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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소설 낸 김훈 "희망 보여주지 못한 건 분명한 한계"

송고시간2017-02-0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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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전망이 저에겐 없다…희망은 생활 위에 건설할 수밖에"

김훈, '공터에서' 출간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소설가 김훈이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장편소설 '공터에서' 출간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2.6 scape@yna.co.kr

김훈, '공터에서' 출간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소설가 김훈이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장편소설 '공터에서' 출간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2.6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명석한 전망이나 희망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쓴 모든 작품에서 그와 똑같은 문제는 발생한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너의 한계다'라고 말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분명한 한계입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저의 한계는 있는 것입니다."

소설가 김훈(69)은 6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펴낸 장편소설 '공터에서'에 대해 이렇게 자평했다. 작가는 "거대한 전망, 시대 전체의 구조, 통합적 시야가 저에게는 없다. 내가 쓰고 싶은 것, 써야 마땅한 것을 쓰는 것이 아니고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겨우겨우 조금씩 쓸 수밖에 없다"는 '변명'도 내놓았다.

'공터에서'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마씨 집안사람들 이야기다. 아버지 마동수에는 작가의 부친인 김광주(1910∼1973), 둘째 아들 마차세에는 작가 자신이 겹쳐진다. 전형적 소시민인 마차세가 소설에서 내보이는 희망이라고는 딸아이 출산 정도다. 작가는 "그런 것을 희망이라고 한 것은 한심한 일이 아닌가 싶다"면서도 "이념을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희망이라는 건 결국 생활 위에 건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생활에 기반하지 않은 어떤 이념이나 사상에도 기울지 않는다는 작가의 생각은 등장인물들의 삶과 대화에서 여러 차례 드러난다. 아버지 마동수가 일제 강점기 중국 상하이(上海) 떠돌던 시절 '혁명 동지' 하춘파는 말한다. "권력에 의해 작동되는 인간관계의 비극은 세계사의 질곡이다. 이 비극의 사슬을 끊어낼 때 세계는 새롭게 태어나고 이 신세계에서 인간의 모든 위계적 관계는 소멸한다." 마동수는 하춘파의 단어들이 실체를 가지고 있는지, 그가 말과 세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작가는 "우리들 시대의 야만성과 폭력이 무서웠다"면서도 "어떠한 시대 전체를 전체로서 묘사할 수 없었다. 내가 쓰지 못한 부분을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쓴 부분을 어여삐, 연민을 가지고 봐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대체로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독재정치 등 시대의 어두운 단면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새 책 이야기하는 김훈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소설가 김훈이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장편소설 '공터에서'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2017.2.6 scape@yna.co.kr

새 책 이야기하는 김훈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소설가 김훈이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장편소설 '공터에서'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2017.2.6 scape@yna.co.kr

작가는 "디테일에 갑자기 달려들어서 날카롭게 한 칼씩 찔러버리는 스냅 기법을 써야겠다, 디테일을 통해서 디테일보다 더 큰 것을 드러내 글쓰기를 돌파하자는 생각을 했다. 전체를 말할 수 없는 자의 전략적 기법"이라며 "전략은 부분적으로 성공했고 많은 부분에서 실패했다. 세 배 정도 분량으로 썼다가 스냅과 크로키가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걷어냈다"고 설명했다.

부친과 같은 해 태어나 비슷한 시기 숨지는 마동수에 대해서는 "나의 아버지와 그 시대 다른 많은 아버지들을 합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작중 마동수는 상하이에서 한인 망명자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해방과 함께 귀국한 뒤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고 떠돈다. 작가는 부친 김광주에 대해 "아버지는 김구 선생과 관련된 독립운동가라고 볼 수는 없고 아버지가 그렇게 주장하고 다녀서 그렇게 알려져 있다"며 "나라를 잃고 방황하는 유랑청년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작가는 최근 주말마다 벌어지는 탄핵 찬반집회에 조카들, 같은 또래 친구들이 함께 나가자고 했지만 걸리지도 않은 감기를 핑계로 거절했다고 한다. 친구들은 태극기를 어깨에 두른 사진을 보내왔다고. 대신 관찰자 입장에서 혼자 두 차례 나갔다고 전했다. "태극기, 성조기, 십자가. 내가 어렸을 때 전개됐던 이 나라 반공의 패턴과 똑같다. 기아와 적화가 가장 무서웠는데 그런 잠재적인 정서가 저렇게 됐구나 싶었다."

작가는 "지나간 시대의 신문들을 보니 70년 동안 유구한 전통이라는 것은 갑질"이라며 "한없는 폭력과 억압, 야만성이 지금까지도 악의 유산으로 세습되고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작품을 쓸 계획을 묻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원고 교감을 언급하며 "글의 한계를 넘어서 종교의 영역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젊은 작가들에게 "우리 세대가 못 보는 것들을 보고 있다"면서도 "문체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더라"며 쓴소리를 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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