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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강제이주 80년] ④ 이부영 대회장 "역사는 기억"

송고시간2017-07-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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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열차, 슬픈 역사 되풀이말자 다짐하며 미래 희망 찾는 여행"

"남북한 힘 합쳐야 고려인 문제 해결" "평화공존 속에 통일 내재"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사업회의 공동대회장을 맡아 23일부터 8월 5일까지 수난의 현장을 답사하는 이부영 전 국회의원이 21일 서울 세종로 동아시아평화회의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사업회의 공동대회장을 맡아 23일부터 8월 5일까지 수난의 현장을 답사하는 이부영 전 국회의원이 21일 서울 세종로 동아시아평화회의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993년 이부영(75) 당시 민주당 의원은 같은 국회 외무통일위원회 소속인 민주자유당 안무혁 의원과 함께 5월 30일부터 6월 6일까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정부와 국회 주요 인사들을 면담하고 고려인 집단 거주지 등을 둘러봤다.

이들은 현지에서 입수한 자료와 면담 기록 등을 엮어 '중앙아시아 한인사회 실태조사 보고서'를 냈다. 이들의 활동은 중앙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한 첫 의원외교였고, 63쪽의 보고서는 당시 고려인들의 현주소를 가장 생생하게 담은 문건이었다.

그로부터 24년이 흐른 23일, 이부영 전 의원(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은 고려인강제이주80주년기념사업회 공동대회장을 맡아 1937년 고려인들이 끌려갔던 수난의 행로를 따라가기 위해 서울을 출발한다.

그를 포함한 84명의 탐방단은 이튿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극동 시베리아 실크로드 오디세이-회상열차'를 타고 6천500㎞를 달려 8월 1일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첫 정착지인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도착할 예정이다.

가는 도중에 독립운동 유적을 답사하고 순국선열과 강제이주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한 뒤 8월 2∼3일에는 알마티에서 제18차 세계한민족포럼을 열어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되새기고 한민족공동체 발전 방안을 모색한다.

출발에 앞서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시아평화회의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회장은 "회상열차는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미래의 희망을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을 간추린 것이다.

이부영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사업회 공동대회장은 "고려인들의 수난사를 더듬어보며 우리 민족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오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부영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사업회 공동대회장은 "고려인들의 수난사를 더듬어보며 우리 민족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오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 맨 처음 고려인 문제에 관심을 품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1980년대 후반에 와서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동포들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몰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독립운동사를 다룬 책이나 교과서에 고려인 이야기가 언급돼 있기는 한데 분량도 적고 허술하게 기술돼 있다. 소련이 해체되고 우리 기업들이 러시아 연해주와 중앙아시아 등에 진출하면서 연해주 독립운동과 고려인 강제이주 등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념 대결 탓이라고는 해도 그동안 우리가 역사에 너무 무관심했다는 점은 면책되기 힘들다. 언론인이자 정치인 출신으로 깊이 반성한다.

-- 1993년 민주당 의원 시절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지에서 고려인들을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 해방된 뒤에도 조국이 남북으로 갈라져 싸우느라 동포들이 이처럼 기막힌 일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게 너무나 죄스럽게 느껴졌다. 우리가 갔을 때는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이슬람 민족주의가 일어나 고려인들이 박해를 당하고 있었다. 고려인들은 1937년 강제이주 후 살아남으려고 농사에 매달리면서도 자식 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그 덕에 2세들이 전문기술직으로 자리 잡았는데 갑자기 하층민으로 전락하거나 나라 밖으로 쫓겨날 위기에 놓인 것이다. 당시 안무혁 의원과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당국자들에게 고려인 차별 정책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고 우리나라 정부에도 적극적인 외교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 그 이후 해온 고려인 관련 주요 활동을 말해 달라.

▲ 199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동포들을 돕기 위한 민간단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동북아평화연대인데, 창립 초기부터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국회 차원에서 힘을 보태기도 했다. 2004년과 2014년 러시아 이주 140주년과 150주년 기념사업, 고려인 강제이주 70주년 기념사업도 뜻있는 분들과 함께 이끌었다.

-- 고려인에 관한 가장 잊지 못할 기억은 무엇인가.

