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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일해도 같은 월급…도둑취급 받기도"…유통 비정규직 눈물

송고시간2017-05-16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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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유니폼·모자·명찰까지 내 돈으로 삽니다"

(서울=연합뉴스) 유통팀 = "우리 마트에는 비정규직이 거의 없습니다. 비정규직이었던 캐셔(계산원)와 판매영업직(매장직원)들을 몇 년 전에 모두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했거든요."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이른바 대형 할인마트 '빅3'에 비정규직 현황을 묻자 대부분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과연 유통 현장은 일에 따라 평등하고 합리적 급여와 대우가 보장되는 근로자들의 천국일까.

일부 마트는 무기 계약직에 '행복사원'이라는 이름까지 붙였지만 무기 계약직 직원들의 처지가 마냥 행복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더구나 '슈퍼 갑' 대형 유통업체에 물건을 납품하는 협력업체 비정규직의 근로 여건은 더욱 나빴다.

◇ "시급 6천원에 승진 없는 '무기 계약직'으로 정규직 생색"

마트들이 2007년부터 적극적으로 도입한 '무기 계약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 성격이라는 뜻에서 '중규직'이라고도 불린다.

이마트는 2007년 계산원 4천223명, 2013년 판매사원 1만772명을 각각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거나 신규 채용했다. 롯데마트도 지난해 기준으로 계산원, 매장직원 등 9천236명의 무기 계약직을 고용하고 있다.

하지만 무기 계약직은 엄밀히 정규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계속 고용 계약이 연장되기 때문에 고용 안전성을 갖췄을지 모르지만, 근무 연차에 따른 임금 상승이나 승진 등의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일반 정규직 사원과는 전혀 다른 임금과 직급 체계를 별도로 적용받는 것이다.

지나치게 낮은 임금 수준 역시 논란거리다.

무기 계약직의 대부분은 현재 마트로부터 최저임금과 같거나 최저임금을 약간 웃도는 정도의 시급, 6천500~6천900원을 받고 있다.

따라서 1주일에 40시간 이상을 근무한다고 해도 월 급여는 130만~150만 원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정민정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교육선전국장은 "무기 계약직은 고용이 자동 연장된다는 측면에서만 정규직 성격을 띠고 있을 뿐, 정년까지 승진과 임금 인상이 거의 없는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10년, 20년을 일해도 신입 사원과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 무기 계약직 도입만으로 대형 유통업체들이 비정규직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규직의 '차선책'으로서 한계를 가진 이 '무기 계약직'마저 외면하는 유통업체들도 있다.

예를 들어 농협이 운영하는 양재 하나로클럽의 경우 계약 기간이 2년 미만의 '단기 계약직'으로 계산원 등 매장직원의 약 90%를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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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트에 내 운명 달렸지만 소속은 인력업체"

대형 유통업체에서 일하는 납품업체 직원들의 고용 불안은 더 심각하다.

이들은 마트 등 매장에서 협력업체 제품을 진열하고 판매하지만, 마트와 협력업체 모두에 속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상당수의 고용이 '제3자'인 전문 인력업체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 여파로 대형마트 매장에서 옥시 제품이 단기간에 철수됐는데, 이때 옥시 제품을 십 여년 간 판매해온 매장직원들도 함께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당시 많은 판매사원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옥시에 고용된 직원이 아니라 인력업체 소속 파견 직원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마트, 협력업체, 인력업체 등이 얽힌 '이중삼중' 고용 관계 탓에 일하는 직원들은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다.

예를 들어 A 인력업체에 속해 마트 한 지점에서 '○○제과' 판매를 맡았던 직원이, 마트와 해당 제과업체, B 인력업체의 새 계약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소속 회사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설상가상'격으로 B 인력업체의 고용 승계가 순조롭지 못하고 직원의 근무 기간이 12개월 미만일 경우,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실직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는 게 현장 근로자들의 하소연이다.

심지어 마트 매장 최전선에서 뛰며 판매 실적에 기여하지만, 이들 협력업체 판매직원들은 해당 마트의 유니폼, 모자, 심지어 명찰 등까지 영업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직접 자기 돈으로 사서 써야 한다.

한 관계자는 "마트나 협력업체나 인력업체나, 그 누구도 따로 비품을 지급해주지 않는다"며 "처음 배치받고 마트 측에 찾아가 유니폼 상의와 모자, 명찰을 각 1만5천 원, 4천 원, 1천700원을 주고 사면서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 "잠재 절도범 간주하고 감시"…"시급 1만원으로 높여야"

노동 조건뿐 아니라 '인권' 차원에서도 유통 근로자들에 대한 푸대접은 이어지고 있다.

앞서 2014년 이마트는 계산원 등 무기 계약직원들의 사물함을 무단으로 뒤져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이마트 노조는 "직원을 잠재적 절도범으로 간주한다"고 반발하며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현재 마트 협력업체 직원들도 비슷한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

한 관계자는 "예를 들어 세제를 하나 팔면 끼워주는 키친타올과 같은 '증정품'은 보통 현장에서 바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판매직원들이 관리한다"며 "하지만 일부 마트 지점은 '증정품이 자꾸 없어져 손실이 난다'면서 마트 창고에 증정품을 두고 판매직원들이 오면 일일이 검사를 거쳐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유통 대기업들의 고용 정책도 보다 전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민정 국장은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최저임금 1만 원'을 마트 등 유통 부문에서부터 시행해봤으면 좋겠다"며 "유통 대기업들은 재정 여력이 있기 때문에, 이익을 조금만 양보해서 유통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 조건을 개선해주면, 서비스의 질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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