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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목적은 한반도 남부 정복…조선인 모조리 연행"

송고시간2017-10-1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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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진주박물관 '정유재란' 420주년 기념 학술대회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이 사용한 '대장군전'. 국립진주박물관 '정유재란' 특별전을 통해 공개됐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이 사용한 '대장군전'. 국립진주박물관 '정유재란' 특별전을 통해 공개됐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왜군이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이유가 명나라 공략이었다면, 1597년 조선을 다시 공격한 정유재란은 한반도 남부 정복이 주된 목적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나카노 히토시(中野等) 일본 규슈대 교수는 국립진주박물관이 420주년을 맞은 정유재란을 주제로 20일 개최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정유재란 시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정세 판단과 정책'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차이를 분석한다.

18일 공개된 발제문에 따르면 나카노 교수는 "임진왜란 중 도요토미는 명과의 명목상 강화를 성립시키고 오직 조선과 전쟁을 계속하려고 했다"며 "명분이 서지 않는 형태로 전쟁을 끝낼 수 없었던 도요토미는 전쟁 승리의 증거로 한반도 내의 영토를 확보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나카노 교수는 이어 "정유재란에서 일본은 한반도 남부를 할양받고자 했다"며 "임진왜란 때 조선 의병의 저항을 겪었던 일본은 조선인을 모조리 연행하는 인적자원의 고갈을 기본 전략으로 정했다"고 주장했다.

완밍(萬明)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명나라의 풍부한 재정이 조명 연합군이 일본을 격퇴한 이유가 됐다고 분석하면서 당시 전쟁에 투입된 비용을 추산했다.

그는 '만력회계록'(萬曆會計錄)을 근거로 16세기 명나라 재정을 연간 은 1천810만여 량으로 계산한 뒤 임진왜란 때 7년간 명이 투자한 비용이 1천700만여 량이었다고 추정했다. 1량은 현재 화폐 가치로 정확히 환산할 수 없지만, 당시 명나라 군인의 한 달 평균 월급이 3.6량이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쌓은 석성인 부산진지성. [연합뉴스 자료사진]

임진왜란 때 왜군이 쌓은 석성인 부산진지성. [연합뉴스 자료사진]

나동욱 부산박물관 문화재조사팀장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이 축조한 성인 왜성(倭城)의 연구 결과를 정리했다.

나 팀장은 1597년 왜군 1만6천 명이 40여 일간 만든 울산 왜성이 뛰어난 방어력을 갖춘 성이었다는 사실을 소개하면서 국내에 있는 왜성 30여 곳이 개발과 환경 변화로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왜성은 400여 년 전 치열했던 동아시아 전쟁을 재구성하고 역사를 재현하는 데 있어 중요한 문화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국립중앙박물관회가 공동 주관하고 KEB하나은행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이번 학술심포지엄은 22일까지 이어지는 '정유재란' 특별전과 연계해 기획됐다. 강화교섭과 정유재란 발발, 노량해전에 대한 이해의 방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순천성 전투 등에 관한 발표도 진행된다.

국립진주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정유재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며 "전쟁의 실상은 물론 한국, 중국, 일본 민중의 삶과 생활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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