▲ 우수리스크에 고려인문화센터를 세운 일이다. 내가 설립추진위원장을 맡아 2004년 기공했는데, 중간에 건설사가 두 차례나 부도나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10년 완공했다. 당시 한국 총영사관은 우리나라의 진보적 시민단체와 고려인이 긴밀하게 연계하는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장치혁 고합그룹 회장의 후원으로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대에 한국학부를 설치한 것도 보람 있는 일이었다. 반면에 홍범도 장군 등을 비롯한 선열들의 유적이 훼손되거나 사라지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최재형 선생의 고택을 재외동포재단 도움으로 현지 고려인 단체가 사들여놓고도 돈이 없어 기념관으로 꾸미지 못하고 있다.

-- 정당에 몸담고 있을 때보다 더 활발한 것 같기도 하다.

▲ 민주당 부총재, 한나라당 원내총무, 열린우리당 의장 등의 직함을 맡아 한창 바쁘게 일할 때는 고려인 문제에 많이 매달리지 못했다. 정치 활동을 접고 나서 더 열심히 하는 편이다. 아마도 정치의 운이 좋아 계속 고위직을 맡았다면 이나마 활동도 못했을 것이다.

-- 국제한민족재단 주관으로 80년 전 고려인 강제이주의 역사를 더듬어보는 '극동 시베리아 실크로드 오디세이-회상열차'의 취지를 말해 달라.

▲ 역사는 기억이다. 올바르게 기억해내고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가 중요하다. 20만 명에 가까운 동포가 근거지를 빼앗기고 끌려가 엄청난 고생을 하고 많은 희생자를 낳았는데 수난의 역사를 기억조차 제대로 못 한다면 그 고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 회상열차에 동승할 탐사단원들이 어떤 점을 느끼기를 바라는가.

▲ 회상열차는 수난의 현장을 따라가며 다시는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미래의 희망을 찾는 여행이다. 이와 함께 우리 민족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돌아오면 좋겠다. 스탈린은 많은 과오를 저질렀지만 그중에서도 인류사에 남을 만한 죄악이 고려인 강제이주라고 본다. 우리 민족은 그 혹독한 시련을 견뎌냈다. 뿌리째 뽑혀 불모지에 던져졌으면서도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은 것이다.

-- 스탈린 정권이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킨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는가.

▲ 당시 소련은 독일 나치 정권이 서부전선을 위협하고 동쪽에서는 일본이 중일전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 안보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연해주 고려인들이 국경에서 일본군과 자꾸 충돌하니 일본에 침략의 빌미를 주지 않을까 우려해 전격적으로 강제이주 명령을 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이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 국내 귀환 고려인들이 어렵게 생활하고 있고 그나마 고려인 4세들은 성인이 되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 제도적으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법령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 다른 민족을 받아들이면서도 같은 핏줄을 배척하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같은 재외동포를 두고도 출신 지역에 따라 차별하려는 시선이 있다. 대단히 편협하고 근시안적 발상이다. 당장 법령을 고쳐 고려인 동포들을 과감히 받아들이고 이들의 정착을 지원해야 한다.

-- 고려인 문제를 포함한 재외동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남북한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 남북한이 힘을 합쳐야 이웃 나라에 과거사 문제를 당당히 따지고 요구할 수 있다. 또 고려인이나 조선족은 남북 화해의 마중물이기도 하다.

-- 지금 남북한 관계는 핵 문제로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데 돌파구는 없겠는가.

▲ 평화가 유지되고 남북 교류협력이 지속되면 통일은 저절로 된다. 평화 공존 속에 통일의 열쇠가 내장된 것이다. 지난 6일 발표된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신한반도 평화 비전)은 대체로 잘된 것으로 보지만 외교관계 수립을 제안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남북한에 서로 대표부를 두자는 것은 양측 정권을 무너뜨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나아가 앞으로 있을 개헌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의 개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지난 6월 3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회상열차' 출정식에서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사업회' 임원들이 인사말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창주 집행위원장, 이부영·함세웅 공동대회장, 표완수 조직위원장, 김성민 건국대 교수. [연합뉴스 자료 사진]

지난 6월 3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회상열차' 출정식에서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사업회' 임원들이 인사말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창주 집행위원장, 이부영·함세웅 공동대회장, 표완수 조직위원장, 김성민 건국대 교수. [연합뉴스 자료 사진]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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