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위기의 베네수엘라> ② 식량난 탓에 저절로 체중 감소하는 나라

송고시간2017-01-04 10:30

이 뉴스 공유하기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본문 글자 크기 조정

옥수수가루 한 줌 사기 어려웠던 연말…"성탄절 대신 '마두로 다이어트'"

(카라카스=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식량난으로 베네수엘라 국민은 대부분 먹지 못해 체중이 빠지는 비자발적 다이어트를 한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숨지고나서 2013년 뒤를 이은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 치하에서 이런 국민적 체중 감소 현상을 '마두로 다이어트'라고 한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청소부 야밀렛 오르테가(48)는 최저임금 2만7천300 볼리바르와 직장에서 나오는 식비 6만3천 볼리바르 등 9만300 볼리바르로 한 달을 사는 서민층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우선 한숨부터 내쉬었다.

카라카스 시민 야밀렛 오르테가. 그 는 3년새 체중 22kg이 빠졌다.

카라카스 시민 야밀렛 오르테가. 그 는 3년새 체중 22kg이 빠졌다.

식비는 턱없이 낮은 최저임금에 대한 보상 성격이라는데 사회보험료 등을 빼고 실제 손에 쥐는 돈은 7만6천 볼리바르 정도라고 한다.

이를 당시 암시장 환율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3달러(약 3천630 원)쯤이다.

오르테가는 "이번 크리스마스는 끔찍했다"고 말했다. "작은 인형 하나가 3만 볼리바르씩 했다. 옥수숫가루로 만드는 성탄절 전통 음식이 있는데 옥수숫가루를 구할 수 없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딸과 남편을 포함해 오르테가씨 가족이 사흘간 먹을 옥수숫가루 1㎏은 암시장에서 5천 볼리바르라고 한다. 이는 오르테가씨의 한 달 총수입의 15분의 1에 달하는 가격이다.

해당 옥수수 가루는 슈퍼마켓에서 195볼리바르에 살 수 있으나, 옥수숫가루 등 생필품은 주민등록번호 끝자리에 따라 지정된 요일에만 살 수 있고, 그나마도 자신이 생필품을 살 수 있는 날에 매장에 그 물건이 없으면 당연히 못 산다. 한마디로 운에 맡겨야 한다는 얘기다.

오르테가는 성탄절을 위해 지출한 비용을 묻는 말에 "그런 개념 자체가 있을 수 없다"며 "먹을 것을 못 구했고 딸 선물도 못 샀다. 크리스마스 전주 화요일에 구한 식용유 한 통이 전부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딸에게 휴대전화를 사줬는데 딸이 이를 떨어뜨려 액정이 깨졌다"며 "중국제 BLU 스마트폰을 새로 사주고 싶은데 15만 볼리바르 정도 하더라"고 말했다. 오르테가가 두 달간 번 돈을 아무데도 쓰지 않고 몽땅 지불해야 선물이어서 꿈도 못 꾼다.

카라카스 시민 야밀렛 오르테가. 그는 3년 새 체중 22kg이 빠졌다.

카라카스 시민 야밀렛 오르테가. 그는 3년 새 체중 22kg이 빠졌다.

중년 여성인 오르테가 역시 마두로 다이어트를 겪고 있다.

오르테가는 "예전엔 하루 3끼 먹는 것에 문제가 없었다"며 "지금은 옥수숫가루 구할 생각만 한다. 겨우 구하면 가루로 빵을 만들어 아침을 먹고, 점심 때 먹을 것이 있으면 먹고, 저녁에 남은 옥수숫가루 빵이 있으면 먹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이어 "마두로 다이어트는 농담이 아니다"며 "내 키가 155㎝인데 3년전 몸무게가 75㎏였다. 너무 많이 나가서 비만 치료까지 받았을 정도였는데 지금 정확히 53㎏"이라고 말했다. 3년 새 몸무게 22㎏이 빠졌다는 것이다. 오르테가는 살빼기 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못 먹어 자연스럽게 감량했다.

오르테가는 "먹을 것을 사고 싶은데 돈이 없고, 돈이 있을 때는 물건이 없다"며 "딸이 공부를 잘해 장학금 지급을 조건으로 멕시코로 유학 갈 자격을 얻었다. 어떻게든 딸과 함께 멕시코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를 벗어나고싶은 마음이 간절해 보였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지난해 7월 베네수엘라 대학들의 공동 연구를 인용해 "베네수엘라 90%는 2015년보다 적게 먹고 있으며 극단적 빈곤 비율은 2014년 이후 53% 증가했다"고 전했다.

