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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4차례 '부결'…헛도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

송고시간2017-07-2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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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수위 낮춰야" vs 울산시 "구조물 건설해 보존"

"중앙정부와 지자체 머리 맞대야…울산 물 부족 해결만이 해법"

지난 6월 반구대 암각화를 조사한 문화재위원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6월 반구대 암각화를 조사한 문화재위원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50여년 간 침수와 외부 노출을 반복하며 조금씩 훼손돼 가고 있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의 보존 대책 논의가 아무런 성과 없이 헛돌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와 주변 환경 보존을 우선시하는 문화재청과 식수 부족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울산시가 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일 문화재위원회는 울산시가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으로 제시한 '생태제방 축조안'을 심의해 부결시켰다. 국무조정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울산시가 업무협약을 체결해 3년간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가변형 임시 물막이'(카이네틱 댐) 사업이 중단된 지 1년 만에 또다시 '부결' 소식이 전해졌다.

앞서 울산시는 생태제방 축조안과 유사한 임시제방 설치안을 2009년과 2011년에도 문화재위원회에 올렸다가 거부당한 바 있다. 지난 10년 동안 문화재위원회에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이 네 차례 올라왔으나 모두 합격점을 받지 못했다.

2014년 8월 폭우로 물에 잠긴 반구대 암각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4년 8월 폭우로 물에 잠긴 반구대 암각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 사연댐 건설 이후 알려진 암각화, 홍수 때면 물에 잠겨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천변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고래, 거북, 사슴을 비롯한 다양한 동물과 수렵·어로 모습을 너비 10m, 높이 4m의 널따란 바위에 새긴 그림이다. 당시 생활상이 생생하게 표현돼 있어 세계적으로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반구대 암각화가 물에 잠겼다가 노출되기를 거듭하는 이유는 하류에 사연댐이 있기 때문이다. 사연댐의 수위를 기준으로, 암각화는 53m일 때 침수가 시작돼 57m가 되면 완전히 잠긴다.

문제는 울산시가 식수 공급을 위해 1965년 사연댐을 준공하고 나서 6년이 지난 1971년에 반구대 암각화의 존재가 학계에 알려지면서 빚어졌다. 반구대 암각화는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유물이었지만, 이미 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한 뒤였다.

그나마 2005년 상류에 또 다른 댐인 대곡댐이 지어지면서 수몰 기간과 빈도는 다소 줄어들었다. 여기에 문화재청과 울산시, 수자원공사 등이 2014년 8월부터 일시적으로 사연댐 수위를 낮추기로 합의해 암각화의 훼손 속도는 늦춰진 상태다.

현재로선 폭우가 내리지 않는 한 반구대 암각화는 수면 아래로 잠기지 않는다. 2016년 10월 태풍 '차바'가 한반도를 강타해 하루 동안 266㎜의 비를 울산에 쏟아 부었을 때가 마지막 침수였다.

학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1년 중 5∼8개월은 반구대 암각화가 수몰된다고 알려졌지만, 2015년에는 단 하루도 침수되지 않았다"며 "일단 응급조치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반구대 암각화 특별전.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반구대 암각화 특별전. [연합뉴스 자료사진]

◇ 문화재위서 부결된 방안들은 대규모 토목 공사

지금까지 문화재위원회에 상정된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은 모두 대규모 토목 공사를 통해 인공 건조물을 조성하자는 것이었다.

이번에 부결된 생태제방 축조안은 암각화에서 30m 떨어진 지점에 길이 357m의 기다란 둑을 쌓는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 제방은 폭이 하부 81m, 상부 6m로 설계됐다. 바닥은 시멘트와 같은 충전재를 강제로 주입해 다지고, 암각화 반대편은 땅을 파서 새로운 물길을 만들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문화재위원 중 한 명은 "생태제방은 이름 때문에 환경친화적으로 느껴지지만, 실질적으로는 거대한 댐이나 마찬가지"라며 "춘천에 있는 의암댐의 길이가 273m라는 점을 고려하면 얼마나 큰 시설인지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위원회도 심의 이후 가장 먼저 생태제방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는 점을 부결 이유로 들면서 "역사문화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할 가능성이 있으며, 공사 과정에서 암각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문화재위원회는 문화재뿐만 아니라 문화재를 둘러싼 환경도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암각화 앞에 무언가를 짓는다는 것을 허용하기 쉽지 않다"며 "문화재청과 울산시에만 문제를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 사연댐 전경. [울산시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울산 사연댐 전경. [울산시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세 차례 부결된 제방 축조안이 사실상 퇴출당하면서 그동안 나왔던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 중에는 수위 조절안과 유로 변경안이 남았다. 문화재청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수위 조절안은 지금처럼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고 홍수에 대비해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하자는 것이다. 유로 변경안은 인공적으로 대곡천 물길을 돌리는 것으로, 제방 축조안처럼 대규모 공사를 벌여야 해 실현 가능성은 작다.

결국 수위 조절안이 대안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울산시는 해마다 낙동강 물을 구입하는 형편이어서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울산시의 식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도 운문댐의 물을 끌어들이는 방안이 오랫동안 거론됐지만, 정부의 중재 능력 부족으로 지지부진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반구대포럼 대표인 이달희 울산대 교수는 "반구대 암각화를 영구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연댐을 없애야 한다"면서 "그러려면 울산의 물 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먼저 울산시가 대암댐 용수의 식수 전환, 해수 담수화, 절수 캠페인 등 자체적으로 식수를 늘리는 방법을 실천에 옮기고 중앙정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며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이른 시일 내에 만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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