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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휘둘리며 침체한 세운상가…우리 아직 살아있습니다"

송고시간2017-09-25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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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테크노마트→가든5로 흩어지며 상권 무너져"

35년간 한 자리 지킨 권영길 사장이 본 세운상가

세운상가를 35년간 지킨 권영길 사장
세운상가를 35년간 지킨 권영길 사장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세운상가에서 1982년부터 일한 권영길 동성전기통신 사장이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9.25
chopark@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1982년 세운상가에 들어온 권영길(59) 동성전기통신 사장에게 '세운'은 그 뜻처럼 '세상의 운이 모두 모이는 곳'이 아니라 정치권 결정에 흔들리는 힘 없는 이들이 모인 곳이다.

특수 인터폰·통신기기를 제조하는 권 사장은 직원으로 일하다 2000년 사장이 됐다. 1년 전부턴 세운상가 상인 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권 사장은 "정치권과 서울시 정책에 따라 크게 세 차례 상인들이 내몰리면서 탄탄했던 상권이 무너졌다"고 35년간의 쇠락을 돌아봤다.

권 사장이 처음 일을 시작한 1980년대 초중반만 해도 상가 전체가 '전자산업의 메카'로 호황을 누렸다.

그가 목격한 첫 번째 침체는 1980년대 후반 찾아왔다.

정부가 1987년 용산역 서부 청과물 시장을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세운상가 상점들을 이전해 용산전자상가를 만드는 계획을 세우면서다.

새롭게 떠오른 용산으로 상인들이 대거 이동하면서 점포가 줄줄이 비고 상가는 활기를 잃었다.

IMF 외환위기가 불어닥친 상황에서 1990년대 말 새로 생긴 서초구 남부터미널역 국제전자센터와 강변 테크노마트로 상인들이 또 한 번 흩어지면서 두 번째 타격이 왔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세운상가 상권이 침체 일로를 걸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청계천 복원 계획과 함께 청계천과 세운상가 상인들을 송파구 장지동 가든파이브로 옮겨 놓는다는 계획이 세워진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세운상가를 전면 철거 후 재개발하기로 하고, 그 첫걸음으로 2009년 종로 대로변과 접해있던 현대상가를 철거했다. 상인들에겐 가든파이브 이사를 권장했다.

현대상가 철거 자리에 만들어졌던 '논'
현대상가 철거 자리에 만들어졌던 '논'

서울시는 종로구 세운상가 완전 철거를 전제로 세운초록띠공원 조성에 투자한 968억원을 사업자로부터 회수할 수 없게 돼 사실상 날렸다. 현대상가 철거 자리는 2013년 논으로 조성하기도 했다. 현재 논으로 쓰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권 사장은 "가든파이브에 갔던 상인들은 결국 적자를 많이 보고 다시 세운상가로 돌아왔다"며 "평생 노후 걱정 없이 살만큼 돈을 번 사람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고 말했다.

권 시장이 보는 세운상가의 경쟁력은 '집적'이다. 여러 제조업체가 한 곳에 몰려 시너지 효과를 낸다.

그는 "내가 세운상가를 지키는 이유는 아직도 인터폰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을 10분 내로 모두 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물론 시대의 흐름 때문에 상가가 쇠퇴한 점도 있지만, 한곳에 모여있던 제조업체들이 분산되며 상권 전체가 무너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직원 10명을 뒀던 권 사장 업체 직원은 지금 3명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세운상가를 전면 철거하겠다고 발표하자 권 사장도 세운상가를 떠나 금천구 가산동 디지털단지로 이사할 계획을 세웠었다. 공장으로 이용할 작은 사무실도 구했다.

그는 "우리 같은 중소업체는 주문받는 즉시 생산에 들어가기 때문에 시간이 돈"이라며 "변두리로 가면 부품을 공급받는 데 하루가 꼬박 걸리는 데다 단가도 높아져 결국 세운상가에 머물게 됐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오세훈 전 시장이 세웠던 세운상가 재개발 계획을 백지화하고 세운상가 건물을 존치하기로 했다. 건물을 깨끗하게 리모델링해 '찾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고, 청년 창업가들을 입주시켜 상가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다는 게 박 시장 계획이다.

세운상가 존치에 대한 상인들의 찬반은 엇갈린다. 오세훈 전 시장의 전면 철거 후 재개발 계획에는 당시 추산으로 1조4천억원의 세금이 투입되지만, 박 시장의 '재생'에는 지금까지 535억원이 들었다.

리모델링 후 재개장한 세운상가
리모델링 후 재개장한 세운상가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3층 높이 보행로를 정비하는 등 리모델링 후 지난 19일 재개장한 세운상가의 모습. 2017.9.25
chopark@yna.co.kr

상인 협의회 회장으로서 권 사장의 큰 걱정은 임대료 오름세다.

그는 "상생 협약을 맺어 임대료를 올리지 말자고 약속했지만, 개인 재산이니 강제할 수 없다"며 "상인들이 힘을 모아 상가를 가꿔 놨더니 (임대료 상승으로) 뒤통수를 맞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의 바람은 다시 태어난 세운상가가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이다.

권 사장은 "서울시가 현대상가를 헐면서 대대적으로 세운상가를 없앤다고 홍보해 세운상가에서 일한다고 하면 '아직도 그곳이 남아있냐?'고 놀라워하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운상가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찾아오는 사람을 늘리는 방법밖에 살길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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