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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만남 때문에…' 허무하게 스러져간 지적장애인의 꿈

송고시간2017-03-2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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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건만남 빌미로 수시 협박 일당 입건

(의정부=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지난해 12월 18일,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공원에서 A(24)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A씨는 지적장애 3급으로, 목을 매 숨져있었다.

'조건만남 때문에…' 허무하게 스러져간 지적장애인의 꿈 - 1

시신에서 타살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장애인으로서 겪었을 사회적 고난이 스스로 목을 맨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을 듯 보였다.

하지만 A씨의 유족들은 "그럴 리 없다"며 펄쩍 뛰었다. 자폐성 장애가 있긴 했지만, A씨는 전문대를 졸업한 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 식당에서 설거지하며 적금도 넣고, 할머니 요양비도 보태는 효자였다.

의정부에서 가족과 함께 살던 A씨는 숨지기 하루 전 일터에 갔다가 귀가하지 않았다. A씨를 아는 지인은 이날 서울 광화문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촛불집회 현장을 서성이는 A씨를 발견했다.

사회적 교류가 거의 없던 A씨가 집회에 나갔을 가능성은 희박했고, 이를 이상하게 생각해 귀가를 권유하자 A씨는 "형에게 돈을 줘야 하는 데 대출이 실패했다"며 황급히 도망갔다고 한다.

이런 정황들을 경찰에 전달됐고 경찰은 뭔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 디지털 포렌식 기법으로 A씨의 통화기록과 금융거래 내용을 분석했다.

그 결과, 사망 약 두달전부터 휴대전화 메신저 대화 내용과 송금 기록 속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이름들이 있었다. 이모(21)씨와 그의 여자친구 B(17)양, 이씨의 동생(17)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0월 B양과 메신저를 통해 조건만남 성매매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잘못의 대가는 가혹했다.

직업이나 주거가 일정치 않은 이씨는 동생과 함께 B양에게 성인들과 성매매를 하게 하고 이를 빌미로 협박해 돈을 뜯어낼 계획이었다.

A씨 이전에도 한번 범햄을 시도했지만, 상대 남성이 강하게 반발해서 실패했다. 이런 이들에게 지적장애인 A씨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성매매 당일, 이씨는 여자친구에게 받은 연락처로 A씨를 불러내 500만원을 뜯어냈다.

이날부터 시작된 협박에 A씨는 속수무책이었다. 주범인 17살에 불과한 이씨의 동생은 A씨에게 자신을 형이라 부르게 하고 돈이 필요할 때마다 A씨에게 "성매매 사실을 밝히겠다"며 연락해 돈을 뜯어냈다. A씨는 이씨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그동안 식당에서 설거지하며 모아둔 적금을 다 털어야 했다.

이들은 A씨의 돈이 다 떨어지자 지인에게 돈을 빌리게 하거나 제2금융권에서 대출받게 해 상납을 받았다. 이렇게 뜯어낸 돈이 약 한달간 2천 300만원에 달했다.

A씨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대부업체 수십 곳에 전화하고, 서울과 의정부에서 발품을 팔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씨 형제가 A씨를 데리고 다니며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게 한 폐쇄회로(CC)TV 화면도 확보했다.

경기 의정부경찰서는 이씨를 특수강도 혐의로 구속하고 B양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3일 밝혔다. 이씨의 동생은 최근 다른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지적장애가 있으면 위기 상황에서 성인보다 판단력이 훨씬 떨어지고 패닉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며 "이씨 일당의 협박을 견디지 못한 A씨가 방황하다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씨의 부모는 "아들의 원한이 조금이나마 풀리게 돼 감사하다"며 "가해자들이 엄벌에 처해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jhch79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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