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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과로死·살처분 트라우마로 고통…사람 잡는 AI(종합)

송고시간2016-12-2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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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 "매몰한 오리 비명 귓가에 생생" 후유증 호소…살처분 손실 '이중고'

살처분 꺼려 용역업체 인력 못 구해…한달 반 'AI 격무' 성주군 공무원 숨져

(전국종합=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충북 음성에서 오리를 사육하던 A씨는 27일 새벽까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뒤척이다 집에서 나왔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아랑곳 않고 텅 빈 오리 축사를 둘러보며 깊은 한숨 내쉬기를 몇번이나 반복한 뒤에야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연합뉴스 DB]
[연합뉴스 DB]

A씨의 이런 생활은 벌써 한 달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오리 7천여 마리를 살처분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은 채 악몽처럼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 그를 괴롭힌다. 밤에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에 시달린다.

A씨는 "자식같이 애지중지 키운 오리를 팔 때도 마음이 아픈데… 멀쩡하게 살아있는 오리를 모두 땅에 묻는 심정이 오죽하겠느냐. 이런 심정은 가축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살처분 당시의 기억은 A씨에게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남아있다.

10여 년 전부터 오리를 사육했던 A씨는 올해 처음 조류인플루엔자(AI)에 따른 살처분을 경험했다.

"축사 전체가 오리 사체로 가득하고, 죽은 오리들이 포대에 담겨 중장비로 실려 나가 매몰되던 당시의 상황이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오리의 비명이 들리는 듯한 악몽에 시달려 잠에서 깬 적도 있다"고 살처분 후유증에 따른 고통을 호소했다.

앞으로의 생활을 생각하면 더 막막하기만 하다.

A씨는 "한 달 넘게 아무 일도 못 한 채 텅 빈 축사만 소독하고 있는데 아직도 살처분 보상금이 한 푼도 나오지 않았다"며 "AI가 종식되더라도 오리를 입식하는 데 4∼5개월은 걸릴 텐데 그동안 뭘 먹고 살아야 할지 앞이 캄캄하다"고 걱정했다.

AI의 직격탄을 맞은 가금류 사육농가 대부분은 A씨처럼 살처분 후유증과 경제적 피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농민들뿐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용역업체 근로자들이나 공무원들도 AI에 따른 고통을 겪고 있다.

2014년까지는 살처분에 대부분 공무원이 동원됐으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게 나타나자 지난해부터 가축 매물을 전문적으로 하는 용역업체에 의뢰해 살처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살처분 용역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살처분은 축사를 밀폐한 뒤 이산화탄소 등의 가스를 주입하거나 실내 온도를 올리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런 방법으로 죽지 않는 닭이나 오리가 나오면 다시 살처분한다. 이런 과정에서도 살아남는 경우는 생매장을 하는 등 살처분 현장은 상상 이상으로 살벌하다.

이런 일의 특성 때문에 웃돈의 일당을 줘도 살처분 할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일당을 받고 살처분에 참여했던 B씨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은 오리를 만져봤다. 그것도 수만 마리의 사체가 산처럼 쌓여있는 것을 본 뒤 며칠 동안 식욕도 떨어졌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살처분 상황을 회상했다.

[연합뉴스 DB]
[연합뉴스 DB]

기피 대상인 극한 작업인 탓에 살처분에 동원되는 인력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살처분 용역업체의 한 관계자는 "인력시장이나 인력 공급 용역업체를 통해 일당을 30∼50% 더 준다고 해도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며 "사체를 축사에서 꺼내고, 심지어 가스 노출 뒤에도 살아있는 닭이나 오리를 직접 죽여야 하는 일을 누가 하고 싶겠냐"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젊은 사람들은 하루 살처분 현장에서 일한 뒤 그 다음 날부터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먹고 살기 힘든 외국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살처분 현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공무원들의 어려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 27일 경북 성주군에서는 AI업무를 보던 군청 공무원 정모(40)씨가 자택에서 숨졌다.

정씨는 국내 AI가 발생한 뒤 지난달 중순부터 한 달 반 동안 거의 매일 오전 7시 40분에 출근해 밤 9∼10시까지 근무했다.

사망 하루 전인 26일에는 성주군 대가면 농산물유통센터에서 밤 10시까지 AI 거점소독 업무를 했다. 이에 따라 과로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

동료직원들은 "미혼인 정씨는 원룸에서 혼자 살았다. 평소 지병이 없고 술을 자주 또는 많이 마시지 않았다"며 "AI 소독근무에다 연말 서류정리 업무 등으로 지난달 42시간, 이달 45시간 야간업무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AI가 곳곳에서 터지면서 살처분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공무원이 직접 현장에 투입되기도 한다.

음성군에서는 인력난으로 작업이 늦어지자 공무원 70여명이 지난 24∼25일 살처분 작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공무원들도 AI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제 초소 운영과 방역 등은 공무원들의 몫이다.

살처분이 매뉴얼대로 진행되는 지도 감독해야 한다. 이 때문에 자치단체별로 10여명에 불과한 축산과 직원들은 거의 매일 2∼3명이 한 조가 돼 모든 현장에 투입돼 살처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진천군의 한 관계자는 "직접 살처분을 하지 않더라도 살아있는 생명이 죽어가는 현장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현장 투입이 잡혀있는 날에는 출근하고 싶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bw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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