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연합이매진] "꼬끼오~" 설화 속의 재밌는 닭 이야기

송고시간2017-01-27 08:01

이 뉴스 공유하기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본문 글자 크기 조정

새벽 알리는 '빛의 전령'이자 벽사·입신출세의 상징

닭을 형상화한 신장(神將)인 미기라 대장, 만봉 作 (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닭을 형상화한 신장(神將)인 미기라 대장, 만봉 作 (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2017년은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다. 닭은 출세와 다산을 상징하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새벽을 알리는 부지런한 동물이지만 때론 아둔한 사람을 비유하는 동물로 언급되기도 한다.

진실은 무엇일까. 신화·전설·민담 등 각종 설화 속에서 닭은 어떤 동물로 통했을까.

닭의 해는 기유(己酉), 신유(辛酉), 계유(癸酉), 을유(乙酉), 정유(丁酉) 순으로 12년마다 돌아온다.

닭은 십이지지(十二地支)의 열 번째 동물이다. 달로는 음력 8월, 시간상으로는 오후 5~7시, 방위는 정서(正西)를 나타낸다.

십이지 동물은 고대 중국인이 그때그때 활동하는 동물을 들어 시간을 나타낸 것이다. 온종일 먹이를 쫓던 닭이 둥지에 들어가는 시간이 바로 오후 5~7시다.

올해 정유년은 ‘붉은 닭의 해’라고 불린다. 10천간(天干) 중 갑(甲)ㆍ을(乙)은 청색, 병(丙)ㆍ정(丁)은 적색, 무(戊)ㆍ기(己)는 황색, 경(庚)ㆍ신(辛)은 백색, 임(壬)ㆍ계(癸)는 흑색을 상징한다.

이런 연유로 지난해 ‘붉은 원숭이의 해’에 이어 올해는 ‘붉은 닭의 해’가 되는 것이다. 붉은색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특별한 의미는 없다.

◇ 긴 세월 친숙한 동물

우리나라에서는 고대부터 닭을 사육한 것으로 보인다.‘후한서’ 동이열전(東夷列傳)에서는 특산물을 열거하며 “꼬리가 긴 닭이 있는데 꼬리가 다섯 척이나 된다”고 했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세미계(꼬리가 긴 닭)가 나는데 그 꼬리의 길이가 모두 다섯 자 남짓 된다”고 적혀 있다.

닭은 긴 세월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해 온 동물이었다. 우리 문화 속에 닭과 관련한 풍속과 놀이, 유물이 많았다.

우리 전통을 보면 혼례에서는 청홍 보자기에 닭을 싸서 상에 올리고, 식이 끝나면 폐백용으로 사용했다. 닭이 다산과 부활을 상징하는 길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국가 제사인 종묘 제례에서는 닭의 형상이 새겨진 술잔을 사용했는데, 이는 선왕의 위엄과 신성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전통 놀이 가운데는 한 발로 뛰며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닭싸움도 있다.

닭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동물로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도 했다. 신라 시대 왕릉이나 불탑의 탑신 등에는 용맹스럽게 무기를 들고 있는 닭 조각을 볼 수 있다.

음력 정월의 첫 닭날인 상유일(上酉日)과 관련된 풍속도 재미있다. 이날 부녀자가 바느질을 하면 손이 닭발처럼 된다고 해서 금기시했고, 제주도에서는 이날 사람들이 모이면 싸움이 난다며 모임을 열지 않았다. 전남 지역에서는 이날 닭이 곡식을 헤치면 흉년이 들거나 재산이 흩어진다고 여겨 마당에 곡식을 널지 않았다고 한다.

19세기 금계도,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19세기 금계도,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 세상 깨우는 울음소리 "꼬끼오~"

중국 신화에서는 바닷속 도삭산(度朔山)의 거대한 복숭아나무에 살면서 태양이 비출 때 아침을 알리는 "꼬끼오~" 소리를 내는 천계(天鷄)가 있다.

천계의 울음소리를 신호 삼아 이 세상 모든 닭은 차례대로 울음으로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도삭산은 귀신의 소굴로, 귀신들은 첫닭이 울기 전에 돌아와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는 것이 옛날 얘기다.

닭은 새벽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청아한 울음으로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옛날 닭의 울음은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일을 예고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수탉이 새벽에 홰를 세 번 이상 치고 꼬리를 흔들면 간밤에 마을로 내려왔던 맹수들이 산으로 돌아가고, 잡귀가 모습을 감춘다고 믿었다.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는 “닭은 광명을 가져다주는 빛의 전령일 뿐만 아니라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 무속신화 천지황 본풀이 서두에는 “천황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쳐 크게 우니 갑을 동방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닭의 울음과 함께 천지가 개벽하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닭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기도 하지만 바로 세상의 시작도 닭의 울음소리에서 시작한다고 믿었다.

