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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세요] 평창의 치열했던 유치 도전사 '삼세번의 기적'

송고시간2017-08-18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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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2014년 유치전 모두 결선투표에서 역전패

조양호·박용성·이건희 회장과 김연아도 출동해 유치 성공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자크 로게 전 IOC 위원장이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을 호명하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자크 로게 전 IOC 위원장이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을 호명하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 '삼세번의 위대한 도전.'

2011년 7월 6일 오후 5시(한국시간 자정)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의 국제컨벤션센터.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 발표를 앞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조양호 유치위원장, '피겨퀸' 김연아를 포함한 100명의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대표단은 눈은 단상에 오른 자크 로게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입에 집중했다.

이윽고 아프리카 전통복장의 소년과 소녀가 IOC 로고가 선명하게 그려진 흰 봉투를 로게 전 위원장에게 전달했고, 옅은 미소를 지은 로게 전 위원장은 카드를 꺼내 들어 보이며 짧게 외쳤다.

"평창!"

로게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대표단들은 일제히 "와~!"하는 함성과 더불어 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무려 세 번째 도전에서 따낸 값진 결과였다. 무엇보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인 63표를 얻어 경쟁도시였던 뮌헨(25표)과 안시(7표)를 깔끔하게 따돌린 완벽한 승리였다.

평창의 동계올림픽 '무한도전'은 무려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는 지난 1999년 7월 15일 당시 김진선 지사의 주도로 '2010 동계올림픽 유치계획'을 발표했다. 그해 1월 강원도 일대에서 치른 제4회 동계아시안게임 개최의 경험을 살리겠다는 취지였다.

2000년 10월 강원도는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에 올림픽 유치신청을 냈고, 2002년 8월 28일 강원도 평창이 2010 동계올림픽 공식 후보 도시로 지정됐다.

평창은 2003년 1월 11일 IOC에 동계올림픽 유치신청서를 제출했고,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캐나다의 밴쿠버와 유치경쟁에 나섰다.

하지만 첫 도전은 안타깝게 실패했다. 2003년 7월 2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은 1차 투표 결과 51표를 얻어 밴쿠버(40표)와 잘츠부르크(26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지만, 과반 득표에 실패해 2차 투표를 치렀다.

아쉽게도 평창은 2차 투표에서 밴쿠버(56표)에 3표 뒤진 53표를 얻어 개최권을 놓쳤다. 씁쓸한 역전패였다. 1차 투표에서 잘츠부르크로 향했던 표심을 따내지 못한 게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2003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이 2010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하자 관계자들이 눈물을 짓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2003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이 2010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하자 관계자들이 눈물을 짓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역전패의 아쉬움을 곱씹은 평창은 두 번째 도전을 결심했다. 평창은 2004년 12월 23일 무주(전북)를 제치고 2014년 동계올림픽 후보도시로 재확정됐다.

이듬해 3월 31일 평창동계오륜유치위원회를 발족한 평창은 2005년 7월 28일 IOC에 2014 동계올림픽 유치신청서를 제출하고 역시 '재수'를 선택한 잘츠부르크, 러시아 소치와 치열한 경쟁을 시작했다.

첫 도전 실패의 간절함을 바탕으로 유치전을 펼쳤지만 평창은 또다시 '과반 투표'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2007년 과테말라에서 열린 IOC 총회 결과 평창은 1차 투표에서 36표를 따내 소치(34표), 잘츠부르크(25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과반에 실패한 평창은 곧바로 진행된 2차 투표에서 47표를 얻어 51표를 따낸 소치에 2014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내줘야 했다. 4년 전 악몽의 되풀이였다.

두 차례 실패로 좌절했지만 평창은 포기하지 않았다. 반대 여론도 거셌지만 평창은 세 번째 도전을 선택했다.

세번째 도전은 강원도 차원이 아니라 중앙 정부까지 나서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결정했고, 2010년 3월 10일 IOC에 2018 동계올림픽 신청도시 파일을 제출했다.

세 번째 도전의 경쟁도시는 독일 뮌헨과 프랑스 안시였다.

두 차례 아픔을 겪은 평창은 마지막 도전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치열한 유치전을 펼쳤다.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이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이후 기뻐하는 유치단원들.[연합뉴스 자료사진]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이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이후 기뻐하는 유치단원들.[연합뉴스 자료사진]

유치위원장이었던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과 두산그룹의 오너인 박용성 전 대한체육회장은 힘을 모아 유치전을 지휘했고, 삼성그룹의 총수였던 이건희 전 IOC 회장이 전 세계를 돌며 평창 지지를 호소했다.

마침내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 발표의 날인 2011년 7월 6일이 밝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마침내 평창이 승전가를 불렀다.

평창은 독일 뮌헨과 프랑스 안시와 맞붙은 1차 투표에서 과반인 63표를 따내면서 뮌헨(25표)과 안시(7표)를 가뿐하게 따돌렸다. 과반이 넘은 표를 얻어 2차 투표 없이 공바로 평창은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됐다.

평창은 '절치부심' 세 번째 도전 끝에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고, 한국은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다시 올림픽을 개최하게 됐다.

horn9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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