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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 올렸더니 유부녀 '날벼락'…사기 국제결혼 피해 속출

송고시간2017-10-22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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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중개업법 위반 처벌받은 소개업체 되레 피해자들에게 위약금 소송

전국 20명가량 피해…"단란한 가정 꿈꿨다 풍비박산" 법적대응 움직임

(전국종합=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단란한 가정을 이루겠다며 지난해 국제결혼에 나섰다가 베트남 신부가 입국하지 않아 중개 수수료만 떼이는 피해를 본 장모(47)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법정 소송에 휘말렸다.

브로커가 망친 국경 없는 사랑...국제결혼 피해 주의(CG)
브로커가 망친 국경 없는 사랑...국제결혼 피해 주의(CG)

오히려 '사기 국제결혼'의 피해자인 자신을 상대로 결혼중개업체가 갑작스럽게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이 어떤 영문인지 정씨는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재혼을 꿈꾸며 작년 6월 베트남으로 떠났던 맞선 여행이 장씨의 인생을 꼬이게 한 화근이었다.

부산에서 귀금속 세공업을 하던 장씨는 당시 베트남 현지에서 이혼 여성을 소개받았고 이 여성의 부모로부터 결혼 승낙까지 받았다.

귀국 후 장씨는 맞선 여행 주선 업체에 750만원을 주고 결혼 중개 계약을 한 뒤 한 달만인 그해 7월 중순 베트남에서 그 여성과 결혼식까지 올렸다.

그러나 이 여성은 수개월이 지나도 한국에 입국하지 않았다. 얼마 뒤 이 여성이 이혼하지 않았고 여전히 베트남에서 다른 남성과 살고 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충격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 여성을 장씨에게 소개했던 이 업체는 지난 7월 미납한 소개료 300만원을 달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장씨는 법정 소송 끝에 지난 17일 돈을 갚을 이유가 없다는 1심 판결을 끌어냈지만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이 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한 데 이어 사기 혐의로 고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장씨의 친동생이 겪은 일은 이보다 더 황당하다.

입국 안 한 채 한국 남성과 두 번 결혼한 베트남 여성[독자 제공]
입국 안 한 채 한국 남성과 두 번 결혼한 베트남 여성[독자 제공]

결혼이 성사된 뒤 중개 수수료를 지급하기로 계약한 동생 장모(41)씨는 작년 6월 똑같은 업체의 주선으로 베트남에서 현지 여성과 결혼했으나 이 여성 역시 입국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뒤 자신과 결혼식까지 올린 이 여성이 머지 않아 다른 한국 남성과 결혼했다는 황당한 소식마저 접했다.

그런데도 장씨는 채무자 신분으로 민사소송 법정에 서야 했다. 업체가 결혼 중개를 모두 마무리했으니 알선료 950만원을 내라고 소송을 낸 것이다.

법정 공방 끝에 1심 재판부는 '장씨가 업체에 돈을 갚을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판결했지만 이 업체는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장씨는 앞으로도 지리한 법정 싸움을 벌이며 또다시 국제결혼을 둘러싼 악몽에 시달릴 처지에 놓였다.

충남 논산에 사는 지모(28)씨도 2015년 4월 이 업체가 운영하는 맞선 여행에 참가한 뒤 소송에 휘말렸다. 단돈 50만원이면 외국 여성과 결혼할 수 있다는 현수막 내용을 순진하게 믿은 게 잘못이었다.

이때 소개받은 여성과 한 달 뒤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가정을 꾸밀 생각에 들떴던 지씨는 귀국 후 이 여성이 입국할 때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베트남 집단맞선 적발 현장
베트남 집단맞선 적발 현장

(서울=연합뉴스) 신다문화공헌운동본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피해 상담자 278명 중 62명(22.3%)이 국제결혼 이벤트에 참여했다가 피해를 봤다. 사진은 지난 9월 3일 베트남 현지 언론에 보도된 불법 집단맞선 적발 현장. [신다문화공헌운동본부 제공=연합뉴스]

이 둘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안부를 주고받았으나 그해 8월 이 여성이 SNS에서 탈퇴하면서 둘 사이의 연락은 끊겼다.

상황을 알아보겠다고 하던 알선 업체는 2개월 뒤 지씨를 상대로 행사 대행 미납금 및 위약금 1천550만원을 내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지씨는 이 업체가 되레 이 여성에게 파혼을 요구했다는 누명까지 뒤집어 쓰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했다. 힘겹게 민사소송을 벌이고 있는 그는 조만간 이 업체를 고소할 방침이다.

이들처럼 사기 국제결혼에 당했다는 남성 피해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부산과 대전, 청주 등지에 20명 남짓한 피해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이 업체가 현지 여성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해 결혼시킨 뒤 한국 남성의 요구로 파혼한 것처럼 교묘하게 서류를 꾸며 위약금 소송을 제기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피해 남성은 "50만원 맞선 여행에 속은 후 부모님이 식음을 전폐한 채 누워계시는 등 집안은 풍비박산 났고 저 역시 사람을 믿지 못해 집 밖을 나서기가 두렵다"고 털어놨다.

피해남성들이 현지에서 서명한 '행사비용 지불각서'
피해남성들이 현지에서 서명한 '행사비용 지불각서'

수사 대상에 오른 이 업체 운영자는 결혼중개업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돼 법정에 섰지만 지난 1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피해자들은 강한 처벌을 요구했지만 이들이 현지에서 결혼식을 한 직후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서명한 '행사비용 지불각서' 탓에 사기 등의 죄명은 빠진 채 결혼중개업법 위반 혐의만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 각서에는 상대방을 충분히 파악하는 것은 각자의 책임이며 결혼행사 대행 비용 지불을 거부할 경우 파혼 의사로 간주, 위자료 1천만원을 지불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각서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고 서명했어야 했는데, 이를 소홀히 한 탓에 중한 처벌이 어렵다는 게 경찰의 입장이다.

한 피해 남성은 "결혼을 앞두고 심리적으로 들떠 있는 점을 교묘히 악용한 사기 수법을 쓴 것"이라며 "이 업체 운영자는 결혼중개업법 위반으로 처벌받고도 민사소송을 제기하며 피해자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해 사기죄, 사문서 위조죄 등으로 운영자를 고소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k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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