조상들은 닭의 울음소리를 통해 시간을 가늠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려 왕궁에서는 자시(子時)와 축시(丑時), 인시(寅時) 등 우는 시각에 따라 닭을 일명계(一鳴鷄), 이명계(二鳴鷄), 삼명계(三鳴鷄) 등으로 나눠 불렀다. 닭 울음소리는 아침이 오는 것을 알려주는 자명종이자 살아 있는 시계였던 셈이다.

닭이 제때 울지 않으면 불길한 일이 생긴다는 속설도 있었다. 닭이 초저녁에 울면 재수가 없고, 오밤중에 울면 불행한 일이 생기고, 해가 진 뒤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김알지 탄생 신화가 전해지는 경주 계림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알지 탄생 신화가 전해지는 경주 계림 (연합뉴스 자료사진)

◇ "우리 민족은 닭을 신성시했다"

우리나라 고대 신화에서 닭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였다. 서기 65년에 신라 탈해왕은 금성(金城, 지금의 경주) 서쪽 숲에서 닭 울음소리를 듣고 신하를 보내 살펴보게 했다. 숲에는 빛이 비치고 자줏빛 구름이 하늘에서 땅에 뻗쳤는데, 나뭇가지에 금궤가 걸려 있고 나무 아래서는 흰 닭이 울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탈해왕이 직접 가서 궤를 열어 보니 용모가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때부터 이 숲을 계림(鷄林)이라 부르며 국호로 삼고, 아이는 금궤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을 김 씨로 했다. 경주 김 씨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 신화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부인인 알영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나던 날 알영이라는 우물에서 닭 모양의 용이 나타나 왼쪽 갈비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났는데, 자태와 얼굴이 유달리 고왔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았다. 월성 북천에 가서 목욕시키니 그 부리가 빠졌다는 것이다.

알영은 백성에게 농사와 누에치기를 가르쳤는데 신라인들은 그를 땅의 신이자 곡식의 신으로 숭배했다고 한다.

고구려의 무용총 천장에는 닭 한 쌍의 그림이 있고, 천마총에서는 달걀 껍데기, 신라의 고분에서는 닭 뼈가 발견된 것을 보면 삼국시대에 닭은 숭배의 대상이자 부활의 상징이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정재서 교수는 “봉황은 원래 야생 닭의 모습에서 출발하는 상상 속 새”라며 “동이족이 새를 숭배하고, 시조 탄생 신화에 닭이 등장하는 것에서 우리 민족이 닭을 신성시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 후기 화가 변상벽의 닭 그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조선 후기 화가 변상벽의 닭 그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 축귀ㆍ벽사, 입신출세의 상징

중국 한나라의 ‘시경’ 해설서인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따르면 닭은 다섯 가지 덕(德)을 지녔다. “머리에 붉은 관을 쓰고 있어 문채(文彩)가 나고, 다리에는 긴 뒷 발톱과 날카로운 발톱을 지녀 무(武)을 겸비했고, 강한 적을 앞에 두고도 감히 싸움을 벌이니 용기가 있고, 먹이를 얻으면 ‘꼬꼬’ 하면서 서로에게 고하니 인의(仁義)가 있으며, 날이 샘을 고하여 해시계와 같으니 믿음을 지킨다”고 했다.

선조들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거나 귀신을 쫓는 벽사·축귀 의식에서 닭 그림이나 닭 피 등을 사용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새해를 맞은 가정에서는 닭ㆍ호랑이ㆍ용 그림을 벽에 붙여 액이 사라지길 빌었다고 한다. 또 설날이나 보름날 첫닭이 우는 횟수를 세어 10회 이상이면 풍년, 그 미만이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닭 그림은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을 상징하기도 한다. 조선 시대에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서재에 닭 그림을 걸어두고 공부를 했다. 닭의 볏 모양이 벼슬을 상징하는 관(冠)을 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닭과 맨드라미가 함께 있는 그림은 최고의 입신출세를 의미하고, 닭과 모란이 함께 있는 그림은 부귀공명을 나타낸다.

닭 그림은 다산을 기원하는 것으로도 사용됐다. 조선 후기 화가 변상벽의 ‘암탉과 병아리’ 그림을 보면 어미 닭과 병아리 십여 마리가 함께 나오는데, 이는 자손의 번창을 뜻한다.

