양보호사일을 해 보려고 조선업희망센터를 찾아 적성에 맞는지 상담을 받고 학원 수강도 했다.

내년 3차례 요양보호사 시험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비록 용돈 벌이 수준이지만, 그래도 남은 인생에서 관심있는 제 할 일을 찾는 것만으로 만족할 요량이다.

"내년에는 조선 경기가 더 어렵다는데 남아 있는 동료들도 걱정"이라는 그는 "회사가 힘들더라도 평생을 회사 발전을 위해 일해온 직원들을 이제 그만 구조조정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선 위기가 끝나 울산이 하루 빨리 예전처럼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sea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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