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전쟁 폐허 속 한국 기록한 미국인, 듀이 맥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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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폐허 속 한국 기록한 미국인, 듀이 맥린 박사

지난 18일 미국에서 한통의 비보가 날아왔습니다. 세계적인 지질학자로 이름을 떨친 듀이 맥린 박사가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국내에 전해졌죠.

맥린 박사는 지난해 8월 12일 지병이 악화돼 85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미국 학계에서 유명한 그는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풍경을 250장의 사진으로 남긴 인물로 알려져있습니다.

1952년 겨울, 당시 스물한 살이던 맥린 박사가 한국에 도착해 처음 마주한 광경은 폐허가 된 도시였습니다.

국가가 불러서 또 호기심에 겁없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는 끔찍한 전쟁의 현장을 보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도시가 완전히 무너진 가운데서도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작은 고아들의 모습은 나를 빨리 어른이 되라고 재촉했다."

'폐허가 된 시내를 배경으로 남산자락을 걷는 봇짐장수, 전쟁통에도 잔해 하나 없이 평온하고 푸른 한강…'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웠던 맥린 박사는 '미8군 제2철도수송단'에서 상병으로 근무하면서 일상과 풍경을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기록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다 찍은 필름을 봉투에 담아 우편으로 미국의 필름 제조사인 코닥에 보내 현상한 뒤 한국에서 다시 받았죠.

맥린 박사가 지난 2013년 공개한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조선신궁과 1천개의 계단 사진은 서울역사박물관의 데이터베이스에 포함됐습니다. 한양도성 사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시 제출되기도 했죠.

그러나 그가 가장 아끼고 반세기 후에도 생생하게 기억한 사진은 '동생을 업고 폐허가 된 서울 시내를 걷는 한 소녀'였습니다.

"더운 여름날 군용 트럭들이 다니는 길 사이로 동생을 업고 지나가던 작은 소녀가 잊히질 않는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그 소녀는 어떻게 됐을까 자꾸 생각이 난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스탠퍼드대학에서 지질학과 생물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얻고 교수가 됐습니다.

세 차례 뇌 수술로 신경병을 앓았던 맥린 박사는 몸이 회복되면 한국전쟁 중 찍은 사진들로 책을 내고, 꼭 한번 한국을 찾고 싶다고 말했죠. 그러나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한국 사람과 땅, 눈길을 끄는 것들을 볼 때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전쟁 후 한국의 경이로운 성장은 내게도 기쁜 일이었다."

종군사진기자는 아니었지만 남다른 애정으로 한국을 기록했던 맥린 박사. 그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사진은 한국의 생생한 역사가 됐습니다.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이홍재 인턴기자

junepe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17/03/27 15: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