◇ 최고의 길지 나타내는 닭 모양 땅

이성계가 도읍을 정하기 위해 무학대사와 지금의 계룡시 남선면 일대에 이르렀을 때 무학은 산 형국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ㆍ금계가 알을 품는 형국)이자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ㆍ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을 이룬 명산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계룡산은 바로 계(鷄)와 용(龍)을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

전북 장수군 장수읍의 고산지대인 용계리(龍鷄里)에도 이성계와 닭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이성계는 왜적을 물리치러 가는 길에 하룻밤을 보내며 첫 닭이 울면 출발하자고 했는데 한밤중에 닭이 우는 것이었다. 이상했지만 장병들을 깨워 출발시켰고 결국 전북 남원에서 왜구를 맞닥뜨려 싸워 대승을 거뒀다. 이후 마을 이름은 용계리로 불리게 됐다.

금계포란형의 땅은 금계가 알을 품은 모양으로, 권력이나 관운이 따르는 최고의 길지로 꼽힌다.

이런 연유로 전국에는 닭실, 달개, 달기, 닭메, 달섬처럼 지명에 ‘닭’이름이 붙은 것이 적지 않다. 경북 봉화의 닭실마을도 대표적인 금계포란형이다.

◇ "닭대가리라고?…억울하닭!"

‘닭대가리’의 사전적 의미는 “기억력이 좋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한때 TV 개그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에서는 깜빡깜빡하는 닭 캐릭터를 등장시켜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닭은 정말 머리가 나쁜걸까.

영어로 ‘닭’(chicken)은 어리석은 겁쟁이를 뜻한다. 치킨게임(chicken game)이란 용어도 있다. 1950년대 미국 갱들 사이에서 유행한 게임으로 차를 타고 도로 양쪽 끝에서 서로를 향해 마주 달리다가 겁을 먹고 먼저 운전대를 꺾는 사람이 겁쟁이로 여겨진다. “너 죽고 나 죽자”하는 이판사판 게임이다. 양쪽 모두가 포기하지 않으면 가장 나쁜 결과가 초래되는 상황이다. 어리석지만 이런 게임은 현실에서 빈번하다.

그러나 각종 연구에 따르면 닭은 꽤 똑똑한 동물이다. 호주 맥쿼리대학에서 동물의 의사소통과 인지를 연구하는 캐롤린 스미스 연구원과 미국의 과학 저자인 새러 질린스키는 2014년 미국 과학 월간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2월호에 ‘똑똑한 새’(Brainy Bird)라는 글을 실었다. 여기에서 똑똑한 새는 바로 닭을 말한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닭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24개의 다른 울음소리를 낸다. 먹을 것이 있다거나 위협적인 동물이 주변에 있는 상황 등을 이해하고 다른 닭에게 소리로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경북 의성에는 ‘열계전’이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수탉 한 마리와 암탉 세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웃집 수탉이 공격해 이 집 수탉이 죽었다. 이후 암탉 두 마리는 이웃집 수탉과 함께 살았지만 나머지 한 마리는 이웃집 수탉을 보면 늘 피해 다녔다. 이 암탉은 죽은 수탉과의 사이에서 생긴 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병아리가 깨어나고 성장한 어느 날 암탉과 새끼들은 이웃집으로 날아가 수탉의 목을 쪼아 죽였다. 암탉은 돌아오다 문 앞에서 죽고, 새끼들도 어미가 죽은 것을 보더니 모두 문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닭도 짝과의 의리를 지키고, 아비의 원수를 갚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닭이 어리석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편견일 뿐”이라며 “목적을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아비의 원수도 갚는 것을 보면 결코 닭이 사람만 못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정유년 새해를 맞다' 특별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정유년 새해를 맞다' 특별전

(사진/임귀주)

◇ 역사 속에서 굴곡졌던 닭의 해

역사 속 닭의 해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근현대 우리나라에서는 굵직한 사건이 자주 발생했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사살했고, 1921년에는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가 창립됐으며, 1933년에는 조선어학회가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발표했다. 일제강점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은 것도 1945년 닭의 해였다.

현대에 들어서는 1969년 국민투표로 삼선개헌안이 가결돼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체제를 연장했다. 1981년에는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이 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해 5공화국을 출범시켰다. 공교롭게도 12년 후인 1993년 전두환ㆍ노태우 군부정권은 막을 내리고 대한민국 최초의 문민정부가 탄생했다.

세계적으로는 1909년 미국 탐험가 로버트 E. 피어리가 북극점에 도달했고, 1921년에는 중국공산당이 결성됐다. 1957년에는 세계 최초 인공위성인 러시아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됐고, 1969년에는 미국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다.

올해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정확한 날짜를 예상할 수는 없지만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5월 1일부터 7일까지 징검다리 휴일과 연휴가 대기 중이다. 특히 10월 2일 휴가를 내면 9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개천절, 추석, 한글날을 끼고 10일짜리 황금연휴를 보낼 수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