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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동심 가득한 정치 풍자극 '옥자'

송고시간2017-06-2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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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원의 무비부비☆] ‘옥자’ 봉준호의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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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Vt5WHhx34M

(서울=연합뉴스) 정주원 기자 = 봉준호 감독의 블랙 코미디 '옥자'는 착시 그림을 닮았습니다. 하나의 작품이 관객의 관점에 따라 다른 그림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옥자' 스틸컷 [넷플릭스]

'옥자' 스틸컷 [넷플릭스]

뉴욕에 본사를 둔 미란도 코퍼레이션은 화학 중공업 회사로 시작해 식품 제조업까지 발을 넓힌 글로벌 대기업입니다. 미란도가 초고속 성장을 위해 직원들을 착취해왔다는 여론 탓인지, 3대 총수인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턴)는 기업의 이미지 세탁에 강박에 가까운 집착을 보입니다.

어느 날 루시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슈퍼 돼지 프로젝트'를 론칭합니다. 자체 개량 품종인 '슈퍼 돼지'를 26개국의 전통 농가에 보내 10년간 키우게 한 뒤, 가장 아름답고 맛있게 자란 돼지를 선정하는 이벤트입니다.

강원도 산골의 농가에 보내진 새끼 돼지는 '옥자'라는 이름으로 '희봉'(변희봉)과 손녀 '미자'(안서현)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납니다. 어느덧 10년이 흘러 옥자가 미란도에 회수될 위기에 처하자 미자는 친자매 같은 옥자를 되찾기 위해 모험에 나섭니다.

'옥자' 스틸컷 [넷플릭스]

'옥자' 스틸컷 [넷플릭스]

영화 옥자의 세계관은 자연·사랑·조화로 대변되는 미자의 세계와 기형·경쟁·폭력으로 점철된 루시의 세계로 양분됩니다. 두 영역이 맞닿은 지점에는 충돌이 발생합니다.

'가족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 작품은 'E.T.'를 연상시킬 정도로 동심을 자극합니다. 특히 가상의 동물인 옥자는 눈빛만으로도 감정이 배어 나올 정도로 호소력 있는 캐릭터입니다. 인간의 탐욕 때문에 큰 고통을 당하면서도 미자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옥자가 본인의 첫 '사랑 이야기'라고 말했지요. 옥자는 지구 어디에도 없던 모습을 한 '이방인'이지만 미자는 무한한 애정을 쏟아 붓습니다. 할아버지가 '우리 두 식구'라고 한 말을 받아 '세 식구'라고 고쳐 부르기도 합니다. 루시가 아버지와 언니에게 무시당한 기억 때문에 뒤틀린 정서를 가지게 된 것과 대비됩니다.

'옥자' 스틸컷 [넷플릭스]

'옥자' 스틸컷 [넷플릭스]

반면, 칸 집행위원장은 옥자를 두고 '정치적인 영화'라고 소개했습니다. 공권력을 등에 업은 거대 자본이 풍자의 대상입니다. 미란도는 동물 학대와 유전자 변형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고, 경찰 특공부대 '블랙 초크'를 사병처럼 부립니다.

미란도에 맞서는 비밀 동물보호단체 ALF는 레지스탕스를, 집회에 참가하는 시민들은 월가의 행진을 연상시킵니다.

'옥자' 스틸컷 [넷플릭스]

'옥자' 스틸컷 [넷플릭스]

한국의 정치상을 풍자한 듯한 장면도 보입니다. 극 초반에 여성 리더인 루시는 광산 혹은 중공업 작업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기조연설을 합니다. 연설을 듣다 보면 그녀의 아버지인 미란도 초대 회장이 인권보다는 성장을 우선하는 경영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루시는 아버지와 달리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경영인이 되기 위해 지역 곳곳에 대대적인 문화행사와 홍보 마케팅에 많은 지출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대중을 상대로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모순된 태도를 보입니다. 최고 간부급 회의에서의 의사결정 방식도 소통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자칫 극의 분위기를 무겁게 할 수 있는 소재이지만, 봉준호 감독 특유의 블랙 코미디가 빛을 발한 것 같습니다. 희봉이 촌티 가득한 옷차림에 슈퍼 돼지 우승자 띠를 두른 모습이나, 미란도 뉴욕 본사 간부들이 주목한 미자의 영어회화 교재 역시 웃음을 자아냅니다.

'옥자' 스틸컷 [넷플릭스]

'옥자' 스틸컷 [넷플릭스]

극의 촬영과 편집을 놓고 보면, 국내보다는 해외 관객의 입맛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 작품인 것 같습니다.

극 초반 미자 가족의 향토적 생활상이 길고 세세하게 표현됐는데, 한국 관객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안개 속 굽이치는 산자락이나, 백발의 희봉이 바위에 솥을 걸고 백숙을 삶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밥때가 되면 희봉이 마이크를 잡고 산중 어딘가에서 놀고 있을 손녀를 부릅니다. 프랑스 출신의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이 강조하고자 했던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극 후반으로 갈수록 페이스에 속도가 붙으면서 디스토피아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이 부분은 문화권에 상관없이 일관된 호응을 이끌어낼 것으로 예상됩니다.

'옥자' 스틸컷 [넷플릭스]

'옥자' 스틸컷 [넷플릭스]

영화 옥자는 한 편의 프랑스 동화 같은 감성, 봉준호 감독식 블랙 코미디, 눈부신 CG, 그리고 한국의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개성 있는 작품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세 번째 칸 진출작인 만큼, 배급 방식보다는 작품성에 대한 논의가 풍부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9일 개봉.

'옥자'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연합뉴스]

'옥자'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연합뉴스]

jw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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