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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한열을 사는 사람]④ '벗겨진 운동화' 주운 이정희씨

송고시간2017-06-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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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 손상돼 2015년 복원작업…'한국 민주주의 상징'으로 남아

"깨어나면 신고 갔으면 했는데…지금 세상 보면 한열이도 좋아할 것"

복원된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복원된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구리=연합뉴스) 채새롬 기자 = 서울 신촌의 이한열기념관에는 곳곳에 때가 묻고 색이 바래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흰 운동화 한 짝이 전시돼 있다.

270㎜짜리 이 운동화는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앞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 열사가 신은 것이다.

전경이 직격으로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은 이 열사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을 보면 양발에 운동화가 모두 신겨져 있다.

하지만 이 열사의 운동화는 병원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벗겨져 분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나마 남은 한 짝이 바로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시위 현장에 나뒹굴던 것을 함께 시위에 참가한 연세대 사회사업학과 84학번 이정희(52)씨가 주운 것이다.

복원되기 전 심하게 손상된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복원되기 전 심하게 손상된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 시절 넉넉하지 못한 대학생 사이에서 요새의 '나이키'이자 '아디다스'로 통하던 '타이거' 제품의 이 운동화는 시간이 흐르면 밑창이 부서지는 등 심하게 손상됐다.

2015년에 이르러 근·현대 미술품 복원 전문가 김겸 박사의 손길을 거쳐 원래 형태를 되찾았고, 지금은 엄혹한 시대에 민주화의 길을 걸었던 이들의 피와 땀을 말없이 증명하는 상징이자 예술작품으로 남았다.

이 열사 사건 30주년을 맞아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 구리YMCA 사무실에서 만난 이씨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이씨의 기억 속 1987년 6월 9일에는 '6·10 국민대회'를 하루 앞두고 대학마다 국민대회 참가 결의대회가 열렸다. 학생도 경찰도 바짝 긴장한 날이었다.

스크럼을 짜고 연세대 교문 쪽으로 행진하던 학생들의 머리 위로 '지랄탄'(다중진압용 최루탄)이 쏟아졌다.

"시위대 선두 쪽에 있다가 지랄탄을 피하는데 옆에서 갑자기 '비켜! 비켜!' 하며 다급한 소리를 내며 학생들이 지나갔습니다. 다친 사람을 부축해 가는데 그 사람 신발 한 짝이 떨어졌어요. 시위에서 크고 작은 부상은 으레 있었기에 못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죠.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에 병원까지 들고 따라갔습니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서 이씨가 목격한 것은 경찰 진압의 격렬함을 증명하듯 끊이지 않고 밀려 들어오던 부상자였다. 응급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이씨는 부상자들에게 다가가 몸에 묻은 최루탄가루를 씻어내는 일을 도맡았다. 그러면서 운동화를 건넬 보호자를 찾았다.

이씨는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최루탄가루를 닦는데 갑자기 응급실 분위기가 긴박해졌다"며 "그러더니 누군가 한열이 부모님을 부르더라"라고 돌이켰다.

병원에 도착한 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반쯤 넋이 나간 모습으로 "아이고, 내 강아지야… 우리 한이, 우리 한이"를 외치며 연신 가슴을 쳤다고 이씨는 전했다.

이씨는 배 여사를 지금도 '엄마'라고 불렀다. "응급실까지 따라온 여학생이 나밖에 없어서 '엄마'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함께 의사도 만나고 다음 날 새벽까지 함께했다. 한열이가 깨어 일어나면 '산발 신겨서 나오시라'고 했는데…"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계속 함께 있었는데도) 엄마가 다음 날에도, 한열이 1주기 때도 나를 기억 못 하시더라"며 "얼마나 정신없으셨을지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한 달 뒤 열린 이 열사 장례식에서 장례준비위원도 맡았다. "참 힘겹게 장례 준비를 했다"며 눈물을 글썽인 이씨는 "말 못하게 슬펐지만, 끝도 한도 없는 사람의 바다를 보고서 희망을 느꼈다"고 했다.

이한열 열사 운동화 주워준 이정희씨
이한열 열사 운동화 주워준 이정희씨

(서울=연합뉴스) 채새롬 기자 = 1987년 6월 9일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쓰러진 연세대생 이한열을 병원으로 옮기는 긴박한 순간 떨어진 '타이거' 운동화를 주워 챙겨준 연세대 84학번 이정희(51)씨. 이씨는 지난달 26일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 구리YMCA 사무실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한열이가 깨어나면 신발을 신고 집에 돌아가야 할 텐데' 하는 마음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17.6.7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한 이씨는 학회를 중심으로 후배의 사상을 교육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고 한다. 배우 우현씨, 안내상씨와 같은 단과대 동기로 함께 학회활동을 하기도 했다.

1987년 6월의 기억은 지금까지 이씨에게 '삶의 나침반'이 됐다. 이 열사가 쓰러진 다음 해 졸업한 이씨는 지역 시민운동에 뛰어들어 구리 YMCA에서 20년 넘게 활동했다. 현재는 이 단체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이씨는 "박종철과 한열이를 계기로 내 삶의 길을 새롭게 찾았다"며 "지난 20여 년간 지역에서 사회 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제 역할을 벗어나지 않고 해왔다"고 말했다.

직선제 개헌을 얻어냈지만, 정권교체에 실패해 6월 항쟁은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당시의 좌절 경험이 이번 '촛불 항쟁'의 자양분이 됐다고 이씨는 굳게 믿는다.

"우리가 이룬 민주주의에 안주하지 않고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냈다"는 그는 '최순실 게이트' 주말 촛불집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촛불 항쟁에 참여한 젊은 세대를 보며 30년 전의 희망을 다시 보는 것 같다. 살 맛 나는 하루하루"라며 "한열이의 시계는 30년 전 멈췄지만, 그때 한열이의 꿈과 지금 제 꿈은 똑같다. 지금 세상을 보며 한열이도 좋아하고 있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srch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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