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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베르는 샹송 작사가? 전복과 변화의 시인"

송고시간2017-03-3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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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생근 교수가 번역한 프레베르 시화집

자크 프레베르[문학판 제공]
자크 프레베르[문학판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오!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네/ 우리가 다정했던 그 행복한 시절을/ 그때 인생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웠고/ 태양은 지금보다 더 뜨거웠지/ 낙엽을 삽에 쓸어담아 치우는데…/ 너는 알겠지 내가 잊지 못한다는 것을/ 낙엽을 삽에 쓸어담아 치우듯/ 추억과 회한도 그럴 수 있겠지" ('고엽' 부분)

이브 몽탕의 샹송 '고엽' 노랫말을 쓴 작사가로 유명한 프랑스 시인 자크 프레베르(1900∼1977)의 시화집 '장례식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문학판)가 출간됐다. 프레베르의 시와 샹송 가사 등 82편이 가브리엘 르페브르의 그림과 함께 실렸고 오생근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가 번역했다.

프레베르는 1925년부터 5년가량 초현실주의 그룹의 일원이었지만 당시 시를 쓰지는 않았다. 이론적 실험에 몰두하는 초현실주의 그룹이 그에게는 또다른 학교와 같았고 결국 1930년 그룹을 나와 노동자 대상 민중극단 '10월 그룹'에 가담해 희곡을 썼다. 첫 시집 '말'은 1946년에 나왔다.

오생근 명예교수 [문학판 제공]
오생근 명예교수 [문학판 제공]

프레베르는 프랑스에서 일반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시인으로 꼽힌다. 인생·사랑·자유 같은 보편적 주제를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에서 노래한 작품이 많다. 프랑스 초현실주의 문학 연구를 평생 업으로 삼아온 오 교수는 강단에 서던 시절 프레베르의 문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대중적 인기를 누리며 연극이나 영화에도 발을 담근 데 대한 선입견이 컸다. 문학적 이념 차이로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제명됐다고 섣불리 단정지은 까닭도 있었다.

오 교수는 2011년 정년퇴임 이후 프레베르 전기와 비평서를 읽다가 자신의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고 그가 매우 대단한 시인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프랑스의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는 프레베르의 시에 대해 "그동안 시의 이름으로 정신을 경직되게 만들어온 모든 것에 대한 생생한 거부이자 조롱"이라고 했다.

"푸른 눈의 고래 눈처럼 푸른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지/ 왜 내가 불쌍한 동물의 고기를 썰어야 하나요 나에게 아무 짓도 안 했는데요/ 할 수 없어요 난 그 일을 못해요/ 그런 후 그는 칼을 땅에 던져버렸네" ('고래잡이' 부분)

"프레베르는 샹송 작사가? 전복과 변화의 시인" - 3

프레베르는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것, 아이와 여자, 새와 말 등 동물들, 사랑과 자유를 좋아했고 경직된 사고방식의 어른들, 위선적 부르주아들, 전쟁과 폭력을 싫어했다. '고래잡이'에서 아들은 고래를 잡아온 아버지가 못마땅하다. 고래가 칼을 집어 아버지를 살해해도 슬퍼하지 않는다. 시인은 오히려 "왜 내가 이 불쌍한 얼간이를 죽였단 말인가"라며 고래의 시선에서 인간을 풍자한다.

오 교수는 "아버지의 고래사냥과 고래의 살인이라는 초현실적 상상의 세계를 통해, 죄의식 없이 고래를 살해하는 권위적인 아버지를 비판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프레베르는 전통적인 시의 규범을 포함해 사회의 권위와 가치관에 도전한다. 오 교수는 프레베르의 시를 '사건의 시'라고 칭하면서 "여기서 사건이란 위반과 전복과 변화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프레베르는 대중적 시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가치와 질서에 대한 위반과 전복과 변화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424쪽. 1만9천원.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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