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술잔 주고받더니 키스하는 남녀…방송서 술 범람

송고시간2017-10-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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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독에 빠진 텔레비전

음주 방송의 범람, 이대로 괜찮은가

장면 1.

남녀 주인공이 포장마차에 앉아 있습니다. 감춰둔 속 이야기와 소주잔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어느새 취해 키스를 합니다. 포장마차 음주 데이트 씬은 드라마의 단골 장면 중 하나죠.

장면 2.

갓 스무 살의 걸그룹 멤버가 '소주는 처음 마셔본다'고 고백합니다. 진행자들은 그가 소주 ‘원샷’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며 박수를 쳐 줍니다. 지난 3월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입니다.

드라마의 전개를 돕는 도구로 곧잘 쓰이던 음주 장면. 요즘은 인터넷 방송 BJ들이 진행하던 ‘술방’(음주방송)이 TV까지 번지면서 이제 방송에서 술 마시는 모습은 흔한 일이 됐습니다.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은 음주와 흡연장면 심의를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제28조(건전성)

방송은 음주, 흡연, 사행행위, 사치 및 낭비 등의 내용을 다룰 때에는 이를 미화하거나 조장하지 않도록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심의 때문에 TV 드라마에서 직접 흡연 장면은 아예 사라지고, 영화 속 흡연 장면에서는 담배가 가려진 채 방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음주 장면에 대한 심의는 이보다 훨씬 관대합니다.

'인간적인 술자리'를 표방하는 술집 콘셉트의 방송은 시청 연령을 19세에서 15세로 조정하면서 음주보다 토크쇼에 무게를 뒀지만, 여전히 출연자들은 술잔을 기울이고 안주를 즐깁니다.

방송의 시청 연령 제한도 사실상 의미가 없습니다. 가정에서 음주 방송 시청을 막더라도, 청소년들이 동영상 사이트나 SNS에서 유명 연예인들의 ‘술방’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입니다.

지난해 국내 청소년의 음주율은 16.7%에 이릅니다. 또다른 연령대별 조사에서는 10대 중 고위험 음주 경험자가 49.2%, 폭탄주 음주 경험자가 37.5%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출처: 2016년 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 2016년 상반기 주류 소비.섭취 실태조사)

'술 권하는 사회'는 성인들에게도 해롭습니다. 과거보다 줄었다고는 해도, 지난해 17도 소주 기준 남자 8.8잔 이상, 여자 5.9잔 이상을 하루에 섭취한 고위험음주 경험자는 58.3%에 달했습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음주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연 9조 원 이상입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음주 방송 자정을 위한 전문가 협의체 운영 계획을 밝혔습니다.(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주량'이 능력처럼 거론되고, 음주가 사회생활의 필수 요소로 여겨지는 사회. TV 속 음주 방송 콘텐츠의 범람으로 우리 사회가 더욱 술에 젖어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때입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김지원 작가·정예은 인턴기자

shlamaze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