치안 불안 역시 베네수엘라를 등지게 하는 요인이다.

특히 지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는 각종 범죄로 얼룩졌다. 경제난으로 민심이 흉흉해졌고, 그로인해 강력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카라카스는 2015년 인구 10만 명 당 살인 119건으로 전쟁 지역 제외하고 그 분야에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베네수엘라 전체로 보면 지난해 10만 명당 살인사건은 90건으로 엘살바도르(103건)에 이어 세계 2위였다.

이 때문에 카라카스의 풍경은 살벌했다.

카라카스 시내에서 스마트폰을 훔치다가 경찰에 잡힌 현행범이 수갑을 차고 서 있다.

카라카스 시내에서 스마트폰을 훔치다가 경찰에 잡힌 현행범이 수갑을 차고 서 있다.

실제 지난달 27일 카라카스 시내 공공행정부 청사 앞 카라보보 광장에서 한 남성이 스마트폰을 도둑맞았다.

범죄 방식이 과격하다. 몰래 훔쳐가는 소매치기가 아니라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데 때리고 빼앗아 달아난 것이다.

광장 주변에 경찰 10여 명이 있었지만 범죄자는 태연하게 범행했다. 경찰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범인은 곧 경찰에 붙잡혔지만, 이번엔 경찰이 피해자에게 "스마트폰은 찾지 못했다"며 어떻게 할지를 물었다. 한마디로 돈을 주면 돌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주지 않고 다른 곳에 팔아 돈푼을 챙기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선 전체 범죄의 20%를 경찰이 저지르는 것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공권력 부패가 심하다. 범죄자로선 경찰에게 뇌물을 주고 쉽게 풀려날 수 있다 보니 공권력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고, 피해자는 보복도 우려될 뿐더러 경찰에 신고해도 뇌물을 바쳐야 하기 때문에 신고를 꺼린다.

해당 스마트폰 강탈 범죄의 진행과정을 지켜본 시민 세네 블랑코(46)는 "경찰이 이렇게 많고 또 금방 잡히는 데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을 해보라. 결국 경찰도 시민의 재산을 훔치는 것"이라며 "피해자가 법적 조치를 요구하지 않는 한 범죄자는 그냥 풀려난다"고 분노했다.

특히 카라카스의 대표적 슬럼가이자 남미 최대 빈민가라는 페타레(Petare), 그리고 차베스 전 대통령 지지층이 많은 바리오 23 데 에네로(Barrio 23 de Enero)에 갈 때는 반드시 방탄차를 타야 한다.

방탄차를 운전하는 경호원은 "차에서 내려선 안 되고 차 안에서만 촬영해야 하며 잠시 정차도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이 경호원은 "비상사태를 대비한 보조 차량 1대와 오토바이 2대가 더 있어야 경호를 제대로 할 수 있다"며 방탄차 1대로도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식량난과 경제난이 심화하면서 볼리바르 주 등 베네수엘라 남부 지방에선 슈퍼마켓 약탈 등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으며 지난달 폭동으로 최소 3명이 사망하고 400명 이상이 체포됐다.

오토바이 뒤의 한 남성이 땅에 버려진 쓰레기를 뒤지고 있다.

오토바이 뒤의 한 남성이 땅에 버려진 쓰레기를 뒤지고 있다.

수도 카라카스는 아직 식량 사정이 지방보다는 나은 상황이다.

그러나 시민 오르테가는 "내가 가는 슈퍼에선 3주째 제대로 된 물건을 본 적이 없다"며 "지금은 주로 남부 지방에서 폭동이나 약탈이 일어나는데 '카라카스에서도 곧 약탈이 일어날 것'이라는 얘기가 주변에서 심심찮게 나온다"고 전했다.

카라카스에서 만난 브라질 사우바도르 출신 유학생 소라야 지소자(22)는 "우리나라 브라질은 물론이고 중남미 전체가 치안이 안 좋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그리 어색하지는 않다"면서도 "카라카스 상황이 특히 심각한 것은 사실이고 항상 조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카라카스 빈민가의 암시장 상인 '바차케로'. 살인율 세계 1위 카라카스에서 돈 뭉치를 이렇게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은 범죄 조직원이라는 의미다.

카라카스 빈민가의 암시장 상인 '바차케로'. 살인율 세계 1위 카라카스에서 돈 뭉치를 이렇게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은 범죄 조직원이라는 의미다.

jk@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